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다가왔다. 고향에 노모가 계시니 명절이 되면 찾아뵙는 문제로 고민한다. 동생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니 명절이 되면 근심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다. 올 추석은 내가 내려가야 할까 보다.
지금까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신 친구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찾아오는 자식들과 단출하게 추석을 보낸다. 연휴를 이용하여 가족이 함께 놀러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일순위가 어머니이니 자식들과의 만남은 뒤로 미루어진다. 지난 몇 차례는 동생이 어머니와 있어준 덕분에 예외가 있기는 했다.
어제 친구들 모임에서 추석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노모를 뵈러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 경우는 나밖에 없었다. 언제 내려가고 언제 올라올지 교통 정체도 걱정이다. 이런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더니 다들 말했다. "그래도 그때가 좋은 거야."
부모님이 안 계시면 불효에 대한 후회로 마음 아파한다. 명절이 다가오면 가슴 한편에 허전함이 느껴지는가 보다.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살아계실 때는 노부모의 쇠약해진 모습에 더 마음이 아프기도 했을 것이다. 때로는 부모 부양에 귀찮기도 했을 것이다. 또 많은 가정이 형제간의 갈등에 시달린다. "그때가 좋은 거야"라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일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가끔 반대로 얘기하는 사람을 보기도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어깨에 놓인 짐에서 해방되고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 또한 솔직한 고백이다. 부모에 대해서는 양가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그놈의 천륜이나 핏줄이란 게 뭔지 모르겠다.
90대 중반이 되신 어머니가 얼마나 우리 곁에 더 계시겠는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오면서 통증이 온다. 현실이 어떠하든 어머니에게 잘해 드려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내가 걱정을 껴안을지언정 어머니에게 근심거리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추석을 앞두고 자식의 마음은 더 착잡해진다. 언젠가는 나도 중얼거리겠지.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라고. 미래의 나를 그려본다면 지금 내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답은 간단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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