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늙은이가 읊다 / 김삿갓

샌. 2018. 7. 27. 11:05

오복 가운데 수(壽)가 으뜸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래 사는 것도 욕(辱)이라 한 요임금 말이 귀신 같네

옛 친구들은 모두 다 황천으로 가고

젊은이들은 낯설어 세상과 멀어졌네

근력이 다 떨어져 앓는 소리만 나오고

위장이 허해져 맛있는 것만 생각나는데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五福誰云一曰壽

堯言多辱知如神

舊交皆是歸山客

新少無端隔世人

筋力衰耗聲似痛

胃腸虛乏味思珍

內情不識看兒苦

謂我浪遊抱送頻

 

- 老吟 / 金笠

 

 

유교에서 말하는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이다. 그중 으뜸이 수(壽)다. 그러나 오래 살아서 복이 되기보다 욕이 되는 경우를 더 자주 본다. 현대 의학은 인간의 평균수명을 잔뜩 올려놓았지만, 심신의 건강이 받쳐주지 못하면 말년에 괴로움만 더하는 일이 된다.

 

김삿갓은 우리나라 최고의 천재 시인이다. 풍자와 해학은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 김삿갓은 민중이 직면한 현실 문제를 직시하고 이를 시로 풀어냈다. 이 시를 보아도 그의 천재성을 알 수 있다. "애 보기가 얼마나 괴로운 줄도 모르고, 내가 그냥 논다고 아이를 자주 맡기네," 마지막 구절에는 무릎을 쳤다. 우리 부모는 손주 보는 재미로 산다고 젊은이들은 제발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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