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청도 가는 길 / 김윤현

샌. 2010. 11. 30. 10:29

삶이란 결국 피할 수 없는 싸움인가

막걸리에다 수북이 씹히는 콩

꿈도 꾸지 못했던 한약재

이건 내 즐거운 식단이 아니다

나는 이제 풀을 기대할 수 없나

분수에 맞지 않게 배불리 먹고

소화시킨 건 근육 같은 전의(戰意)

세상이 받아 주면

싸움도 죄가 되지 않는 곳으로

뿔을 단단히 세우고 뚜벅뚜벅 걷는다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온전해지는 세상

지고 나면 길고 긴 밤이 온다

무너뜨리는 상대도 알고 보면

내일 또는 먼 훗날의 내가 아닌가

청도로 가는 길목마다 수북이 돋아난 적개심

무엇을 위하여 싸워야 하나

 

- 청도 가는 길 / 김윤현

 

새벽 천둥소리가 포탄 떨어지는 소리로 들려 무척 불안했다. 혹 전면전이라도 벌어진 게 아닌가, TV를 켜려고 거실로 나가는데 아내가 밖에 비가 오고 있다며 안심시켰다.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꼴이었다.

 

청도는 소싸움의 고장이다. 그러나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소들이 있을까. 그들은 원래 초원에서 풀을 뜯는 온순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살기에 적개심과 전의를 불태우며 싸움터에 나간다. 주인의 명령을 충직하게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요사이 돌아가는 판을 보면 동물의 세상이나 사람의 세상이나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제 대통령은 TV 앞에 나와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며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요사이 방송되고 있는 SBS의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툰드라의 어느 종족은 설원에서 조난 당한 사람이 있으면 원수라도 반드시 구해주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다고 한다. 극한상황에서는 어디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나도 그럴 가능성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이때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므로 조난자를 돕는 일은 비록 원수일지라도 의무사항이다. 그게 함께 살아가는 생존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정녕 이곳은 상대를 무너뜨려야 내가 온전해지는 세상이란 말인가. '무너뜨리는 상대도 알고 보면 내일 또는 먼 훗날의 내가 아닌가' '청도로 가는 길목마다 수북이 돋아난 적개심 무엇을 위하여 싸워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