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9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집 바로 앞 소나무에 까치 부부가 찾아와서 둥지를 만들고 있다. 까치집을 짓기 시작한 지는 한 달이 넘었다. 아침에 잠을 깨면 까치가 우짖는 소리가 제일 먼저 반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까치를 길조로 여기고 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바로 집 앞에 -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운 - 까치가 찾아왔으니 올해는 길한 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2023년 계묘(癸卯)년 설날이다. 이번 설은 어머니가 오셔서 함께 지내고 있다. 지난 금요일에 고향에 내려가서 모시고 올라왔다. 어머니는 목감기가 드셔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다. 이래저래 설날 같지 않은 설날이다. 어릴 적 추억 속 설날은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오래다. 설날 전인 섣달 그믐날을 '까치설'이라고 부른..

사진속일상 2023.01.22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태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 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 몇 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시읽는기쁨 2021.12.25

코로나 미사

망부(亡父)의 41주기를 맞아 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리다. 그날도 이렇게 추웠을까. 사고를 당하시고 한밤이 지난 후 열 시간이 넘어서야 가족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가 무심코 받은 수화기 너머의 떨리는 목소리는 청천벽력이었다. 서둘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까지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누워 계셨다. 그 뒤로 40년이 넘는 세월은 많은 아픔의 흔적을 지웠다. 이제는 짧은 시간의 종교 형식 속에서 아버지를 추억할 뿐이다. 가끔 꿈에 어지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괴로웠는데, 언젠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 뒤로는 꿈에서도 뵐 수 없다. 아버지, 그 나라에서는 편히 쉬십시요~ 코로나 때문에 미사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드문드문 앉도록 지정 자리가 있고, 마스크는 당연히 필수다. 성가도 부르지 않는다...

사진속일상 2020.12.04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

어제 저녁에는 서울광장에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을 중심으로 시국미사가 열렸다. 수녀님들을 비롯한 성직자들과 많은 시민들이 기도를 올리며국민의 뜻을 알리었다. 말로는 국민과 소통을 한다면서 국민의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정부에 천주교가 앞장을 서서 경고를 한 것이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현정부가 너무나 답답하다. 아니면 알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는지 모른다.이제 국민의 마음은 결코 쇠고기 문제 하나가 아니다. 쇠고기 협상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국민의 자존감도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의 경제적 풍요 약속 뒤에 숨은 살벌한 세상살이의 허구에 대해 눈을 떠가고 있다. 이 정부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는 한 국민의 저항을 면하기는 어려우리라 본다. 몽둥이와 방패가 촛불을 잠재울 수 없..

사진속일상 2008.07.01

평화가 너희와 함께

낯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일요일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오늘은 흑석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한 시간 삼십 분 가량 산길과 국립현충원 경내를 경유하면서 걸었다. 어제 내린 봄비로 산길은 촉촉하고 더욱 폭신해졌다. 꼬불꼬불 이어지고 갈라지는 뒷산길은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얕은 산이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데 그 능선을 따라난 산길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어떤 곳은 길이 아주 예뻐 돌아가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들게 된다. 부드러운 산길을 걷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다. 날나리 신자여서인지는 몰라도 미사에 대한 집중도는 나로서는 성당의 분위기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제일 유감이었던 것이 본당의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하고 산만하..

사진속일상 2008.03.30

상도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

영세를 받고 가톨릭에 입교한 뒤에 품었던 생각 중 하나는 매 주일마다 성당을 순회하며 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적어도 서울에 있는 성당만은 모두 들러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가까운 성당을 중심으로 찾아다녔으나 계속되지는 못했다.그것은 희망사항으로 아직도 남아있다. 오늘은 상도동성당을 찾아가서 미사를 드렸다. 리모델링을 했다는 성당은 밖에서 보는 모습과 달리 안은 말끔하고 단정했다. 그러나 신자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는 설명대로 너무 복잡한 것이 흠이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신자들과 들어가는 신자들이 뒤엉켜 어지러웠다. 성당 안 역시 옆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며 앉아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했다. 차분한 미사 분위기는 내내 지켜지지 않았다. 마침 오늘이 성지주일이었다. 성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

사진속일상 2008.03.16

절두산 성지

절두산 성지에서 미사를 드리다. 이곳은 예전에 양화나루였던 곳으로 서울에서 양천을 지나 강화로 가는 조선시대 주요 간선도로상에 위치하였던 교통의 요충지였다. 영조 이후에는 송파나루, 한강나루와 함께 서울의 삼대 나루로 상업적 기능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절두산은 양화나루 옆에 솟아있는 높이 약 20m 되는 암벽이다. 원이름은 누에가 머리를 들고 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잠두봉(蠶頭峯)이었는데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룻손들이 그늘을 찾던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140년 전에 수 많은 천주교인들이 참수형을 당해서 그 이름이 절두산(切頭山)으로 바뀌었다는 비극의 현장이다. 1866년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나루까지 침입해 오자 대원군은 ‘..

사진속일상 2005.09.04

작은 예수

작은 시골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드리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작은 예수'에 대해 잠시 묵상를 해 본다. 저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한없는 낮아짐이다. 구유 속의 아기 예수 모습은하느님 자신이 가난과 온유함을스스로 선택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고 작아지라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그러나 가난은 부요함을 정복하고,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낮아짐으로써 높아지고,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역설의 진리를 아기 예수님은 보여주고 있다. 어느 단체에선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黨同伐異'(같은 사람끼리 무리지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를 골랐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은 여전히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싹 트고 있다. 큰 것 보다는 ..

사진속일상 2004.12.25

하느님은 유죄인가?

어제 저녁 미사는 특별했다. 강론 시간에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연극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제목이 `하느님은 유죄인가`였다. 마침 어제가 전교 주일이었다. 바오로딸은 출판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수녀원이다. 가톨릭 신자가 된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강론이 연극으로 대신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형식의 파격이 더욱 좋았다. 그런 파격이 주는 긍정적인 인상과 내용은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감동을 주었다. 연극 내용은 다음과 같다. 神이 법정에 기소되었다. 검사와 검사 쪽 증인 두 명이 神을 고발한 것이다. 검사의 기소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까 말까 한 ..

길위의단상 2003.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