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사실인지 모르지만 과학사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물리학자인 보어가 코펜하겐대학 학생이었을 때 한 수업에서 ‘기압계를 이용해 고층건물의 높이를 재는 법을 논하라’는 문제가 나왔다. 당연히 교수는 1층과 꼭대기 층의 기압차를 이용해 높이를 구하는 것을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보어는 “기압계를 실에 매달아 건물 옥상에서 1층까지 늘어뜨린 뒤에 그 길이를 재면 된다”는 엉뚱한 답을 했다. 교수는 이 답을 오답으로 평가하겠다고 하면서 물리 원리를 이용한 답을 다시 얘기하라고 했다. 그러자 보어는 아래와 같은 재치 있는 답을 여러 개 쏟아냈다. 이 일화는 보어의 천재성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된다.
(1) 옥상에서 기압계를 떨어뜨려 시간을 측정한 뒤에 높이를 잰다.
(2) 1층과 옥상에서 기압계를 매달아 추처럼 흔든 뒤에 주기를 재고 이로부터 높이를 구한다.
(3) 기압계의 길이를 잰 다음에 이를 자와 비슷하게 이용해서 1층부터 옥상까지 계단의 높이를 측정한다.
(4) 기압계와 건물의 그림자를 재서 건물 높이를 측정한다.
(5) 기압계를 선물로 주고 건물 관리인을 매수하여 건물 높이를 알아낸다.
이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상식이나 고정관념의 파괴에 따른 통쾌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압계로 건물 높이를 재라고 했을 때 보통 사람들은 교과서적인 답을 제시하고 만족한다. 물리책에는 기압차와 높이와의 관계가 설명되어 있다. 교실에서 똑똑하다는 아이들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주어진 틀 안에서 사고하고 생활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사회가 묵시적으로 규정한 경계 안에서 우리 역시 암묵적으로 동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편안하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인습이나 기존 관념의 벽을 깨는 데는 자신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기압계가 기압을 측정하는 기구일 뿐만 아니라 돌, 진자, 자, 심지어는 뇌물이 될 수도 있다는 발상은 파격적이다. 파격적인 만큼 신선하고 통쾌하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런 식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 본다면 삶은 새롭고 상쾌해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평소에는 두려워서 시도해볼 엄두도 내지 못하던 것들을 한 번 실행해 보면 어떨까? 일단 금기를 깨뜨리고 나면 철옹성 같았던 그 벽이 아무 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될지 모른다. 그때에 느끼는 것은 일종의 해방감이며 카타르시스, 유쾌한 희열이다. 일상의 무의미성에 포로가 되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도 천둥 번개와 함께 한 줄기 시원한 소나기 찾아왔으면 좋겠다. 의심 없이 정답처럼 살아온 삶의 관성들, 내 안의 찌꺼기들, 큰물에 모두 떠내려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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