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죄는 씻으면 되지요

샌. 2007. 8. 4. 14:02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기 위해 신애는 교도소에 찾아간다. 그런데 대면한 범인은 너무나 태연하고 천연덕스럽다.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평화롭습니다."

기독교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던 신애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고 정신착란 증세를 일으킨다. 영화 '밀양'에 나오는 장면이다.

4년 전, 20대 아버지가 아들 둘을 동작대교에서 한강 아래로 던져 죽인 충격적 사건이 있었다. 뒤에 범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왜 죽였어요?"

"살기 힘들어서요."

"그럼 왜 같이 죽지 않았나요?"

"기독교인이라 자살은 안되요."

"자식은 죽여도 되나요?"

"큰 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기독교인이면 자식은 죽여도 되나요?"

"죄는 씻으면 되지요!"

산 아들을 던진 것도 충격적이지만, 죄는 씻으면 된다는 사건 뒤의 담담한 범인의 말이 더욱 충격적이다. 그것은 기독교가 가르치는 구원과 용서가 이런 수준의 것인지 너무나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가슴이 없는 인간을 만들고 있다. 교회가 도리어 죄에 둔감한 도덕 불감증 환자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교회는 회개의 흉내만 내면서 더럽게 산 세상 생활에 대한 면죄부만 팔고 있다. 위의 사건을 일부 정신병자의 특수한 예라고 무시해 버리기에는 이런 잘못된 구원관이널리 퍼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상의 일차적 책임은 당연히 설교자나 목회자가 져야 한다. 십자가의 고통과 고뇌 대신에 너무나 쉽게 축복을 선전하며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너무나 쉽게 구원과 용서를 말하며, 하늘의 지순한 사랑을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고 있다.

본회퍼도 하나님의 은혜가 값싼 물건처럼 시장에서 싸구려로 팔려나가는 것에 분노했다. 값싼 구원과 값싼 용서가 너무나 쉽게 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행동하면서도 당당히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라고 고백하는 위선과 허위를 낳고 있다. 믿음으로써 구원 받는다는 복음 자체는 단순할지 모르지만, 그 단순함에 이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자기 버림과 희생이 선행되어야 하는지는 별로 강조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의 당면한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지금우리 청년들을 억류하고 있는 탈레반의 원리주의자들이나 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후안무치식의 당당한 태도들은 다 이런 잘못된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갔던 우리 청년들은 이런 단순 오류에 빠지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맹신은 너무나 무섭다. 그리고 그것을 조장하는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야말로 인류에 대한 범죄행위에 다름 아니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는하나님 사랑은 전부 가짜다.그 인간 속에는 당연히 내 원수도, 주변의 모든 생명도 다 포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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