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광주 노고봉

샌. 2013. 6. 9. 19:36

 

노고봉(老姑峰, 578m)은 경기도 광주와 용인을 나누는 태화산 산줄기에서 가운데쯤에 있는 산이다. 이 산줄기를 10시간 정도 걸려 하루에 종주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 오르고 있는데 이번이 세 번째다. 함 선배님과 함께 걸었다.

 

서울서 내려오신 선배님과 광주터미널에서 만나 버스를 갈아타면서 외대 용인캠퍼스 앞까지 갔다. 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등산로가 시작된다. 산을 오르는 게 허리 아프고 난 뒤 처음이니 거의 3개월 만이었다. 30도가 넘는 날씨까지 더해져 처음부터 무척 힘들었다. 나중에는 물까지 떨어져 갈증에 시달려야 했다. 여름 산행은 물만은 넉넉히 준비해야 하는데 소홀히 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선배님은 나보다 15살이나 연상인데 내가 따라가기가 벅찼다. 몸이 불편하신데도 불구하고 70대 중반이 되어도 산길 걷는 건 여전하시다. 선배님은 교직에 계셨을 때 어디서 근무하든 동료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던 교사였다. 지금도 여전히 본받고 싶은 분이시다. 둘이서만 산행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함께 길을 걸으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 흔한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제주도에도 가 보시지 못했다는 건 이번에 처음 들었다. 검약하고 겸손하면서,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분이시다. 옆에서 보면 어떻게 저렇게까지 살필까 싶을 때가 많다. 나와는 너무 대비된다.

 

 

태화산에서 백마산으로 연결되는 산줄기는 오르내림이 너무 심해 쉽게 지친다. 그래서 산악인들이 체력 훈련하기 위해 많이 이용하는 구간이라고 한다. 우리는 노고봉과 정광산을 지나 마구산 바로 전에서 용인 약산골로 내려왔다. 예상보다 길어진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사단은 그 뒤에 일어났다. 너무 갈증이 나 삼겹살이 굽기 전에 찬 막걸리를 거푸 마신 게 화근이었다. 정신을 잃고 노추(老醜)를 부렸다. 한심하게 쳐다보던 버스 승객들 눈길이 잊히지 않는다. 그 와중에 선배님이 생고생을 했다. 대부분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것은 확실하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집에 오니 지갑도 어디에 내던져 버렸는지 사라졌다.

 

점점 술을 감당하기 어렵다. 늙어서 부리는 술주정은 정말 주책바가지다. 아내에게서 자주 듣는 말인데 알코올만 들어가면 공격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집에 찾아온 딸년의 눈물을 흘리게도 했다. 그것도 술 마신 뒤의 일이었다. 나는 술이 주는 낭만을 즐길 자격이 없다. 이젠 술을 끊어야겠다. 정말 끊어야겠다.

 

 

* 산행 시간; 5시간(10:30 ~ 15:30)

* 산행 경로; 용인 외대캠퍼스 - 노고봉 - 정광산 - 용인 약산골

* 산행 거리; 약 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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