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가가 가가가

샌. 2008. 11. 7. 09:16

경상도 안동 출신의 한 총각이 서울 사는 아리따운 처녀와 혼인을 하기로 했다. 처녀는 시골에 계신 총각의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총각과 함께 안동으로 내려갔다. 마을로 들어서자 고향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총각을 보고 물었다.

“가가 가가가?”

“예, 가가 가갑니더.”

어르신께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도 처녀는 말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총각의 고향집으로 가서 처녀는 시부모가 될 분들께 큰절을 올렸다.

“오냐. 니가 가가라?”

처녀는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총각이 재빨리 눈치를 채고 말했다.

“예, 야가 가갑니더.”

처녀는 낯설고 이상한 나라의 대화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문을 유달리 따지는 안동 지방에서는 낯선 사람을 만나면 본관과 성을 먼저 말하고 묻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처녀의 성이 희귀한 ‘가(價)’씨였으니 안동 사람들은 참으로 궁금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어느 책을 보다가 재미있게 읽은 내용이다. 안동은 내 고향인 영주나 예천과 함께 경북의 북부 지역이라서 쓰는 말이 대동소이하다. 타 지역 출신 분들은 ‘가가 가가가’가 외계인의 말처럼 해독불가겠지만 나로서는 진한 고향 사투리가 무척 반가웠다. 나이가 들면서 어릴 때 먹던 투박한 음식 맛에 자꾸 구미가 당기는 것처럼 말 또한 그러하다. 고향 사람을 만날 때 반가운 것은 같은 사투리를 쓰는 데서 느끼는 동질감이 제일 큰 것 같다. 물론 객지생활을 하다보면 의식적으로 표준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탓에 겉으로는 사투리를 버리게 된다. 그래도 어릴 때 길들여진 기본 억양은 남아있기 마련이고, 고향 사람을 만나면 잠자고 있던 어조들이 신기하게도 순식간에 되살아난다.


고향에서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을 때 제일 난감했던 것이 경상도 사투리였다. 말 한 마디에도 주변의 아이들은 박장대소를 했다. 선배들은 일부러 나에게 말을 시키며 놀렸다. 그때는 그것이 너무 창피했고 놀림 당하는 것이 싫었다. 안 그래도 말이 없는데 나는 점점 과묵한 아이로 되었다. 빨리 서울말을 배워야 하는데 말을 별로 하지 않으니 진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쯤 그런 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분명히 어느 땐가는 서울말 곧잘 한다는 칭찬을 들었을 것이고, 그런 자신이 자랑스러웠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마치 당시에는 서울의 수돗물이 최고로 좋은 물이라고 여겼듯이 말이다.


아내는 전주가 고향인데 경상도 산골로 시집와서 초기에는 말의 소통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채소나 생선 이름, 부엌에서 쓰는 용어가 다른 게 많으니 내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눈치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일도 생겼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것은 내가 전주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장모님이 하는 말은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아직도 지역 특색을 나타내는 그런 말들이 남아있다는 것이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경상도 북부 지역 말 특징 중 하나는 의문형 끝머리에 “~니껴?”를 붙이는 것이다. “잘 했니껴?” “어디 가시니껴?” 같은 말은 투박하면서 독특하다. 투박한 경상도의 음식 맛이나 말은 닮은 점이 많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이제 고향에서도 듣기가 어려워졌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말이 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전국이 표준말 하나로 점점 단일화해 가는 것은 어쩐지 아쉽게 느껴진다. 지역 토착 언어들의 소멸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언어의 다양성이 사라지다 보면 먼 미래에는 영어 하나만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실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환영할지 몰라도 왠지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진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만 같다. 제발 그런 디스토피아가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족으로 우스갯소리를 하나 덧붙인다.


경상도에서 온 사람이 서울의 한 식당에서 국밥을 먹고 있다가 큰소리로 아줌마를 불렀다.

“아지매, 대파 주이소.”

식당 아줌마는 의아한 표정으로 대파를 한 움큼 썰어 국밥 그릇 위에 얹어 주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은 아줌마를 또 불렀다.

“아니고, 대파 주라니까예.”

그러자 식당 아줌마는 짜증이 나서 말했다.

“대파 드렸잖아요.”

순간 당황한 이 사람, 그제야 알겠다는 듯 이렇게 외쳤다.

“아지매! 그게 아니고예, 데워 주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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