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니인 유다가 찾아왔다. 또 그와 함께, 대제관과 율사와 원로들이 보낸 군중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다가왔다. 그분을 넘겨줄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붙잡아 단단히 끌고 가시오" 하고 미리 암호를 일러두었다. 그들이 손을 내밀어 예수를 붙잡았다. 이때 거기 있던 이 가운데 하나가 칼을 뽑아 대제관의 종을 쳐서 귓바퀴를 잘라 버렸다. 예수께서 나서서 말씀하셨다.
"강도라도 잡으려는 듯이 나를 잡으러 칼과 몽둥이를 들고들 나왔단 말이오? 내가 날마다 당신네 가까이 성전에서 가르쳤으나 나를 붙잡지들 않더니만, 결국 성서 말씀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어느 젊은이는 알몸에 삼베를 두른 채 예수를 따라가다가 사람들이 붙잡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달아났다.
- 마르코 14,43-52
결정적인 순간이 되자 제자들은 모두 예수를 버리고 달아났다. 예수는 홀로 되어 체포되었다. 예수와 제자들의 바라는 바 염원의 간극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가족과 재산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나선 제자들이었다.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할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끝까지 기대했다. 예수가 유대의 왕이 되면 자신들은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리라는 꿈도 꾸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올라온 예수의 언행은 기대밖이었다. 예수는 따르는 군중을 규합해서 로마 당국에 조직적인 반기를 들 의도가 없어 보였다. 도리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며 무력하고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제자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는 체포되었고, 다른 제자들도 모두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다. 예수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현장에서는 대제관의 사병들과 잠시 칼싸움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는 말렸다고 한다. 실제 싸움이 벌어진들 피만 흘릴 뿐 예수를 지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예수가 굳이 갈릴레아에서의 활동을 접고 예루살렘에 올라온 저의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예수는 민중을 억압하는 불의한 세력에 저항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으로 바꾸려고 했다. 성전 중심의 굳은 이데올로기에서 인간 해방이 목적이었다. 예수는 사회에서 버림받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서 그들을 치유하고 영혼을 위무해 주었다. 그러나 변방인 갈릴래아에서의 활동만으로는 한계를 느꼈을 법하다. 예수는 바위로 계란치기인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지배세력과 정면충돌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나의 횃불이 되든 희생제물이 되든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예수는 알고 있었다. 예수는 절대 고독의 길을 걸어가야 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게쎄마니에서 떨고 번민하며 기도해야 했을까.
예수는 체포되었고 그 뒤의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사회 구조를 개혁하려는 시도를 기득권층은 그냥 두지 않는다. 반역죄로 올가미를 씌우면 사형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