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로 1박2일의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올 초부터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 함께 여행을 가길 계획했었지만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시집간 둘째는 빠지고 첫째만 동행했다. 원래는 울릉도를 생각했지만 장시간 배를 타는데 부담을 느껴서 진도로 결정했다.
진도는 멀었다. 전주에서 가는데도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진도대교 주변에서는 명량대첩 축제를 하고 있었다. 축제라면 교통 혼잡과 소란스러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지자체들의 축제는 대부분 그랬다. 이름에 걸맞는 내용은 없고 그저 시끄러운 장터에 불과했다. 그래서 축제장이라면 아예 피한다. 그러나 차 없는 진도대교를 걸어서 건너볼 기회는 오늘밖에 없었다.
마침 당시의 해전 상황을 재현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선 13척으로 133척의 일본 함대를 괴멸시키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불꽃놀이 몇 번 하고 적군이 도망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축제장 한 편에는 넓은 메밀밭이 있어 쉬기에 좋았다. 꽃과 카메라만 있으면 여자들은 참 잘 논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면 모녀만큼 서로 잘 통하는 관계도 없는 것 같다.
쉽게 저녁 식사를 할 줄 알았는데 불찰이었다. 워낙 외진 곳이라 식당이 없었다. 진도읍까지 백리 길을 다녀와야 했다.
숙소(해미랑펜션)가 편안해 푹 잤다. 아침 바닷가를 산책했다. 어제처럼 바닷바람이 세찼다.
남도석성에 들렀다. 돌로 쌓은 성이 아담했다. 이곳에서 고려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이다 최후를 마쳤다고 한다. 다만 성 안에 있는 마을을 깨끗하게 정비하면 훨씬 더 좋은 관광지가 될 것 같다.
성과 연결되는 작은 다리가 눈길을 끌었다. 고르지 않은 돌로 만든 아치형 다리가 투박하면서 서민적 정취가 풍겼다. 이 다리가 세워진 시기는 1870년 이후로 추정될 뿐자세한 기록이 없다고 한다.
상만리 비자나무를 보고 접도로 향했다. 가는 동안 역시 식당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진도 남쪽은 찾는 사람이 드물어 관광객을 위한 편의 시설이 거의 없다. 배가 고프긴 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런 점이 오히려 고맙다.
접도 입구 작은 가게에서 빵과 컵라면으로 늦은 아침을 때웠다. 라면을 싫어하는 아내도 큰 컵라면을 다 비웠다. 가게를 들락날락하는 시골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에서 유년의 기억이 떠올라 아련해졌다.
접도에 만들어진 ‘웰빙등산로’를 짧게 걸었다. 요사이는 어딜 가든 걷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접도에도 이 등산로를 보고 사람들이 찾아온다. 원래는 4시간 코스를 생각했었는데 무리가 될 것 같아 일출전망대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전망대 아래 애기밴바위에 내려가서 남해 바람을 맞으며 쉬었다. 길가에는 꽃며느리밥풀을 비롯한 가을꽃들이 많았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선생(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화실이다. 정원이 아름답다. 옆에 쌍계사가 있다. 이곳에서 진도홍주와 해산물 몇 점을 샀다.
진도여행의 마지막으로 용장산성에 들렀다. 고려 원종 11년(1270). 삼별초군이 남하하여 대몽항쟁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산 능선을 따라 산성이 있다는데 올라가 보지는 못했다. 벌판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맑고도 청초했다.
돌아오는 길에 고창에 있는 장인어른 산소에 문안을 드렸다. 낙조의 미련이 남아 있어 인근의 구시포해수욕장을 찾았다. 그러나 하늘은 여전히 붉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어떠랴, 빛으로부터 어둠으로 전화되는 이 아름다운 순간이 마냥 좋은 걸. 첫째는 갈매기와 함께 백사장을 내달렸다. 결혼 전에 부모와 함께 한 이번 여행이 좋은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 그리고 앞날에 행복의 길이 활짝 열리길, 또한 인생에 어떤 풍파가 몰려와도 겁내지 말고 씩씩하게 헤쳐 나가길....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주 백마산 (0) | 2011.10.08 |
---|---|
광한루원에서 널뛰기 (2) | 2011.10.05 |
진천 농다리와 배티성지 (0) | 2011.09.26 |
어섬에서 경비행기를 타다 (0) | 2011.09.25 |
반포에서 올림픽공원까지 걷다 (4) | 2011.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