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 6

식구

가족(家族)은 나를 기준으로 배우자와 부모, 자식까지를 가리킨다. 가까운 혈연관계로 맺어진 집단이다. 반면에 식구(食口)는 혈연보다 생계와 주거를 공유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같이 음식을 먹으며 생활한다면 한 식구로 보는 게 보통이다. 가족과 식구를 겸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가족이면서 식구가 아닌 경우도 있다. 식구를 직역하면 '먹는 입'이니 그다지 아름다운 말은 아니다. 가족 이야기를 하면서 이 책 제목을 '식구'라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는 김별아 작가의 체험적 가족 이야기다. 부제가 '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인데, 가족만큼 빛과 그늘의 양면성이 두드러진 집단도 드물다. 위로와 따스함의 원천이면서 상처와 집착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거의 유일한 피난처지만, 어떤 때는 족쇄가 ..

읽고본느낌 2019.10.10

이 또한 지나가리라!

김별아 작가의 백두대간 산행기다. 백두대간 종주는 2년에 걸쳐 40차로 진행되었는데, 이 책은 2010년 3월부터 10월까지 16차례 산행에 대한 전반기 기록이다. 부제가 '김별아 치유의 산행'이듯이 단순한 산행기가 아니라 내면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자신을 보듬고 사랑하게 되어 가는 치유의 과정을 담았다. 산행 이야기와 작가가 살며 경험한 내적 고뇌가 반씩 섞여 있다. 작가는 집 가까이 있는 산도 오르지 않던 전형적인 평지형 인간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실시하는 아이와 학부모가 함께 하는 백두대간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갑자기 종주에 나서게 되었다. 전문 산꾼도 어려워하는 백두대간 종주다. 등산 초보자가 감당하기에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을까. 한 달에 두 번씩 주말을 이용했고, 하루 평균..

읽고본느낌 2019.08.10

탄실

최초의 여성 근대 소설가 김명순의 전기소설이다. 김별아 작가가 고발하듯 펴냈다. 김명순의 어릴 때 이름이 탄실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남성 중심의 가부장 문화와 시대와의 불화로 지난한 삶을 한 여인이다. 1세대 여성 문인으로서 나혜석과 닮은 점이 많다. 문정희 시인이 쓴 '곡시(哭詩) - 탄실 김명순을 위한 진혼가'에 그녀의 일생이 잘 그려져 있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한 여자를 죽이는 일은 간단했다. 유학 중 도쿄에서 고국의 선배를 만나 데이트 중에 짐승으로 돌변한 남자가 강제로 성폭행을 한 그날 이후 여자의 모든 것은 끝이 났다. 출생에서부터 더러운 피를 가진 여자! 처녀 아닌 탕녀! 처절한 낙인이 찍혀 내팽개쳐졌다. 자신을 깨워, 큰 꿈을 이루려고 떠난 낯선 땅 내 나라를 식민..

읽고본느낌 2019.03.27

삶은 홀수다

김별아 작가의 산문집이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칼럼을 모은 것이라 시사성이 짙은 내용이 많다. 글마다 후기가 붙어 있는 게 특이하다. 현재 시점에서 본인의 느낌을 재정리했는데, 작가의 글에 대한 책임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작가의 인간적 특징은 산문을 통해 잘 드러난다. 그의 일상이나 관심사, 가치관이 직설적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소설 등의 작품을 통해서는 작가에 대한 내적 정보를 얻기 힘들다. 그러므로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문을 읽는 것이 필수다. 김별아 작가의 인간적 매력도 이 산문집을 통해 넉넉히 확인할 수 있다. 에서는 반짝이는 우리말을 만나는 재미도 있다. 소설가라 어휘력이 풍부한 건 당연하겠지만 적재적소에 배치된 우리말이 문장을 더 빛나게 한다. 새로운 단어를 여럿 알게 되었다. 써..

읽고본느낌 2016.09.23

미실

‘그녀의 치마가 펄럭였을 때 세상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게 시작되는 김별아의 장편소설 을 읽었다. 에 기록되어 있다는 ‘미실(美室)’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소설 내용으로 보면 무척 독특했던 여성이었던 것 같다. 미실은 자신만이 가진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활용해서 임금을 비롯한 뭇 남성들을 손아귀에 쥐고 정치적 야망을 이룬 스케일이 큰 여자였다. 그녀는 총명하고 명민했으며 어떤 면에서는 교활했다. 그녀는 남자들의 심리를 기막히게 파악하고 있었다. 한번 관계를 맺으면 어느 누구도 그녀의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남성들의 로망이었지만 동시에 팜므 파탈이기도 했다. 미실은 대원신통이라는 핏줄을 가진 색공지신(色供之臣)이었다. 즉, 운명적으로 왕을 색으로 섬겨야 하는 왕의 여자였..

읽고본느낌 2010.04.26

[펌] 한겨레 칼럼 셋

목표는 ‘생존’이다 / 김별아 얼마 전, 죽을 뻔했다. 말 그대로 유명을 달리해 황천으로 갈 뻔했다. 이러구러 지극히 평범한 오후였다. 동네에 볼일이 있어 실내복에 점퍼만 달랑 걸친 채로 털레털레 집을 나선 길이었다. 그런데 막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려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빠르게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아차,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 외마디 비명과 함께 어느새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옷깃을 스쳐 발밑에 뒹굴고 있었다. 쪼개진 나머지 반 토막은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의 보닛을 움푹 찌그러뜨렸고, 주위에서 “누구야? 사람이 죽을 뻔했잖아!” 하는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베란다에서 얼음덩이를 던진 누군가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왜, 어쩌다가 살상의 무기가 될 수도 있..

길위의단상 2009.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