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셋이서 강릉 1박2일(2)

샌. 2023. 6. 14. 13:19

B가 전세로 얻은 숙소는 강릉 시내에 있는 10평형대의 소형 아파트다. 상시 거주하는 것은 아니고 쉬고 싶을 때 아무 때나 와서 지낸다고 한다. 견물생심이라고 나도 이런 집 하나 가져볼까, 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마음만 맞는다면 두 가족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경비 부담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둘째 날은 먼저 허난설헌 생가에 들렀다.

 

 

여기서는 언제나처럼 생가 주변의 솔숲이 제일 마음에 든다. 솔향을 맡으며 미인송 사이로 아침 산책을 즐겼다.

 

 

난설헌의 묘가 우리 고장에 있어서 더욱 애정이 가는 여인이다. 만날 때마다 애잔해지기는 마찬가지다.

 

 

허난설헌기념관을 둘러보다가 한 액자에 이름을 '虛'난설헌이라고 잘못 적은 걸 보고 실소했다. 이런 무신경을 어찌 할꼬.

 

 

다시 바닷가를 찾았다. 이번에는 경포해변이었다. 이틀 사이에 남항진부터 경포까지 남북으로 연결된 여러 해변에 모두 발자국을 찍은 셈이 되었다. 

 

 

경포해변 소나무숲은 올봄 산불의 직격탄을 맞았다.

 

 

주변 지역은 화마가 할퀸 여파가 생생했다. 멋진 소나무들이 사라진 게 너무 안타까웠다.

 

 

경포대에 올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다. 두 사람은 서로 "이리 오너라"를 복창했다.

 

 

마지막으로 오죽헌에 들렀다. 난설헌과 사임당은 같은 16세기를 살면서 상이한 운명의 길을 걸은 두 여인이었다. 역사 기록에 남지 않은 조선 시대의 재능이 뛰어난 여인들과 애틋한 사연들은 그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주련에는 이런 시구가 적혀 있다

 

得閒多事外

知足少年中

種花春掃雪

看록夜焚香

 

한가로움은 많은 일 밖에서 얻고

흡족함을 젊은 시절에도 알더라

봄이면 눈을 쓸어 꽃을 심고

밤이면 향을 사르고 책을 읽는다네

 

 

오죽헌에서 늘 살펴보는 나무는 배롱나무와 율곡매다. 안타깝게도 율곡매는 외과 처치를 받으며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수령 600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니 천수 이상을 누린 나무라고 해야겠다. 

 

 

오죽헌을 끝으로 이른 귀경길에 올랐다. 이틀 가득 돌아다니기에는 체력에 부치는 나이가 되었다. 점심은 양평휴게소에서 해결했다.

 

강릉은 수도권에서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지만 1박을 하니 훨씬 더 여유로웠다. 늙어가는 특징 중 하나가 밖에서 잠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잠자리가 달라지면 아무래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쉽게 피곤해진다. 젊었을 때와 다른 점이다. 아무 데나 쓰러져도 쉽게 잠들던 시절은 지나갔다. 다행히 나는 금주를 한 이후로 여행을 가도 다음날이 개운해졌다. 전에는 술을 주거니받거니 하다가 주취로 다음날 일정을 망치는 일이 허다했다. 이번에 B는 대작할 상대가 없으니 혼자서 몇 잔 홀짝이다가 일찍 불을 끌 수밖에 없었다. 금주를 하니 술이 주는 낭만은 사라졌지만 동시에 주정이나 헛소리도 없어졌다. 하나를 잃고 둘을 얻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