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7

다가오는 것들

40대 중반쯤 되면 생의 전환기가 찾아오는 것 같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인생관의 변화가 일어난다. 주변 환경도 변한다. 이루고 성취하기보다 잃고 보내는 일이 늘어난다. 삶이 익숙해지는 대신 심드렁하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도전을 받으며 일에서도 변방으로 밀린다. 자식은 성인이 되어 더는 곁에 있어 주지 않는다. 나탈리는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재직하며 평범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부다. 성실해 보이는 남편과 십대 후반의 아들, 딸이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요구받는다. 학교에서는 급진 사상을 가진 학생들과 갈등을 빚고, 출판사는 수익 문제로 책 출간을 거절한다. 성장한 자식은 나탈리에게서 멀어지고, 늘 딸에게 의지하려던 어머니도 세상을 뜬다. 이런 사건들이 순차적으로 다가..

읽고본느낌 2019.09.08

비로소 / 고은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 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 비로소 / 고은 짧고 쉽다. 누구나 쓸 것 같으면서도 아무나 쓸 수 없다. 인생의 한 경지에 들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노래다. 시인의 다른 시 '그 꽃'이 떠오른다. '내려갈 때 / 보았네 / 올라갈 때 / 보지 못한 / 그 꽃'. 잃어야 얻을 수 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만 나아갈 때 주위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노를 놓쳤을 때 비로소 넓은 물이 보인다. 구름이 보이고 돛단배도 보인다. 산이 산으로 보이고, 물이 물로 보인다. 지금 내가 젓고 있는 노는 무엇인가? 정신 없이 노를 저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읽는기쁨 2011.06.23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

2천여만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돈도 돈이지만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이라서 지난 몇 달간 우리 부부는 마음고생이 컸다. 아이들에게는 최근에야 그런 사실을 알렸다. 그랬더니 둘째가,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면서, 엄마를 위로하더란다. 그리고 엄마에게 주려고 저금한 게 있다면서 통장을 주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이의 마음씀이 고마워 눈물이 핑 돌았다. 특히,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말이 가슴을 울렸다. 그렇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괴로웠던 순간도 지나고 나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왜 그 일로 그렇게 노심초사했는지 의아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기쁨도 슬픔도 행복도 불행도 영속하는 것은 없다. 조금만 긴 시간을 내다볼 줄 안다면 절망하는 일은 없을..

참살이의꿈 2010.12.30

상실

깨달음을 얻은 붓다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한 구도자가 히말라야 설산을 향해 갑니다. 그는 깨달음에 관한 결정적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게지요.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하며 그는 하나씩 무거운 짐을 버려가며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갑니다. 가진 것을 거의 다 버리고, 수십 만 번 가쁜 숨을 몰아쉰 다음 마침내 세속적 집착도 거의 다 놓아버렸습니다. 최후의 능선을 오른 그는 동굴에 다다라 안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엔 붓다처럼 보이는 도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구도자는 기쁨에 넘쳐 물었지요. “이 세상 최고의 진리를 알려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생애 최대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구도자는 이제 막 깨달음의 문턱에 들어서려는 찰나에 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전부를 바쳐 성찰..

읽고본느낌 2005.03.10

익숙한 것과의 결별

IMF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실직이나 파산을 당했다. 한 순간에 찾아온 낯선 환경에 사람들은 절망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거리로 나섰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 이 말은 그 당시에 유행했던 말이 아니었던가 싶다. 익숙한 것에서 떠난다는 것은 가슴 쓰라린 일이지만 그런 결별이 없이는 새로운 역사가 씌어질 수 없다는 의미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개인에게 있어 어느 순간 불가항력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고 그로 인해 많은 것이 변하지만 그것이 한 인간에게 있어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도전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말로 쓰이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지금은 어떻게 변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만약 내가 사회학자라면 조사, 연구해 보고 싶은 바램도 있다. 그런 외적인 충격이 한 개인..

참살이의꿈 2004.11.30

그래도 노래하고 춤추자

꿈이 사라질 수 있을까? 무엇을 잃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손에 잡고 있던 풍선을 놓치고 어린 아이는 운다. 풍선은 푸른 하늘 속으로 훨훨 날아가버렸다. 이젠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빈 손바닥만 남았다. 어린 아이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빈 손을 보고 서러워 운다. 빈 손...... 그것은 나에게겨울 찬바람이었고, 점점 어두워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빛은 사라지고 별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이었다. 절망과 회한과 무기력, 그리고 아무 의미 없음이었다. ................................. 박이문 님의 글 한 편을 읽는다. 살을 씻는 겨울 찬바람이 몰아쳐 와도, 두 볼에 부서지는 그 한파는 시원하다. 길을 덮어 갈 길을 막아도 산새들처럼 떼지어 날아오는 하얀 함박눈은 아무리 차도 우아..

참살이의꿈 2004.03.30

Learning to fall

가을은 떠나 가고, 떠나 보내는 계절인가 보다. 담안에 계시는 어느 분이 최근에 슬픈 일을 연달아 겪으셨다. 친한 친구가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사망하고,경황이 없던 바로 그 날에 언니가 또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바로 어제의 일이다. 그 분의 지금 심정이 어떠할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 분에게 지금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우리 곁을 떠나간다. 아무 이별의 말도 없이, 무심히 떨어지는 저 낙엽처럼 그렇게 이 곳에서 사라져 간다. 그 분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같은 날 동시에 잃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이다. 밖에는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가을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살다 보면 내 것이라 여겼던 애지중지하던 그 무언가를 상실하는 경험을 ..

길위의단상 200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