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우리 안의 MB

샌. 2008. 10. 28. 15:28

어느 모임에 갔었는데 거기 온 사람들 대부분이 MB를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그러니 좌중의 화제는 당연히 한 사람에 대한 비판이 되었다. 특정인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며 실컷 웃어보기도 오랜만이었다. 칭찬도 자주 들으면 식상하는 법인데, 욕은 아무리 떠들고 재방송을 해도 무슨 영문인지 처음처럼 재미있었다. 대화가 궁해지면 “자, 우리 MB를 씹읍시다.”라고 하면 분위기는 아연 활기를 띄었다. 나중에는 MB가 이 시대 반인간적인 가치의 부정적인 면을 혼자서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MB는 이 시대 상황이 만든 대통령이고 그를 선택한 것은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MB가 내세우는 가치가 자본의 논리에 바탕하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 정신적 가치보다는 돈에 대한 욕심과 경쟁, 물질중심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나쁜 대통령이라고 불러도 마땅하다고 본다.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경제를 넘어서는 도덕적 정치철학이나 이념을 국민들에게 제시해줘야 한다. 그런 철학의 부재는 우리 사회, 그 중에서도 청소년을 병들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다. MB에게서 그런 철학이나 이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지금은 경제마저 천민자본주의의 수준으로 격하시키고 옛날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누군가가 ‘우리 안의 MB’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자 좌중은 일순 조용해졌다. 남과 세상을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같은 거울에 비추어보는 일은 어렵다. MB를 비판하는 잣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솔직히 말해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내 안의 MB를 제거하지 않는 한, 밖의 MB는 아무리 욕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부끄러워할 것은 MB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내가 속물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잘 살게만 해 준다면 대통령의 도덕성이나 인간성은 별 관계없다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문제다. 그렇다고 MB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비판은 더욱 날카로워져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에 대한 성찰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타인을 향한 비판과 함께 자기 성찰과 자기 변화도 따라야 한다. MB를 비난하는 속마음이 혹여 자신의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주식이 반 토막 났기 때문이라면 그를 나무랄 자격이 없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주식이나 골프를 의식적으로 멀리 하며 살려는 사람들이었다. 골프장을 건설하는 현장을 본다면 우리나라의 지형 조건에서 골프를 친다는 것에 회의를 해야 한다는 생각도 같았다. 자본주의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작 자신은 자본주의가 주는 단맛을 즐기려는 것은 양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볼 때 자본주의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나쁜 자본주의의 토대를 허무는 첩경인 것이다.


경제 사정이 어려워지고 MB에 실망하면서 우리가 배우는 것도 많다.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어떻게 해서 왔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또 나는 어떻게 변해야 할지 성찰할 수 있다면 도리어 지금의 위기는 약이 될 수도 있다. 다음 선거에서 또 다시 MB 같은 사람을 뽑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다짐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수확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견고하게 도사리고 있는 ‘우리 안의 MB’를 몰아내는 일이 가장 근본적이고 긴요한 일이다. 그러자면 그른 것에 대한 올바른 비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도 어쩔 수 없이 MB 미워하기는 계속될 것 같다. 그것은 세상을 바꾸면서 동시에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내 나름대로의 표현방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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