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3

조금새끼 / 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 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이 말이 어떻게 생겨났냐고요? 아시다시피 조금은 바닷물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고 쉬는 때랍니다. 모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 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물때는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버지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

시읽는기쁨 2010.04.18

조장 / 김선태

티베트 드넓은 평원에 가서 사십 대 여인의 장례를 지켜보았다. 라마승이 내장을 꺼내어 언저리에 뿌리자 수십 마리의 독수리들이 달겨들더니 삽시에 머리카락과 앙상한 뼈만 남았다, 다시 쇠망치로 뼈를 부수어 밀보리와 반죽한 것을 독수리들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잠깐이었다. 포식한 독수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의식은 끝났다, 그렇게 여인은 허, 공에 묻혔다 독수리의 몸은 무덤이었다 여인의 영혼은 무거운 육신의 옷을 벗고 하늘로 돌아갔다, 독수리의 날개를 빌어 타고 처음으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었을 게다. 장례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유족들은 울지 않았다, 침울하지 않았다, 평온했다 대퇴골로 피리를 만들어 불던 스님의 표정도 경건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살아생전 못된 놈의 시신은 독수리들도 먹지 않는다고 ..

시읽는기쁨 2009.06.05

꽃게 이야기 / 김선태

흔히 보름 게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설이 있지요. 왜냐구요? 이놈들은 주로 보름 물때에 탈피를 하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하여, 겉은 번지르르 해도 속은 텅 비어 있으니 그야말로 무장공자無腸公子라는 말씀이지요. 허나, 서해 어느 갯마을에는 이 속설을 살짝 뒤집은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지요. 보름달이 뜨면 괜시리 시골 처녀들이 밤마실을 나가듯 야행성 꽃게들도 먹이 활동을 나간다지요. 그런데 달빛이 하도나 밝아 물속까지 훤히 비추면서 꽃게들도 그림자를 드리우니, 아 글쎄 제 그림자인 줄을 모르는 이놈들은 등 뒤의 무슨 시커먼 물체에 화들짝 놀라 삼십육계 게걸음을 친다는 겁니다. 한참을 쫓기다 이젠 안 따라오겠지 하고 돌아보면 따라오고 잠시 바위틈에 숨었다가 나가도 다시 따라오니 참 그만..

시읽는기쁨 2008.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