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탁월한 사유의 시선

샌. 2021. 7. 3. 10:46

최진석 선생이 2015년에 건명원(建明苑)에서 한 철학 강의를 묶은 책이다. 우리는 이때껏 남의 사상을 빌려서 살아왔다. 옛날에는 중국에서, 근대에 들어서는 서양의 생각을 수입해 종속적으로 살아온 것이다. 이래서는 독립된 나라라고 할 수 없다. 선도력을 가진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생각과 철학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종속적인 단계에서 벗어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삶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국가뿐 아니라 개인도 마찬가지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은 이러한 시대정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과제를 준다.

 

건명원은 해를 해로만 보거나 달을 달로만 보는 분열된 삶에서 벗어나 해와 달을 동시적 사건으로 장악하는 활동성[明]을 통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곳[苑]으로 건너가는 도전을 감행하고자 세워진[建] 인문-과학-예술 혁신 학교라고 한다. 시대를 선도하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세운 것 같다. 그러자면 탁월한 사유의 높이가 필요하다. 기존 관념을 깨뜨리는 반역인이 되기를 요구하는 곳이다.

 

선생은 중국에서의 경험 하나를 얘기한다. 시골에 있는 도교의 도사를 만났는데 전공이 무엇인지 물어보더란다. 그래서 철학이라고 했더니, 도사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철학이 국가 발전의 기초입니다."

국가 발전에 철학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국에서는 전혀 들어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 발전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와는 거리를 두는 게 진짜 철학이라고 대부분 생각한다. 그건 뿌리를 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한 나라의 독자적인 문화나 철학의 존재 여부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독자적인 사상이 없으면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없다. 이 책에서 부단히 강조하는 주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철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철학은 삶에서 유리된 고담준론이나 관념 놀이가 아니다. 따분한 철학 이론에 대한 지식은 철학의 작은 일부분이다. 철학은 철학적 높이의 시선을 갖는 일이고, 철학자가 사유한 경지에 오르는 일이다. 철학은 현실 세계를 스스로 읽을 줄 아는 힘이다.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에 가까운 것 같다. 선생은 철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말한다.

 

"기존의 문법을 넘어 새 문법을 준비하려는 도전, 정해진 모든 것과 갈등을 빚는 저항,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궁금해하는 상상, 이것들이 반역의 삶이라면 철학을 한다는 것은 반역의 삶을 사는 것이다."

 

특히 이런 철학 정신은 젊은이에게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편안한 길만 찾으려는 젊은이가 많아진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아무 거부감 없이 낡은 시스템에 젖어든다면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오히려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공고히 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철학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어야 선진국이다. 그래야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만 따라가서는 생각의 주인이 아닌 생각의 노예일 뿐이다. 마침 오늘 뉴스에서 유엔이 우리나라를 선진국 지위로 격상한다는 보도를 봤다. 얼마 전에는 G7 정상회의에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했다. 경제적으로는 우리나라도 이미 세계의 앞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정신면에서는 어떨까? 우리만의 철학이나 사상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산업화와 민주화에는 성공했지만 과연 질적으로 선진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함석헌 선생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이 내내 따라다녔다. 약 백 년 전에 신채호 선생은 이렇게 썼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주의와 도덕은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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