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12

난민의 설움

파란이 없어지면서 블로그가 티스토리로 옮겨졌다. 파란 블로거들은 집단 난민이 되어 낯선 티스토리에 새 터를 잡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나로서는 벌써 두 번째의 강제 이주다. 한미르에서 파란으로, 이번에는 파란에서 티스토리로,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지난 경험이 있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이번에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초기에 올렸던 사진들은 'invalid file'이라는 글이 뜨며 나오지 않는다. 파란에서 티스토리로 이관되면서 빠진 파일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줄 간격과 띄어쓰기도 엉망이 되어 버렸다. 시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 크다. 또한, 내용 검색도 되지 않는다. 가장 답답한 건 태그 내용이 모두 사라진 것이다. 태그가 없으면 블로그에 글을 쓰고 정리하는데 너무 애로사항이 많다. 옛 모습..

길위의단상 2012.07.15

이삿날의 해프닝

이사 가는 날이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집 주인,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와 함께 모였다. 집 주인한테서 전세금을 돌려받았는데 1억7천만 원짜리 수표 한 장과 10만 원짜리 수표 열 장이었다. 그리고 세입자에게 지난달의 관리비 등으로 10만 원짜리 수표 넉 장을 건넸다. 그렇게 모든 절차가 끝났다. 큰 돈을 가지고 다니기가 뭣해 일단 은행에 넣기로 했다. 창구에서 수표를 내미는데 이런, 1억7천만 원짜리 수표가 사라지고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어디 흘려버린 게 아닌가, 어떻게 하지, 이 일을 어쩌지. 하필 제일 큰 덩치가 없어지다니. 가슴이 쿵쾅거리고 세상이 까맣게 변했다. 만약 이 돈이 날아간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허둥대다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해서 수표를 세어보니 10만 원권 일곱 ..

길위의단상 2011.04.20

도시 유목민

올해가 결혼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돌아보니 그동안 참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면목동의 단독주택에서 시작하여 며칠 전 광주로 이사한 것까지 포함하면 30년 동안에 열두 번이나 옮겨 다녔다[면목동-잠실동-가락동-장안동1-장안동2-문정동-성남-문정동-암사동-여주-구의동-사당동-광주]. 30년 동안 평균 2.5년에 한 번씩 이사를 다닌 셈이다. 도시 유목민이라고 할 만하다. 열두 번의 이사 중에서도 이번이 제일 힘들었다. 전에는 이사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직장에 나가면 되었으나 이젠 내 할 일이 많아졌다. 나이 탓도 있어 몸살까지 났다. 집안 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피곤해지니 짜증이 생기고 아내와는 티격태격도 자주 했다. 전세살이도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다양하게 살아보는 맛이 있다며 ..

참살이의꿈 2011.04.19

첫째가 독립해 나가다

첫째가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해 나갔다. 그동안 부모와 30년을함께 살았으니 오랜 기간이었다. 이른 아이는 고등학생 때부터 외지 생활을 하는데 서른이 되도록 엄마의 직접 보살핌을 받았다는 건 행운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다. 이번에 불가피하게 따로 떨어져 살게 되었지만 첫째의 성숙을 위해서는 잘 된 일이다. 엄마와의 정신적 탯줄은 빨리 끊으면 끊을수록 좋다고 믿는다. 나는 14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 외할머니가 수발을해주셨지만 학업에 대한 대부분의 결정은 혼자서 해야 했다. 지금처럼 전화로 상의하고 연락할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부모님의 사랑에서 너무 일찍 헤어졌다. 내 심리 속에는 그런 경험의 부족이 있음을 느낀다. 그러나 늦어도 대학교을 졸업하고 나서는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게..

사진속일상 2011.04.10

이사 준비

이사를 앞두고 살림 정리를 하고 있다.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골동품이 적은 편인데 그래도 어디 숨어 있었는지 버릴 물건들이 자꾸 나온다. 그동안에 손 대지 않았던것이 사진 박스다. 30년 전부터 찍었던 사진과 필름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필름을 보관하고 있으면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겠지, 싶었는데 이제껏 한 번도 써먹어 본 적이 없었다. 사진을 꺼내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옛 추억을 내동댕이치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지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30년의 영상이 짧은 시간에 지나갔다. 어떤 사진은 한참을 붙잡고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의 모습이 타임머신이 되어 주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젊었던 내 모습도 어색한데 다른 사람이야 오죽하겠는가. 인생이란 그저 ..

사진속일상 2011.04.05

새 집 구경

10년 동안의 전세살이가 끝날 날도 멀지 않았다. 몇 달 뒤에 새 집으로 입주를 하기 때문이다. 집 공개 행사가 있어 광주에 다녀왔다. 내년에는 나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해가 될 것 같다. 인생의 힘든 한 고비를 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해다. 그래서 광주로의 이사는 보금자리를 다시 장만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내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엉켰던 매듭이 풀리고 길고 어두운 터널이 끝나기를 기대한다. 이곳이 인생 제 2막을 여는 나와 우리 가족의 아름다운 터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진속일상 2010.12.28

사당동으로 이사를 하다

2년여 만에 다시 이사를 했다. 암사동으로, 구의동으로, 사당동으로, 2년 주기의 이사가 벌써 세 번째다. 도시에서 전세살이는 현대판 유목민의 삶과 비슷해 어느 한 장소나 사람에 대해깊이 사귀지를 못한다. 정착이 아니라 곧 떠날 것이라는 무의식은 삶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도시의 유목민은 초원의 유목민에 비해 너무나 가진 것이 많아 마음도 몸도 번거롭다. 이사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네 식구 작은 몸뚱아리 건사하는데 뭐가 이리 많은 살림이 필요한지 놀라게 된다. 이사할 때마다 버리는 물건이 아내 표현을 빌리면 트럭 한 대가 되는데 그래도 짐은 넘쳐나기만 한다. 이번에도 여러 물건들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 중에서 막판까지 버릴까 말까 고민한 것이 20년 가까이 함께 생활했던 벤자민과다른 나무 화분 두 ..

사진속일상 2007.04.07

짐을 정리하다

터에 내려가서 짐을 정리했습니다. 내외가 서로 안과 밖에서 말없이 일을 했지요. 예상 외로 일은 쉽게 끝났습니다. 살림살이가 그렇게 단촐했던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해서 어디 하나에 눈을 두지 못했습니다. 눈길 닿는 모든 것에 내 꿈과 땀과 눈물이 들어있으니까요.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옛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나올 것 같았습니다. 지금 돌이키면 많은 기억들 중에서도 힘들고 어려운 것들만 떠오를 게 틀림없습니다. 이웃 아줌마가 찾아와서 "허전하겠네요"라며 말을 건넵니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리고 비 오는 날도 있고, 길을 걷다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듯 우리 인생길에도 영고성쇄의 부침이 반복됩니다. 다만 사람마다 주기와 진폭이 다를 뿐이지요. 그러니 일이 뜻대로 잘 풀린다고 지..

참살이의꿈 2007.01.19

이사를 하다

2년 만에 다시 이사를 하다. 도시에 내 집이 없는 사람은 현대판 유목민이다. 어떨 때는 집주인과의 관계에서 서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이래서 많은 사람들이 악착같이 내 집을 가질려고 애쓰는구나 하고 긍정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변화가 두려워진다. 정든 장소, 정든 사람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되는 것이 부담이고 스트레스다. 변화란 젊은 때는 희망이지만 나이가 들면 두려움이 된다. 그러나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한 장소에 안주하는 대신 변화는 신선한 자극을 주고 삶의 의미를 깨우쳐 준다. 이사를 자주 할수록 생활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간다. 살림이 간소해진다. 너무나 많은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에 둘러싸여 있음을 이사를 통해서 깨닫게 된다. 사람들을 깊이..

사진속일상 2004.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