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마르코복음[72]

샌. 2023. 2. 20. 10:53

그들은 게쎄마니라는 곳으로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기도하는 동안 여기 앉아 있으시오" 하시고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려가서 떨고 번민하기 시작하며 말씀하셨다. 

"내 영혼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입니다. 그대들은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시오."

그러고는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할 수만 있다면 수난 시간이 비켜가게 해 주십사고 기도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시지 말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예수께서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자고 있습니까?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겠습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시오. 영은 간절히 원하지만 육신이 약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가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그런 다음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또 자고 있었다. 눈이 무겁게 내려감겨 있었다. 그들은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이윽고 예수께서 세 번째 돌아와서 말씀하셨다.

"아직도 자고 쉬어야겠습니까? 그만하면 됐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보시오, 인자가 죄인들 손에 넘겨집니다. 일어나 갑시다. 보시오,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습니다."

 

- 마르코 14,32-42

 

 

제자들은 자포자기 상태이고, 예수는 공포와 번민 가운데 몸부림친다. "내 영혼이 근심에 싸여 죽을 지경입니다." 이 한 마디에 예수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예수의 신성만 너무 강조하게 되면 이런 예수의 인간적인 측면을 무시하기 쉽다. 자신에게 닥쳐올 고난의 시간 앞에서 예수 역시 떨면서 번민했다.

 

이 장면에서도 의아한 건 제자들의 태도다. 예수와 공동 운명체인 그들에게도 게쎄마니의 밤은 절체절명의 시간이다. 예수가 처형되면 그들 역시 공범으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잠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는 스승에 대한 제자들의 실망과 좌절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이젠 스승도 믿을 수 없다. 예수는 자신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니었다. 유대 민족을 이끌 영웅이기는커녕 예수의 너무나 나약한 모습에 제자들은 배신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의 마지막이 될 당부조차 무시해 버린다. 될 대로 되어라 식의 자포자기에 빠진 제자들이다.

 

반면에 예수는 끝까지 제자들에게조차 이해 받지 못하고 외면당한 고독한 분이었다. 함께 기도해 줄 제자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일말의 위안이라도 되었을까. 다른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기도할 때 피땀이 흘렀다고 했다. 얼마나 애간장이 타고 간절했으면 피땀이 흐를 정도가 되었을까.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할 뿐이다.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를 극복하고 이겨내는 데에 예수의 위대함이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니까 전지전능하고 어떤 고통도 가볍게 여길 무한능력자로 보면 안 된다. 그분 역시 우리처럼 수난의 시간을 앞두고 떨고 번민했다. 그러나 예수의 최종 선택은 하느님의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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