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령(十二嶺)길은 옛날에 울진과 내륙 지방을 연결하는 길이었다. 보부상들이 울진장이나 죽변장에서 해산물을 사서 봉화, 영주 등에서 파는 행상을 할 때 넘나들던 열두 고개를 말한다. 이 길은 보부상만이 아니라 지역주민이나 선비들도 이용했다. 지금은 금강소나무숲길이라고 부르고 그 일부가 현재 1구간(13.5km)으로 개통되어 있다. 나머지 2구간은 내년에 열릴 예정이다. 이 길 외에도 소광리를 출발점으로하는 금강소나무숲길 3구간이 만들어져 있고, 앞으로 5구간까지 준비되고 있다.
지난 12일에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을 걸었다. 전날저녁에 트레커 팀원들과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 있는 민박집에 도착해서 일박했다.
아침 9시, 집합장소에 걷기 예약을 한 4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간단한 안내와 주의사항을 듣고 두 조로 나누어 출발했다. 마을을 가로질러 가면 산길이 시작된다.
산길에 들면서 처음 울진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와 만난다. 이 비는 1890년 경에 보부상들이 접장 정한조(鄭漢祚)와 반수 권재만(權在萬)의 은공을 기리고자 세운 것이다. 두 사람은 보부상들의 안전한 통행을 위해 많이 애썼다고 한다. 비를 철로 만든 것이 특이했다.
십이령의 두 번째 고개인 바릿재다.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넘던 고개라는 뜻이다. 보부상들은 미역, 건어물, 소금, 생선, 젓갈 등을 봉화, 영주, 안동 장에 내다 팔고, 다시 내륙지방의 생산품인 피륙, 비단, 담배, 곡물 등을 사서 해안 장터에 와서 팔았다. 그들은 바릿재 아래에 있는 두천 마을에서 1박을 하고 아침 일찍 무리를 지어 봉화 소천 방향으로 출발했다. 당시에는 이 길에 산적들이 많았다고 한다.
미역 소금 어물지고 춘양장은 언제가노
대마 담배 콩을지고 울진장을 언제가노
반 평생을 넘던고개 이고개를 넘는구나
한양가는 선비들도 이고개를 쉬어넘고
오고가는 원님들도 이고개를 자고넘네
꼬불꼬불 열두고개 조물주도 야속하다
걷는 틈틈이 가이드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어서 고마웠다. 산양이 살고 있는 곳에서는 산양에 대한 자세한 생태적 설명을 해 주셨다. 이 길은 개인 행동은 안 되고 가이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산길은 임도와 연결되고 금강송 군락지를 지난다.
누리장나무 열매.
임도가 끝나면 다시 옛길이 나온다. 길 안내판도 길을 닮아 예뻤다.
중간 지점에 있는 쉼터에서 배달되어 온 점심을 먹었다. 이 길은 입장료를 안 받는 대신 산 아래 마을에서 점심을 주문해야 한다. 우리는 민박집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싸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5천 원이 너무 과분한 식사였다. 식사중에 대구 MBC에서 나와 취재를 했다.
십이령의 세번째 고개인 샛재에는 성황당이 있다. 보부상들은 이 성황당을 지날 때 신변의 안전과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소광리에서 올라온 새로운 가이드 분이 안내를 해 주셨다.
이번 길에서 만난 가장 오래된 금강송이다. 수령이 460년 정도 된 큰 나무다.
길은 솔잎이 깔려 있어 폭신하고 부드러웠다. 샛재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다. 길 중간중간에는 옛날 화전민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들은 울진 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후 강제로 산 아래 마을로 이주되었다.
소광리 쪽으로 내려오면서 낙엽송이 많이 눈에 띄었다. 화전민들 때문에 헐벗어진 산을 박정희 정권의 조림사업 때심은 것이라고 한다.
1구간의 마지막 고개인 너불한재를 넘으면 울진군 서면 소광2리다. 금강소나무숲길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마을이다. 현대식 팬션도 들어서 있고 목을 축일 수 있는 주막도 있다. 금강소나무숲길 1구간은 두천리에서 시작해 소광리에서 끝난다.
우리 일행은 버스를 타고 다시 민박집이 있는 두천리로 갔다. 울진군에서는 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하루에 한 번소광리에서 두천리로 가는 특별 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승용차를 놓고 오지 않았다면 다시 원점으로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민박집에서 1박을 하고다음 날 아침에 집에 사정이 있어 나는 혼자 울진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귀경했다.나머지 일행은 3구간을 걷기 위해 다시 소광리로 들어갔다. 금강소나무를감상하기좋은 3구간은 18.7km의 왕복길이다.
금강소나무숲길은 하루 최대 인원 100명 내에서 예약제로 운용된다. 그리고 가이드가 동행하면서 함께 움직여야 한다.안전 문제나 자연 생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처로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 좋은 산길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걷고 싶은 바람도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자유롭게 산에 드는 걸 허용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산길을 이용할 때는 가능하면 두천리나 소광리에서 민박하면서 지역 주민에게 도움을 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우리는 2박을 하면서 식사 다섯 끼를 전부 신세 졌다. 밤에는 주인 내외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것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 걸은 시간; 9:30 - 16:00
* 걸은 거리; 13.5km
* 걸은 경로; 두천1리 - 바릿재 - 장평 - 합수나달 - 샛재 - 너삼밭 - 저진터재 - 너불한재 - 소광2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