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외계인이 와야 한다 / 이영광

샌. 2019. 5. 22. 10:12

콩가루 집안도 옆집과 싸움 나면 뭉치고

툭탁거리는 아이들도 딴 학교랑 축구 하면 함께 응원을 한다

딴 동네 딴 도시 딴 지방과 다툼이 나면

한 동네 한 도시 한 지방이 된다

 

전라도와 사이가 틀어지면 경상도가 된다

경상도와 맞설 때면 전라도가 된다

북한과 다툴 때면 남한이 되고

일본 중국과 분쟁이 나면 한 민족이 된다

월드컵만 열렸다 하면 아우성치는 대한민국이 된다

 

그러므로 외계인이 쳐들어와야 한다

성간우주를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니는

외계 우주선들의 어마어마한 습격 앞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을 것이다

서방과 아랍이 연대할 것이다

동아시아 제 국가들이 단결할 것이다

 

외계인이 와야 한다

기독교와 무슬림이 형제가 될 것이다

흑 백 황 적, 모든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들이 하나가 될 것이다

인간과 사자와 뱀과 바퀴벌레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될 것이다

개나 소나 게나 고둥이나 모두 나와 스크럼을 짤 것이다

 

더 큰 적이 나타나고 더 큰 싸움이 나는 수밖에 없나?

외계인이 와야 한다

모든 나라들이 폭삭 망하지 않을까?

외계인이 와야 한다

전 세계 인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을까?

외계인이 와야 한다

 

다른 별에서, 지구촌을 전율에 빠뜨릴 초호화 축구팀들이 공격해 와야 한다

부처나 공자나 예수보다 더 환상적인 외계 스타 플레이어들이 와야 한다

은하계 별들이 두두둥둥! 자웅을 가리는 우주 월드컵이 열려야 한다

 

- 외계인이 와야 한다 / 이영광

 

 

나라 밖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서로 으르렁거리고, 안에서는 정치 싸움이 막장 드라마를 뺨친다. 전에는 지역감정을 조장하며 이득을 챙기더니, 이제는 진보와 보수로 나누어져 싸움박질이다. 정치꾼들에게 나라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하는 짓거리를 보면 인간의 품격이란 말을 꺼내기도 민망하다. 태극기를 흔드는 무리가 내뱉는 언어는 천박하기 그지없다. 그걸 닮아야 지지율이 올라가는 정당도 한심하다. 패스트 트랙 이후 정국은 더 살벌해졌고, 옛날 같으면 사화가 몇 번이나 일어났을 법하. 방법이 없다. 당장이라도 "외계인이 와야 한다." 구린내 난다고 그냥 지나치지는 말기를, 성간우주를 안마당처럼 누비고 다니는 그들이 이 미개한 호모 사피엔스를 좀 혼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