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17

이순(耳順)

얼마 전에 초등 단톡방을 나왔다. 문재인 정부를 향한 저주의 말이 너무 지나쳐서다. 경상도 농촌 출신에 나이가 칠십을 바라보는 노인들이니 정치 성향이야 뻔하다. 어디서 따오는지 황당한 글을 퍼서 나르는데 작년 여름부터 정도가 심해졌다. 태극기 부대의 집회가 기세를 올리기 시작할 때다. 단톡방에 있는 20여 명 중 나 혼자만 외톨이다. 나는 입도 뻥긋 못한다. 정기 모임에 나가서 정치 얘기가 나오면 너무 불편하다. 듣고만 있자니 속이 뒤집히는데 그렇다고 논쟁을 할 수도 없다. 도저히 설득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두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모임에 나가지 않은지도 꽤 되었다. 단톡방에 올라오는 글을 매일 쳐다보는 것도 스트레스여서 이번에 단톡방도 탈퇴했다. 7, 80년대에는 지역색이 국민을 둘로 가르더니, 2..

참살이의꿈 2020.03.05

먼 데서 찾아온 벗

14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며 주유천하를 한 공자는 68세가 되어 노나라에 돌아왔다. 아무 소득이 없는 빈손 귀국이었다. 이때부터는 직접 정치하기를 포기하고 대신 제자를 기르는 일에 전념했다. 나이 73세(BC 479년)에 세상을 뜰 때까지의 5년이 공자 생애에서 가장 여유 있고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처음에 공자의 이런 말씀이 나온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벗들이 먼 데서 찾아와 주면 반갑지 않을까? 남들이 몰라주더라도 부루퉁하지 않는다면 참된 인간이 아닐까?" 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온 不亦君子乎 어쩌면 사상을 압축한 듯한 이 말씀은 공자 생애의 말기, 즉 마지막 5년의 어느 때쯤에 하신 듯하다.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

참살이의꿈 2019.08.21

춘추전국 이야기

공자(BC 551~479)는 춘추시대 후기에 살았다. 시대 구분을 보면 춘추시대는 주나라가 수도를 낙읍으로 옮긴 BC 770년에서 BC 403년까지, 전국시대는 BC 403년에서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다. 공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배경을 알아야겠기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는 공원국 선생이 쓰고 있는데 전체 12권으로 계획되고 있다. 현재 9권까지 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이번에 3권까지 읽었다. 춘추오패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1권이 제(齊) 환공, 2권이 진(晉) 문공, 3권이 초(楚) 장왕을 다루고 있다. 춘추시대 중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나라의 세력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제후국이라는 명분이 유지되고 있던 때가 춘추시대였다. 형식적이었다해도 주로부터 권위..

읽고본느낌 2016.09.04

[펌] 도올의 교육입국론

혁신 교육감 시대를 위한 도올의 교육입국론 1. 총론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파랑을 격파하며 나아간다.”(讀萬卷書, 破萬里浪) 진리 탐구를 위해 눈물겨운 여정을 감행하였던 신라의 구법승들이 유학 장도에서 읊었던 장쾌한 절구의 한 소절! 어찌 만 리의 파랑이 서해바다의 파랑일 뿐이리오? 그것은 기구한 우리 인생의 파랑이요, 기나긴 반만년 역사의 격랑이요, 충절과 반역, 수구와 혁명, 억압과 자유의 기복으로 점철된 우리 정치사의 풍랑이리라! 공자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열 가호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나처럼 충직하고 신의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공자는 타인과 구별되는 자신의 인간됨의 특징을 “..

길위의단상 2014.06.27

임류의 자족

따뜻한 봄날에 백살이 다 된 임류라는 노인이 겨울에 입던 갖옷을 그대로 걸치고, 지난 가을에 떨어진 이삭을 밭이랑에서 주우며 노래를 부르다 걸어가다 하였다. 이것을 위나라로 가다가 벌판을 바라보던 공자가 보고는 뒤따라 오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노인은 말을 걸어 볼 만한 사람인 것 같다. 누가 가서 말을 해 보겠느냐?" 말 잘 하는 자공이 자청하여 밭 언덕을 가로질러 노인에게 가서 측은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이렇게 이삭을 주우며 노래를 부르시는데, 선생께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전혀 후회하신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나 임류는 들은 척도 않고 발걸음을 옮기며 노래를 불렀다. 자공 또한 노인이 말을 할 때까지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노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말하였다 "내게 후회..

참살이의꿈 2013.04.29

대동사회

(禮記)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옛날 공자께서 신농씨 제사에 참석하시고 나서 성문 위에서 쉬다가 서글프게 탄식하셨다. 자유가 곁에 있다가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탄식하십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도(大道)가 행해졌을 때는 천하가 공공의 것이었고 어질고 능력 있는 자를 뽑아서 신의를 가르치고 화목을 닦게 하니 사람들은 그 부모만을 홀로 부모라 여기지 않았고, 그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늙은이는 편안하게 일생을 마치게 했으며, 젊은이는 다 할 일이 있었으며, 어린이는 잘 자라날 수 있었으며, 과부 홀아비 병든 자를 불쌍히 여겨서 다 봉양했다. 남자는 직업이 있고 여자는 시집갈 자리가 있었으며, 재물을 땅에 버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반드시 자기를 위해 쌓아두지는 않았다. 몸소 일하지 않..

참살이의꿈 2012.12.25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공자가 제나라로 가는 도중에 곡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매우 슬펐다. 공자가 하인에게 말했다. "이 곡소리는 슬프기는 하지만 누군가 죽어 상을 당한 슬픔은 아닌 것 같다." 좀 더 나아가니 어떤 사람이 낫과 새끼줄을 들고 있었다. 공자가 수레에서 내려 다가가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제 이름은 구오자(丘吾子)입니다." "당신은 지금 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슬프게 곡을 하고 있소?" 공자의 질문에 구오자가 대답했다. "제게는 살아감에 있어 세 가지의 실책이 있었습니다. 이를 오늘에야 뒤늦게 깨달았으니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때문에 이를 슬퍼하여 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자는 다시 곡을 시작하는 구오자를 향해 물었다. "세 가지의 실책이라니요. 내게 숨김없이 말해주시기..

참살이의꿈 2012.08.30

소설 공자

는 최인호 작가의 근작 장편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료에 근거하여 공자의 삶을 재구성했다. 공자의 출국과 주유천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가 오늘과 별로 다르지 않다. 2천 년 전 예수가 살았던 유대 사회도 마찬가지다. 성인의 삶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책이다. 책에는 공자 외에 노자와 장자, 예수 이야기도 나온다. 공자의 사상과 비교하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유가와 도가의 차이를 좀더 명료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 차이가 그분들의 삶에서도 완연히 드러난다. 노자는 세상에 알려지자 함곡관을 통해 사라졌지만, 공자는 끝없이 세상과 권력을 찾아 들어간다. 불가능한 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시밭길을 가는 것이다..

읽고본느낌 2012.08.28

행단 측백나무

중국 곡부에 있는 행단(杏壇)은 '행(杏)'이라는 나무가 있는 공자 학당을 뜻한다. 이 '행(杏)'을 학자에 따라 은행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고, 살구나무로 보는 사람도 있다. 어느 나무가 맞는지는 객관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현재 행단은 측백나무에 둘러싸여 있다. 수백 년 된 측백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이 나무 구경에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측백나무는 예로부터 군자의 상징으로 절이나 문묘에 많이 심어왔다. 왕족의 묘지에는 측백나무를 심었다. 행단 주위에 측백나무를 심은 것은 이해가 된다. 군데군데 향나무도 섞여 있다. 이 측백나무 숲을 보면 '행(杏)'이 은행나무냐, 살구나무냐는 논쟁이 무색해진다.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는 공자가 직접 심었다는 나무도 있다. '선사수식회(先..

천년의나무 2012.08.03

중국 여행 - 곡부

인류의 스승, 공자의 고향인 곡부(曲阜)를 찾아가는 날이다. 연태에서부터 고속도로를 7시간 넘게 달려야 닿는 먼 거리다. 아침 5시에 숙소를 나섰다. 버스를 교체하는 소동을 겪으며 오후 2시가 되어서야 곡부에 도착했다. 중국의 여름 날씨는 무척 뜨거웠다. 인구 10만 정도의 소도시인 곡부에는 세 개의 대표적인 공자 유적지가 있다. 삼공(三孔)이라 부르는 공묘(孔廟), 공부(孔府), 공림(孔林)이다. 공묘는 공자를 기리는 사당이고, 공부는 공자의 후손들이 살던 지역, 공림은 공자 묘가 있는 숲이다. 삼공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셋을 거의 달리기 하듯 훑어보는데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삼공 인근의 거리 모습. 곡부 전체가 온통 이런 기념품 가게들이다. 곡부는 공자로 먹고 산다고 해도 ..

사진속일상 2012.08.03

장자[208]

이른바 네가지 근심이란 큰일을 경륜한다고 큰소리치고 쉽고 평상적인 것을 변경하여 공명을 드러내려 하는 것을 '외람됨'이라 한다. 지혜를 믿고 일을 전단하며 남을 무시하고 자기만 이롭게 하는 것을 '탐욕'이라 한다. 잘못을 보고도 고치지 않고 충고를 듣고도 억지를 부리는 것을 '똥고집'이라 한다. 남이 자기에 동조하면 옳다 하고 제 뜻과 다르면 옳은 것도 그르다 한다. 이것을 '교만'이라 한다. 이것이 네 가지 근심이다. 이러한 팔자를 버리고 사환을 행하지 않아야 비로소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所謂四患者 好經大事 變更易常以괘功名 謂之도 專知단事 侵人自用謂之貪 見過不更 聞諫愈心謂之흔 人同於己則可 不同於己雖善不善 謂之矜 此四患也 能去八疵無行四患 而始可敎已 - 漁父 1 이 편은 공자가 어부를 만나 도를 묻는 ..

삶의나침반 2012.05.30

장자[204]

그자는 노나라 협잡꾼 공구가 아니냐? 내 말을 그대로 전해라. 너는 함부로 문왕, 무왕을 팔며 거짓말을 지어내고 나뭇가지 같은 관을 쓰고 죽은 쇠가죽으로 띠를 두르고 번다한 요설을 꾸며 밭 갈지 않고 베 짜지 않으면서 호의호식한다. 혀와 입술을 놀려 제멋대로 옳고 그름을 만들어 천하의 임금을 홀리고 천하의 선비를 근본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그릇된 효제를 지어내어 요행으로 벼슬과 부귀를 노리는 자이니 너의 죄는 크고 지극히 막중하다. 빨리 돌아가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네 놈의 간을 내어 점심 반찬으로 먹으리라. 此夫魯國之巧僞人孔丘非邪 爲我告之 爾作言造語 妄稱文武 冠枝木之冠 帶死牛之脅 多辭繞說 不耕而食 不織而衣 搖脣鼓舌 擅生是非 以迷天下之主 使天下學士 不反其本 妄作孝悌 以僥幸於封侯富貴者也 子之罪大極重 ..

삶의나침반 2012.04.22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 책이 출판된 게 1999년이니 어느새 13년이 지났다. 제목이 도발적이어서 당시에 많은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었다. 지금 한 걸음 비켜서서 읽어보니 그렇게 호들갑을 떨 내용도 아니다. 이 책은 라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제목 덕분을 많이 본 것 같다. 당시 한국은 IMF 환란이 지나고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할 때였다. 책에서는 그런 시대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지 반성함과 동시에 비난할 대상도 필요했을 것이다. 지은이는 1910년 한일합방, 1950년 6.25, 1997년 IMF를 근세에 우리가 겪은 3대 위기로 보고 그 원인을 분석한다. 지은이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그런 위기의 근원에는 우리 문화와 의식을 지배한 유교에 있다고 말한다. 현란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읽고본느낌 2012.03.29

장자[201]

공자가 진나라 채나라 사이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이레 동안 더운 음식을 먹지 못하고명아줏국에 쌀 한 톨 넣을 수 없어안색은 심히 고달픈데 방에서 거문고를 타며 노래했다.안회는 나물을 다듬고자로와 자공은 불평하며 말했다."선생은 두 번이나 노나라에서 축출됐고위나라에서는 발자국을 지우며 숨어야 했으며송나라에서는 나무를 베어 압사당할 뻔했고상나라 주나라에서는 곤경에 처했고진나라 채나라에서는 포위당했으니,선생을 죽이려는 자는 죄주지 못했고선생을 욕보여도 막을 수 없는데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그치지 않으니군자의 염치없음이 이 같을 수 있는가?"안회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이를 공자에게 고했다."자로와 자공은 속이 좁은 사람이다.불러오너라! 내 타일러 주겠다."자로와 자공이 들어왔다.자로가 먼저 말했다."이와 ..

삶의나침반 2012.03.28

장자[200]

공자가 안회에게 일러 말했다. "회야! 집은 가난하고 비천하게 살면서 왜 벼슬하지 않느냐?" 안회가 답했다. "벼슬을 바라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성 밖에 오십 무의 밭이 있어 족히 죽을 먹을 수 있으며 성안에 십 무의 밭이 있어 족히 삼베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북과 거문고는 스스로 즐겁고 스승의 도를 배우니 스스로 즐겁습니다." 공자는 정색하며 얼굴빛을 바꾸고 말했다. "훌륭하구나! 너의 뜻이! 내 듣건대 만족할 줄 아는 자는 이익 때문에 스스로 묶이지 않고 스스로 깨달음이 있는 자는 이익을 잃어도 두렵지 않고 마음을 수양한 자는 벼슬이 없어도 부끄럽지 않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암송한지 오래였으나 지금 너를 통해 마음으로 터득하게 되었다. 이는 나의 복이다." 孔子謂顔回曰 回來 家貧居卑 胡不仕乎 顔..

삶의나침반 2012.03.23

답다는 것에 대하여

제나라 임금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공자가 말한 본뜻이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단순히 자기 위치와 신분에 맞게 처신을 잘 하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들어있다고 믿고 싶다. ‘~다워야 한다’는 말에 대해 생각한다. 교직에 있었을 때 학생들에게 잘 썼던 말이기도 하다. 학생이면 학생답게 행동하라고 훈계할 때마다 써먹었다. 그런데 학생이 학생다워야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선생 말 잘 듣고 교칙 잘 지키고 공부 외에 다른 데는 관심을 가지지 말고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되라는 뜻은 아닐까. 내가 썼던 학생다워야 한다는 말에는 분명 그런 뜻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속..

참살이의꿈 2011.08.22

공자의 인(仁)

노장의 도(道)에 비해 공자의 인(仁) 개념은 훨씬 구체적이다. 도가 궁극적 실재를 가리키는 사변적 개념이라면, 인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인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개의 사상 용어가 그렇듯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곤란하다. 붓다의 '자비'와 예수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논어(論語)에는 '인(仁)'이라는 단어가108 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그만큼 '인'은 공자 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인을 무엇이라 정의하든 인에는 세상이나 인간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다. 도나 자비보다도 훨씬 더 현실에 관한 관심이 짙다. 왕필(王弼)이 공자는 무위(無爲)를 완전히 알아서 체화하였기에 노자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논어에서 '인'이 구체..

참살이의꿈 2008.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