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10

화이트 크리스마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밤 사이에 내린 눈이 오전까지 이어지며 지상을 하얗게 덮고 있다. 일주일 넘게 움츠리게 만든 한파도 물러가고 포근한 성탄절이다. 가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친구가 성탄 축하 인사를 전하며 이사야서의 성탄 예언을 적어 보냈다. 이번 크리스마스는 친구에게 더욱 애틋하며 간절한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세상의 연약하고 버림 받고 힘없는 존재들이 따스하게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 당신의 상처 입은 선한 마음도 위로를 받았으면 한다. 흰 눈이 세상을 순일하게 감싸주듯, 안팎의 소란이 잠들고 평화가 찾아온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진속일상 2023.12.25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

크리스마스 이브 눈 내리는 늦은 밤거리에 서서 집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는 늙은 아내를 생각한다 시시하다 그럴 테지만 밤늦도록 불을 켜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빵 가게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빵을 몇 가지 골라 사들고 서서 한사코 태워주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며 20년 하고서도 6년 동안 함께 산 동지를 생각한다 아내는 그동안 네 번 수술을 했고 나는 한 번 수술을 했다 그렇다, 아내는 네 번씩 깨진 항아리고 나는 한 번 깨진 항아리다 눈은 땅에 내리자마자 녹아 물이 되고 만다 목덜미에 내려 섬뜩섬뜩한 혓바닥을 들이밀기도 한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이브 늦은 밤거리에서 한 번 깨진 항아리가 네 번 깨진 항아리를 생각하며 택시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 화이트 크리스마스 / 나태주 몇 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시읽는기쁨 2021.12.25

성탄 구유와 무수리 선착장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아내도 성탄 미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소수 인원으로 제한하느라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더 나이 드신 분에게 양보했다는 게 맞는 말이리라. 대신에 성탄절이 지난 뒤 구유 앞에서 묵상 시간을 가졌다. 성당 안 제단 앞의 아기 예수 구유. 크리스마스 전에 다녀간 첫째 손주가 둘째에게 이런 쪽지를 써 놓고 갔다. 첫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반면에 지금 일곱 살인 둘째 손주는 산타를 철석같이 믿는다. 이 쪽지를 보고도 누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우긴다. 성당에서 나와 무수리 선착장에 들렀다. 무수리 선착장에서는 건너편 정지리를 연결하는 줄배가 다닌다. 경안천은 꽁꽁 얼어 있고, 배도 얼음에 갇혀 있다. 무수리 선착장은 동쪽을 면하고 있으므로 일출..

사진속일상 2020.12.27

성탄절의 기도

더 낮아지고 더 비워지기를 바라는 기원이 촛불로 타오르는 아침에.... "그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 고린토2서 8, 9 "주님은 거대한 분이시지만 스스로 작아지셨습니다. 주님은 부유하지만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주님은 권력자이시지만 스스로 연약해지셨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맨 처음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은 맨 처음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이 어둠 속에 비치고 있건만 어둠은 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씀이 참된 빛이셨으니 그 빛이 세상에 오시어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그분이 세상에 계..

사진속일상 2013.12.25

아기 예수

광주성당에서 두 번째로 맞는 성탄이다. 성탄절이 지난 며칠 뒤에야 아기 예수를 만나보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그분, 불과 몇 사람밖에 이 기쁜 소식을 알지 못했다. 그만큼 비밀스럽고 조용하게 우리 속으로 들어오셨다.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는, 들을 수 없는 걸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하찮고 연약한 존재에서 오히려 신성을 느끼는, 절망의 늪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은 행복하여라.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은 더욱 반짝인다.

사진속일상 2012.12.28

2010 성탄절

이런저런 일들에 마음을 앗기다보니 성탄절이 가까이 온 줄도 몰랐다. 몇 분으로부터 성탄 축하 문자를 받고나니 더욱 마음이 분주해지는 것이었다. 오후에야 사당동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드렸다. 수은주가 영하 15도 가까이 내려가서 대기도 꽁꽁 언 하루였다. 30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였다. 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은 한반도, 아기예수를 보며 평화를 기도한다.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성탄을 경축하는 오늘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인간으로 나타나시고 영원하신 분께서 이제는 이 세상에 들어오셨나이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만물을 당신 안에 일으키시어 온전히 회복시키고 버림받은 인류를 하늘나라로 다시 불러주셨나이다.

사진속일상 2010.12.25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성탄 전야, 고향에 계신 어머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배론 성지에 들러 신부님을 만나 뵙다. 오래 뵙지 못해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건만 도리어 많은 것을 받기만 했다. 그리고 조용한 산 속에 있는 도미니꼬 수녀원에서 성탄 밤 미사를 드렸다. 봉쇄 수도원이라 작은 성당을 두 부분으로 나눠 수녀님들과 신자들이 울타리로 서로 격리된 채 마주보며 앉고 사제는 가운데서 미사를 집전하는 형식이 특이했다. 수녀님들, 마을 주민과 함께한 미사는 조용하고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결코 대도시의 큰 성당에서는 느낄 수 없는 은혜로운 밤이었다. 자정이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감사와 고마움으로 마음이 환했다. 2천년 전, 시공을 초월하신 분이 스스로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날. 스스로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주위를 따스..

사진속일상 2005.12.25

작은 예수

작은 시골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드리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보며 '작은 예수'에 대해 잠시 묵상를 해 본다. 저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한없는 낮아짐이다. 구유 속의 아기 예수 모습은하느님 자신이 가난과 온유함을스스로 선택하셨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들에 대한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낮아지고 작아지라는 가르침으로 들린다. 그러나 가난은 부요함을 정복하고, 부드러움은 강함을 이긴다. 낮아짐으로써 높아지고, 죽음으로써 생명을 얻는다는 역설의 진리를 아기 예수님은 보여주고 있다. 어느 단체에선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黨同伐異'(같은 사람끼리 무리지어 다른 사람을 공격한다)를 골랐다고 한다. 그렇게 세상은 여전히 아우성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싹 트고 있다. 큰 것 보다는 ..

사진속일상 2004.12.25

성탄

"이 세상으로부터 그대의 이름을 떼어버린다면, 세계가 그 근저로부터 뒤흔들리리라." --르낭 오전 성탄 미사에 다녀오다. 성당 마당과 제대 앞에는 아기 예수가 모셔져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미사에 참예했고, 아기 예수를 경배했다. 역사적 예수가 어떤 분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또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우리 영혼을 일깨우는예수와의 만남은 어느 순간 우리를 찾아온다. 그것은 개인에게전 생애를 변화시키는 특별한 만남이 될 수도 있다. 내 존재와 삶을 변화시키는 그런 실존적 만남이야말로 예수가 이 땅에 찾아온 이유일 것이다. 20대 이후 몇 차례 이분과의 만남을 경험했지만 나는 아직 이분을 잘 모른다. 어느 때는그림자를 보고 이분의 ..

사진속일상 2003.12.25

Happy Christmas!

♡ 올림픽공원의 크리스마스 트리 오전까지 안개가 자욱했다.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포근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을텐데...... ................................ 오늘은 가난과 낮음을 택하신 그 분을 텅 빈 마음이 되어 맞이하고 싶다. 내 마음 속에 그 분의 따스한 불빛 하나 간직하고 싶다. .............................. 모든 분들, 그리고 아름다운 창조 세계의 뭇 존재들과 함께 Happy Christmas! 를......... .........................

사진속일상 2003.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