시읽는기쁨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샌. 2008. 11. 11. 09:24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늦가을을 제일로

숨겨놓은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살아도 살아갈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과일을 다 가져가고

비로소 그 다음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혼자서

다 바라보는

저곳이

영리가 사는 곳

살아도 못 살아본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못 살았지

 

-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수확이 끝난 빈 들판의 빈 원두막은 모든 것 다 내어주고 참 편안하다. 비어있음의 충만이다. 욕심도 버리고 원망도 내려놓고, 아무도 없는빈자리에는 바람이 지나고 하늘이 깃들게 하리. 그러나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못 사는 사람 많다. 단풍 속으로 들어간다고 모두가 가을을 사는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그런데 이 시에 나오는 '영리'란 무슨 뜻일까? 사람 이름일까? 사전에서 찾아보니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단어가 8 개나 나온다. 그 중에서 '영리(榮利)'는 명예와 이익이라는 뜻인데 그 의미가 이 시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영리하다'의 영리라면 비슷하게 의미가 통할까? 지혜 쯤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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