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픈 몸을 살다

샌. 2018. 5. 27. 12:37

아서 프랭크는 의료사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캐나다 캘거리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40대 때 경험한 심장마비와 암이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의 질병 경험을 나눔으로써 질병의 의미와 가치를 공유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질병은 무작위로 찾아오지만 '잘 아프기'는 개인의 책임일 수 있다.

 

지은이는 고환암에 걸렸다. 수차례의 화학요법 치료를 받으며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나는 심각한 질병을 앓은 경험은 없지만, 환자의 고통과 고충에 공감하며 읽었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고, 죽기 전에 크건 작건 질병의 기간을 통과의례로 거쳐야 한다.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몸이 '의학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표현은 재미있다. 환자가 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하고 온갖 검사를 받는다. 몸은 의료진과 기계에 맡겨지고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유럽 탐험가들이 해안에 도착해서는 깃발을 꽂고, 그곳이 자신의 땅이라고 선언했을 때 원주민들이 느꼈을 기분이다. 의학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내 몸이라는 영토를 의사들이 조사하도록 양도해야 했다. 내 몸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아마 병원에 입원한 모든 환자가 느끼는 기분일 것이다.

 

"아픈 사람의 관점에서 핵심은 고통이다"라는 지은이의 말에 공감한다. 몸뿐만 아니라 삶을 무너뜨리는 주원인은 고통이다. 환자에게는 외로움, 닫히는 문들,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 패배자의 느낌 등 다양한 감정이 있지만 고통만큼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없다. 암보다도 통증이 두려운 게 사실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통증은 원래 생명체를 돕기 위해 생겨났다.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몸의 목소리다. 그러나 제어되지 않는 통증은 환자를 괴롭힌다. 어떻게 통증에 대처할까? 지은이는 통증에서 조화로 가는 본인의 극적인 순간을 소개한다. 영적인 깨달음과 비슷하다. 아무나 체험할 수 있지는 않다. 지은이는 이렇게 표현한다.

 

"통증 때문에 깨어 있던 밤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가족의 휴식은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마음 때문에 통증은 견딜 만해졌다. 질병과 통증은 삶을 조각내지만, 사는 이유를 모두 빼앗겼다고 혹은 사는 이유가 막 사라질 참이라고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조화를 발견하곤 하며, 그렇기에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창에 비친 아름다움을 본 그 밤에 통증은 덜 중요했다. 내 몸에서 나를 떼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내 몸 밖으로 나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잠도, 그 창도 소중했다. 이렇게 아끼는 마음이 다시 모든 것을 조화롭게 했고, 그래서 나 자신도 계속 소중히 할 수 있었다."

 

질병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는 <아픈 몸을 살다>는 질병 경험에서 삶의 새로운 가치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질병의 궁극적인 가치는, 질병이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를 가르쳐준다는 점이다. 빛이 사라지는 순간에 우리는 빛이 계속 타오르게 하는 일 자체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죽음이 있기에 우리는 삶의 가치를 다시 확인한다. 또, 질병을 계기로 삶을 당연시하며 상실했던 균형 감각을 되찾는다. 무엇이 가치 있는지, 균형 잡힌 삶이 어떤 것인지 배우기 위해 우리는 질병을 존중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슬프게도 환자 중 일부만 이런 깨달음에 이른다. 병을 통해 삶을 더 낫게 만드는 사람은 일부에 불과하다. 많은 사람이 낙인을 경험할 것이며, 소수의 사람만이 낙인의 진정한 정체를 깨달을 것이고, 이보다도 더 소수의 사람만이 낙인찍힌 느낌을 극복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질병은 '위험한 기회'다.

 

"많은 것을 잃겠지만 그만큼 기회가 올 겁니다. 관계들은 더 가까워지고, 삶은 더 가슴 저미도록 깊어지고, 가치는 더 명료해질 거예요. 당신에게는 이제 자신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을 애도할 자격이 있지만, 슬퍼만 하다가 당신이 앞으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끼는 감각이 흐려져선 안 돼요. 당신은 위험한 기회에 올라탄 겁니다. 운명을 저주하지 말길, 다만 당신 앞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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