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5

허깨비 상자 / 김창완

TV를 보는데 뉴스가 나왔다 전쟁이 나서 폭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도망가고 애들이 울고 연기가 하늘같이 올라가는데 탱크가 달려오고 난리 난리가 났다 금세 장면이 바뀌고 광고가 나왔다 맛있는 걸 먹으면서 깔깔거리고 웃고 춤추며 걸어갔다 저래도 되나 싶었다 - 허깨비 상자 / 김창완 TV만 아니라 이 세상도 허깨비 놀음이겠지. 쯧쯧 몇 번 혀를 차주고는 금방 고개를 돌리고 희희덕거린다. 세상만사에 대해서 그렇다. 하긴 타자의 고통을 나의 아픔으로 여긴다면 몸성히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말씀이 아닌가. 예수님도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자리에서 지인이 그랬다. 자신은 사람들과 투명한 벽을 쌓고 살아간다고. 상대의 온기나 사정을 알려고 하..

시읽는기쁨 2023.02.04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준비물 설탕 소다 국자 불 뚜껑을 열면 연탄 냄새 콧구멍 수세미질을 한다 코에 구멍이 뚫리는 것 같다 날름거리는 불꽃 위에 설탕 담은 국자를 갖다 대면 꿀이 된다 젓가락으로 소다를 찍어 녹은 설탕물을 저으면 부풀어 오르면서 뽑기가 된다 황홀하게 달콤하고 위험하게 고소하다 국자 색깔은 새카맣다 이제 얻어맞는 일만 남았다 - 뽑기 해 먹기 / 김창완 '오징어 게임' 때문에 다시 뽑기가 유행하는가 보다. 그것도 우리나라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는 열풍이다. 드라마에서는 '달고나'라고 하는데, 이걸 만드는 달고나 만들기 세트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종류가 엄청 많다. 대략 1만 원 정도 하는데 워낙 인기가 있어서 처음보다 두 배나 값이 올랐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자취방이 바..

시읽는기쁨 2021.10.14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 / 김창완

모아요 - 엄마가 숙제하라고 했는데 잠깐만 놀고 하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미끄럼틀에서 넘어져서 이빨이 부러져 치과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어쩌다 이랬냐고 물어서 한 말 / 김창완 시 제목이 길고 내용이 단 한 마디로 된 게 재미있다. 역시 재치있는 김창완 시인이다. 사건이 일어난 상황부터 아이의 대답까지 따라가는 내내 웃음이 나온다. 아이의 "모아요" 한 마디가 절정을 찍는다. 천진난만한 시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예순 여섯 나이에 어디서 이런 동심이 샘솟는지 정말 '모아요'다.

시읽는기쁨 2019.09.09

안녕, 나의 모든 하루

근래에 재미있는 동시를 발표해서 새롭게 보게 된 가수 김창완 씨가 펴낸 책이다. 김창완 씨는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많은 명곡과 노랫말을 탄생시킨 분이다. 그리고 라디오 진행자로, 배우로, 시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신다. 무척 다재다능하신 분이다. 는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는 책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걸 일깨워준다. 주로 한강변을 자전거로 지나며 만난 풍경들 이야기가 많다. 멀리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수성이란 늘 지나는 길에서도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글은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그 중에서 '벗어나기'라는 글이 있다. 가끔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읍시다. 일상의 무게, 욕망의 덫, 근심의 추를 잘라버리고 닻줄처럼 나..

읽고본느낌 2016.10.10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할아버지 참 바보 같다 불알이 다 보이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발톱만 깎는다 시커먼 불알 - 할아버지 불알 / 김창완 가수 김창완 씨가 동시 작가가 되었다. 전부터 예쁜 노래 가사를 쓴 재주 많은 분이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나, 발표한 동시를 보니 그분의 얼굴 표정처럼 동심이 해맑다. 나이는 벌써 환갑이 되신 분이다. 아이들의 눈높이가 아니면 이런 할어버지 불알은 보이지 않는다.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곱다. 시가 무척 재미있어서 깔깔깔 웃었다. 김창완 씨가 어느 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내가 네 살 무렵에 뛰어놀다가 넘어졌는데 바늘이 손바닥에 들어갔어요. 바늘이 부러진 채 박혀버렸지요. 막 울고불고 난리치니까 할아버지가 망치로 손바닥을 막 때렸..

시읽는기쁨 201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