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 두기'가 처음에는 생경했으나 이제는 익숙한 말이 되었다. 코로나19가 바꾼 현실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얼마 전에 TV에서 가게가 북적대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복 쇼핑'이라는 표현을 써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참았던 쇼핑을 마치 보복하듯 해댄다는 뜻이다. 전혀 변한 게 없다.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전과는 달라지리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변할지는 의문이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시적으로 물리적인 간격 두기에 불과하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세상이 변하려면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이 변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우리들의 익숙한 사고나 습관과의 거리 두기로 연결되어야 한다.
억지로라도 달라질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개념에 적응해야 할 것이다. 낡은 개념은 떠나보내야 한다. 세계화, 신자유주의, 글로벌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이 미래 세계의 흐름을 주도할 수 없다. 대신 소규모 지역 단위나 공생의 가치가 높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욕구가 커질 것이고, 지구에 부담이 되는 행위는 기피하게 될 것이다.
적정기술, 기본소득, 토지 공개념 같은 말을 앞으로 자주 들을지 모른다. 적정기술은 첨단 기술에 대응하는 말로 각 지역의 특색에 맞으면서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다.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에는 작으면서 환경친화적인 적정기술이 각광 받게 될 것이다. 대신에 우주 개발이나 원자력발전 같은 거대 프로젝트는 대중의 호응을 받기 힘들다.
기본소득이나 토지공개념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논란이 많지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대안으로 검토해야 마땅한 개념이다. 기본소득은 이번에 전 국민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토지공개념이란 땅은 국민 모두의 자산이라는 원칙에서 시작해야 한다. 공동체의 삶을 파괴하는 부동산 투기는 사라져야 한다. 기본소득이나 토지공개념 모두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나갈지 기대가 되면서도 불안하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반대 상황도 동시에 열려 있다. 극우가 득세하면서 민족주의 경향이 더해진다면 세계는 대혼란에 빠질 것이다. 어쨌든 코로나19는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나 우리 문명에 대해 근원적인 성찰을 하도록 요구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때껏 살아온 우리의 익숙함에 대한 거리 두기가 아닐까. 인류가 얼마나 지혜롭게 대처해 나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