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10

마지막 변산바람꽃

수리산에 핀 변산바람꽃을 처음 본 건 15년 전이었다. 병목안 계곡을 따라 작은 꽃밭이 펼쳐진 광경은 넋을 잃을 정도로 황홀했다. 바람 따라 살랑거리는 가녀린 변산아씨는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뒤로 3월 초순이면 수리산을 찾아 변산바람꽃과 만났다. 그러나 해가 지날수록 소문이 나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변산바람꽃은 사람의 발길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중에는 눈을 부릅떠야 겨우 몇 송이를 만날 수 있었다. 너무 안타까워 더는 찾아갈 수가 없었다. 지금은 어떤 상태일까 궁금증이 일어 어제 수리산 그 장소를 찾아갔다. 찾는 사람 없이 입구가 조용한 걸 보니 예상대로 변산아씨가 사라진 게 분명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며 들어가 봤지만 역시 변산바람꽃은 없었다...

꽃들의향기 2021.03.04

가련한 변산아씨

수리산 변산아씨를 만나러 가는 걸 망설였다. 두렵기도 했다. 해가 갈수록 서식지가 망가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원인은 나 같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탓이다. 조심한다지만 많은 사람이 몰리고 밟아대면 가녀린 생명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도 궁금했다. 올해의 변산아씨는 어떤 모습일까? 수리산 변산바람꽃 자생지를 안 건 9년 전이었다. 등산길에 우연히 발견했다. 변산바람꽃의 하얀 꽃밭이었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꽃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아서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게 갑자기 유명세를 타면서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찾아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번에 계곡을 오르내리면서 살폈지만 딱 여섯 개체만 확인했다. 이마저도 풍전등화..

꽃들의향기 2015.03.03

수리산 수암봉

수리산에 변산바람꽃을 만나러 갔다가 가볍게 수암봉에 올랐다. 낮 기온이 8도까지 올라가서 봄기운이 잔뜩 느껴진 날이었다. 자글거리는 햇볕을 받으며 산길을 걷는 기분이 좋았다. 이제 길었던 칩거의 시절은 가고 활동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올해는 육체를 좀 많이 움직이자고 다짐한다. 수암봉(秀巖峰, 395m)은 수리산의 연봉 중에서도 높이가 낮은 아담한 봉우리다. 능선 종주 코스에서도 한쪽에 치우쳐 있어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다. 수암봉에서 창박골로 내려가는 길은 그래서 한적하다. 내가 좋아하는 길이다. 가끔 산길을 같이 걷는 부부를 본다. 다정한 대화 소리라도 들리면 부러워서 한 번 뒤돌아보게 된다. 전에는 같이 다녔지만 지금은 아내 무릎이 아파 산에 오질 못한다. 수 년 전 이 길을 함께 걸었던 기억이 나..

사진속일상 2015.03.02

수리산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을 만나는 것으로 한 해의 꽃 데이트가 시작된다. 산에 피는 꽃 중에서는 변산바람꽃이 제일 먼저 개화하기 때문이다. 수리산을 기준으로 한다면 2월 하순에서 3월 중순 사이에 활짝 핀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다. 올해는 평년보다 약간 빠른 편이다. 병목안에서 올라가는 계곡에 변산바람꽃이 피어난다. 2006년에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그때는 수백 송이가 피어 있던 군락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졌고, 십여 포기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탓이다. 몇 년 전까지도 사진사들로 북적댔는데 꽃이 별로 없으니 이젠 찾아오는 사람도 드물다. 소문에 의하면 옆 계곡으로 몰려갔다고 한다. 이곳의 변산바람꽃에게는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이 그래서일까, 금년의 변산..

꽃들의향기 2014.03.04

수리산 노루귀와 변산바람꽃

수리산 변산바람꽃을 보러 가자고 Y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미 때가지난 것 같다고 했더니 올해는 꽃 피는 시기가 늦으니 혹 게으른 변산아씨가 있을지 모른다며 가 보잔다. 마침 어제 눈이 내려서 땅은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이런 데 변산아씨가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실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며 길을 나섰다. 안양역에서 만나서 10번 버스를 타고 병목안 입구에서 내렸다. Y 형의 동료 한 분도 함께 했다.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니는 것도 재미나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시간이 절약되고 편리하긴 하지만 오순도순 걸어가는 재미를 잃는다.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아름다움도 놓친다. 눈의 찬 기운 탓인가, 노루귀는 아직 꽃잎을 열지 않았다. 그래도 이만한 노루귀를 만났으니 감사한 일이다. 며칠 ..

꽃들의향기 2011.03.26

수리산 변산바람꽃

올해도 어김없이 변산바람꽃과 만나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이번에 새로 구입한 백마를 들고 수리산을 찾았다. 아직 새 카메라에 익숙치 않아 변산아씨를 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계곡 그늘에 바람까지 심해 더욱 힘들었다. 집에 와서 확인해 보니 태반이 초점도 못 맞추었고 흔들렸다. 사진은 엉망이었다. 평일인데도 변산아씨를 보러 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 발길이 잦다 보니 변산아씨도 수난이다. 5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보다 개체수가많이 줄었다. 넓은 군락지는 사라졌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꽃을 가만 두지 않은 탓이다. 사진에 방해가 된다고 낙엽을 긁어내는 경우는 다반사다. 여럿이 있으면 꽃사진 찍는데도 경쟁이 붙는다. 그런 것들이 불편하고 민망하다. 사진은 마음에 안 들지만 변산아씨를 만난 것으..

꽃들의향기 2011.03.15

수리산에 오르다

이열치열로 여름과 정면대결해 보는 것은 어떨까?폭염주의보가 내려진 한낮에 아내와 함께 수리산에 올랐다. 때가 때인지라 땀 많이 흘리고, 물 엄청 마셨다. - 산행 시간 ; 10:00 - 15:30 - 산행 경로 ; 수리산역 - 용진사 - 슬기봉(475m) - 칼바위 - 병풍바위 - 태을봉(489m) - 산본고등학교 - 산본역 수리산(修理山)은 변산 아씨를 만나러 몇 번 온 적은 있었지만 정식 산행을 위해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500 m가 안 되는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이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산은 컸고 힘들었다. 거의 30 분마다 한 번씩 휴식을 했다. 아마 더운 날씨 탓도 있었을 것이다. 수리산역에서부터 용진사를 거쳐 슬기봉 아래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에 산책하기 좋은 포근한 흙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08.08.07

수암봉에 오르다

변산아씨를 만나러 아내와 같이 수리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변산아씨는 빗장을 꼭 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그 고운 자태를 숨기고만 있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수암봉에 올랐다. 제 3 산림욕장에서 시작하여 네거리 쉼터를 거쳐 수암봉에 오른 뒤 삼거리를 지나 담배촌으로 내려왔다. 약 두 시간여의 산행 중 수암봉에서 삼거리까지의 능선길이 제일 좋았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걸을 때만큼 행복할 때도 없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에 절로 감사하고 행복해지는 때다. 무엇을 가지고 못 가지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뭇 생명들과 함께 숨을 쉬고 보고 느끼며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 같고 그지없이 고마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조용하고 ..

사진속일상 2008.03.01

수리산에서 봄꽃과 만나다

올 봄은 유난히 바쁘게 지나가고 있다. 집 안팎으로 몇 가지 변화가 겹쳤기 때문이다. 4월 둘째주가 되어서야 겨우 바깥 나들이를 할 짬이 생긴다. 원래는 Y 형과 천마산에 갈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형의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혼자 수리산을 찾았다. 수리산은 이른 봄에 변산바람꽃을 보러 찾아갔던 산이다. 계곡을 중심으로 왠지 많은 봄꽃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산이다. 역시 기대되로 꽃이 많이피어 있다. 주종은 현호색과 개별꽃이다. 그중에서도 현호색은 지천으로자라고 있다. 수리산을 현호색의 산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것 같다. 아침 일찍 도착했으므로 아직 햇살이 들어오지 않는 계곡의 꽃들은 이슬을 달고 있다. 제비꽃 두 종류를 보다. 특이하게 바위 틈에서 자라는 미치광이풀도 보다. 큰괭이밥이다. 현호..

꽃들의향기 2007.04.14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을 보다

변산바람꽃을 보기 위해Y 형과 같이 수리산을 찾았다. 사진으로만 접한 변산바람꽃이 너무나 예뻐서 지난 달에는 변산까지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는데 다행히 서울에서 가까운 수리산에도 변산바람꽃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간 것이다. 어제 과음을 한 탓에 몸 상태가 아주 좋지 않아서 높이가 500m에도 못 미치는 수리산을 오르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올들어 처음 황사가 나타났고, 안개까지 자욱하게 끼여 시정 또한 좋지 않았다. 슬기봉에 오른 뒤 동막골을 향해 내려가는 계곡길에서 정말 바람같이 나타난 변산바람꽃 군락지를 만날 수 있었다. 4시간여 산길을 걷는 동안 꽃이라고는 유일하게 만난 것이다. 어디서 피는지도 전혀 알지 못하고 찾은 산이었기에 더욱 기뻤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둘이서 악수를 나누며 환호 하였다...

꽃들의향기 2006.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