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3

힘이 있어야 싸우지

평생을 싸움 한 번 안 하고 살아온 부부도 있다지만 우리는 자주 티격태격한다. 그나마 젊을 때보다는 다투는 빈도나 강도가 줄어들었다. 퇴직을 했으니 얼굴 맞대고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이만만 해도 다행이지 싶다. 애정이 없으면 다툴 일도 없지 않은가. 아직 얼굴 쳐다보기 싫은 정도는 아니다. 다투는 원인은 주로 내 버럭, 하는 성질 때문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큰소리부터 치니 서로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순간적으로 화가 불같이 일어난다.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잠시면 족하다.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긴다고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반대다. 꼬리를 내리는 건 늘 내가 먼저다. 화도 잘 내고 용서도 쉽게 구한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뒤끝이 없어진 게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길위의단상 2019.11.11

청도 가는 길 / 김윤현

삶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싸움인가 막걸리에다 수북이 씹히는 콩 꿈도 꾸지 못했던 한약재 이건 내 즐거운 식단이 아니다 나는 이제 풀을 기대할 수 없나 분수에 맞지 않게 배불리 먹고 소화시킨 건 근육 같은 전의(戰意) 세상이 받아 주면 싸움도 죄가 되지 않는 곳으로 뿔을 단단히 세우고 뚜벅뚜벅 걷는다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온전해지는 세상 지고 나면 길고 긴 밤이 온다 무너뜨리는 상대도 알고 보면 내일 또는 먼 훗날의 내가 아닌가 청도로 가는 길목마다 수북이 돋아난 적개심 무엇을 위하여 싸워야 하나 - 청도 가는 길 / 김윤현 새벽 천둥소리가 포탄 떨어지는 소리로 들려 무척 불안했다. 혹 전면전이라도 벌어진 게 아닌가, TV를 켜려고 거실로 나가는데 아내가 밖에 비가 오고 있다며 안심시켰다.자라 보고 놀..

시읽는기쁨 2010.11.30

개사돈 / 김형수

눈 펑펑 오는 날 겨울 눈 많이 오면 여름 가뭄 든다고 동네 주막에서 술 마시고 떠들다가 늙은이들간에 쌈질이 났습니다 작년 홍수 때 방천 막다 다툰 아랫말 나주 양반하고 윗말 광주 양반하고 둘이 술 먹고 술상 엎어가며 애들처럼 새삼 웃통 벗고 싸우는데 고샅 앞길에서 온 동네 보란 듯이 나주 양반네 수캐 거멍이하고 광주 양반네 암캐 누렁이하고 그 통에 그만 흘레를 붙고 말았습니다 막걸리 잔 세 개에 도가지까지 깨뜨려 뒤꼭지 내몰이에 성질 채운 주모 왈 오사럴 인종들이 사돈간에 먼 쌈질이여 쌈질이 - 개사돈 / 김형수 요사이 느닷없는 개논쟁이 붙었다. A 씨가 신문에 신임 총리를 두둔하며 야권을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B 씨가 노욕과 변절이 불쌍하다는 글을 썼다. 그러자 C 씨가나서서는 B 씨를 향해 '개소..

시읽는기쁨 2009.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