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 본인은 일신상의 사정으로 인하여
이처럼 화창한 아침
사직코자 하오니
그간 볶아댄 정을 생각하여
재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머슴도 감정이 있어
걸핏하면 자해를 하고
산 채 잡혀 먹히기 싫은 심정으로
마지막엔 사직서를 쓰는 법
오늘 오후부터는
배가 고프더라도
내 맘대로 떠들고
가고픈 곳으로 가려 하오니
평소처럼
돌대가리 놈이라 생각하시고
뒤통수를 치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 사직서 쓰는 아침 / 전윤호
드디어 오늘 명퇴원에 도장을 찍었다. 평생을 다닌 직장 그만 두는 게 무척 간단했다. 두 장의 종이에 인적사항 적고 도장을 누르면 그만이었다. 홀가분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그리고 뒤통수 맞을 일도 없을 것 같다. 멋지게 사직서를 던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내 결단을 존중하며 기특하게 생각한다. 샌, 너의 선택은 옳은 것이다. 이제 조용히, 그리고 아름답게 사라질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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