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나는 행복하구나

샌. 2008. 7. 26. 12:22

슬픈 시를 한 편 보았다. 조류독감으로 살처분되어 생매장 된 닭의 분노하고 절망하는 목소리였다. '나는 행복하구나'라는 정인화 님이 쓴 시다.

 

살처분이면 어떻고

생매장이면 또 어떠랴

그처럼 보고팠던 푸른 하늘 이불 삼고

그처럼 딛고 싶었던 흙 베개 삼아

그 속에 산 채로 파묻혀

죽는다한들 무엇이 무서우랴

오히려 나는 좋구나

똥구녁 찢어져 피가 철철 흘러도

애비 없는 알 낳아야 했던

그 끔찍했던 날들

밤도 낮도 없던

그 지옥의 날들

이제야 깡그리 잊혀지고 말지니...

차라리 나는 행복하구나

내 새끼 한 번 품어안아보지 못한 이 한 많은 몸

누가누가 알 많이 낳나 경쟁없는 그곳으로

갈 수 있다니

나 정말 천만다행이구나

내 살붙이들과 으스러지도록 부등켜안고

그리운 그 흙 속에서

눈 감을 수 있다니

나, 조류독감 걸려 너무너무 행복하구나

나, 이제 아무 여한이 없구나

 

현대의 축산업은 자동화된 공장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가축은 생명이 아니라 제품과 물건으로 취급 당한다. 목적은 오직 이윤의 극대화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가 투입되고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과밀도로 사육된다.동물에게는 지옥에 다름 아니다. 소나 닭의 본성은 흙을 밟고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초원의 풀을 뜯는 것이다. 그러나 사육장의 동물은 오직 인간의 필요에 의해 푸른 하늘, 햇빛, 바람, 풀 등 자여의 모든 것을 박탈 당했다.

 

말을 못해서 그렇지 그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거의 미치기 직전의 상태가 아닐까. TV로 비쳐지는 비참한 모습은 안스러움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릴 때 외양간에서본 소의 눈망울은 순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사육장의 소는 더 이상 순한 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 눈망울에서 두려움과 절망, 그리고 분노를 읽는다.

 

이런 고기를 먹는다고 인간이 과연 건강하고 행복해질까? 살코기에는 원망과 저주가 배어 있는데 그 독을 섭취한 인간이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현대에 나타나는 인간의정신병적 증상 중 많은 부분은 이런 잘못된 사육 방식과 그렇게 생산된 고기를 먹는것과 관계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미국소 수입 문제로 불거진 촛불집회가 지금은 시들해졌지만, 집회의 주장이 단순히 위험부위를 수입하지 말자는 차원이 아니라 동물 사육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로 발전되었어야 했다.그러나 아무리 주장이 옳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대중의식에 한계가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

 

인간인 것이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동물에 대햔 사랑 없이 진정한 인류애가 가능하지도 않다. 자신의 애완견은 끔찍히 아끼면서 잔인한 가축사육 방식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면 그것 또한 모순이고 이율배반이다. 그러나 동물의 고통과 비명에 대해 연민을 가지며, 그런 작은 마음들이 모인다면세상은 조금씩이라도 변해갈 것이라고 믿는다.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 지배 행태들이 당시에는 정상으로 보였지만 지금은 야만적 행동으로 규탄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 이 시대에 동물에 대해 자행되고 있는 행동들이 훗날에는 이해되지 못할 야만적 습관이었음을 알게 되리라고 본다. 인류 의식은 그렇게 진화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 의식의 진화는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를 빠르거나 느리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아마 동물에 대한 이 시대의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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