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6

안녕, 나의 빨강머리 앤

작년에 넷플릭스 드라마를 통해 빨강머리 앤을 만난 뒤 소녀 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오래전에 애니메이션으로 빨강머리 앤을 본 것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책을 읽은 기억은 없다. 은 앤을 사랑하는 백영옥 작가의 에세이다. 책을 통해 앤이 주는 희망과 따스한 위로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나 보다. 나 역시 앤을 다시 만나보고 싶어서 고른 책이다. 책에는 앤의 어린 시절을 그린 '안녕 앤'이라는 애니메이션의 예쁜 장면이 많이 나온다. 드라마에서는 초록 지붕 집에 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이 책은 앤이 초록 지붕 집에 살기 전의 더 어릴 때 이야기가 중심이다. 그래서 인물의 이름이나 내용에서 모르는 것이 많았다. 어려도 앤의 천진한 낙천성이나 긍정 마인드는 마찬가지였다. 앤한테서는 어디서 그런 명랑함..

읽고본느낌 2021.08.07

빨간 머리 앤

코로나로 집에서 칩거하면서 넷플릭스에서 찾아본 캐나다 드라마다. 시즌 3까지 27부작으로 되어 있다. 모두 보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1908년에 나온 몽고메리 소설의 원제는 '초록 지붕 집의 앤(Anne of Green Gables)'인데, 이 드라마의 영어 제목은 'Anne with an E'다. 앤이 자기를 소개하면서 한 말인데 앤의 성격을 잘 드러낸 제목인 것 같다.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서 드라마가 원작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재현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무척 재미있게 봤다. 뒤에 소설을 읽으면 오히려 감흥이 깨어질까 두렵다. 드라마의 배경은 19세기 후반의 캐나다 동부에 있는 프린스 에드워드 섬이다. 이 섬에서 쓸쓸히 살아가는 마릴라와 매슈 남매가 사는 초록 지붕 집에 앤이 들어오면서 얘기가 시작..

읽고본느낌 2020.12.01

벌새

올해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다. 나의 올해의 영화로 꼽을 만하다. 1994년,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은희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영화다. 1994년은 성수대교 붕괴라는 참사가 있었던 해다. 김보라 감독의 연출력이 탄탄하고, 특히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진지하면서 따스한 시선이 좋다. '벌새'에서 주목할 캐릭터는 영지 샘이다. 은희를 진정을 다해 이해하고 위로하고 용기를 준다. 학원의 한문 강사를 넘어 인생의 스승, 멘토라 부를 만하다. 은희는 영지 샘을 만났기에 무너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영지 샘은 서울대를 휴학한 운동권 학생이다. 그녀의 행동과 말에서는 소녀에게 주는 격려와 충고 이상의 인생에 대한 통찰이 보인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평생 철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영지..

읽고본느낌 2019.12.02

삶은 농담이다

방학이 되어 찾아온 자유시간이 감사하다. 느닷없이 받아든 선물에 어리둥절하는 아이처럼 아직도 들뜬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이 축복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마음은 여전히 설렌다. 매일 휴대폰 알람에 억지로 잠이 깨어 출근하고정해진 시간표대로 지내야 하는 일과에서 한 순간에 해방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몸과 마음이 적응하는데는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리라.지난 가을에 허리 쪽 돌발변수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히말라야로의 출발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내가 빠진트레킹 팀은 모레 안나푸르나로 출발한다. 덕분에 올 방학은 길고 온전한 휴식이 주어졌다.이 선물 보따리를 앞에 두고 가능하면 천천히 끈을 풀고 싶다. 어제는책장에서 오래된 소설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마침 손에 잡힌 것이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읽고본느낌 2009.12.30

아줌마가 된 소녀를 위하여 / 김기택

마흔이 넘은 그녀는 아직도 나를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 옛날하고 똑같다! 오빠, 신문에서 봤어. 오빠 시집도 읽었어. 두 권이나! 얼굴은 낯설었으나 웃음은 낯익었다. 그녀가 웃을 때마다 중년의 얼굴에서 옛날에 보았던 소녀가 뛰어나왔다. 작고 어리던 네가 다리 사이에 털도 나고 브래지어도 차는 크고 슬픈 몸이 되었구나. 네 가녀린 몸을 찢고 엄마보다 더 큰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나왔구나. 지 세월은 남편이 되고 아이들이 되어 네 몸에 단단히 들러붙어 마음껏 진을 빼고 할퀴고 헝클어뜨려 놓았구나. 삼십여 년 전의 얼굴을 채 익히기도 전에 엄마와 아내를 찾는 식구들이 쳐들어오자 소녀는 얼른 웃음을 거두고 중년의 얼굴로 돌아갔다. 오빠, 갈게. 손 흔들며 맑게 웃을 때 잠깐 보이던 소녀는 돌아서자마자 ..

시읽는기쁨 2008.10.23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문정희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옆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 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됐을 거야 문화 센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시읽는기쁨 2005.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