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의 유물론 / 김나영

샌. 2018. 7. 2. 10:09

왜 하필 느끼한 레스토랑이냐고 툴툴거리는

남편의 식성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생일날에

다친 마음도 밥 앞에서는 이내 맥을 못 추는

나는 이 세상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족속이다

평일보다 더 못한 기념일

소화되지 않는 속내와

날이 서는 내 눈초리에

선물 대신 뒤늦게 내미는 남편의

돈봉투를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순간

손끝으로 좌르르- 전해오는 돈의 두께에

다친 마음이 초고속촬영을 하듯이 아물고 있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지만

그것은 두꺼운 성경책 안에서나 통하는 말

돈의 위력 앞에 뭉쳐있던 내 속과

눈꼬리가 순식간에 녹진녹진 녹아났다

조금 전까지 야속하던 남편도 면죄하고야마는

나의 종교는 유물론에 더 가깝지 싶었다

내 안에서 비릿하고 역겨운 냄새가 울컥 올라왔지만

빳빳하고 두둑한 돈을 꽉 움켜쥐고서

나는 개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 나의 유물론 / 김나영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한다. 돈의 마력에서 자유로운 자가 있을까. 돈을 너무 사랑하다 보면 인간은 짐승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돈에는 잘못이 없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관계를 녹진녹진 녹여주기도 하고, 천륜을 철천지 원수지간으로 만들기도 한다. 우리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평생 돈과의 전쟁이 아닌가 싶다. 그놈의 돈이 뭐길래, 라는 자탄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드는 나날이다.

 

옛 사람의 말을 떠올리며 경구로 삼는다.

 

大廈千間 夜臥八尺

良田萬頃 日食二升

 

큰 집이 천 칸이라도 밤에 눕는 곳은 여덟 자 뿐이요

좋은 밭이 만 이랑 있더라도 하루에 두 되면 족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