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21

이순신의 바다

황현필 선생이 쓴 충무공 이순신의 이야기다. 전기라기보다는 충무공이 치른 해상 전투를 중심으로 장군의 활약상이 그려져 있다. 국뽕기가 있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사실(史實)에 입각한 드라이한 설명이 좋았다. 또한 각 전투마다 지도가 첨부되어 있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 다시 확인하게 된 것은 조선 해군의 힘이었다. 천자총통 등의 함포로 무장한 판옥선은 일본 해군보다 뛰어났다. 충무공은 우리 해군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하여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충무공의 기본 전술은 일본의 조총 사거리 밖 먼 거리에서 포로 일본 함선을 깨뜨리는 것이었다. 지형이나 때를 이용한 충무공의 전술이 더해져서 23전 23승의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임진왜란이 완전히 다른 ..

읽고본느낌 2023.06.28

빨치산의 딸

정지아 작가가 25세 때인 1990년에 쓴 두 권으로 된 실록 장편소설이다. 빨치산 출신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을 소설 형식으로 쓴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에 책으로 나오자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출판사 사장은 구속되기까지 했다. 작년에 작가가 쓴 가 인기를 끌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출판된 지 30년이 지나서야 읽어보게 되었다. 은 프롤로그, 1부, 2로 구성되어 있는데 프롤로그는 빨치산의 딸로 자라난 작가의 성장기다. 빨갱이의 딸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느낀 좌절과 분노, 부모와 사회에 대한 반항심 등이 아프게 다가온다. 1부는 아버지, 2부는 어머니의 빨치산 활동이 독립적으로 그려져 있다. 해방이 되고 육이오 전쟁을 거친 1945년에서 1955년까지의 10년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격동..

읽고본느낌 2023.02.07

어느 독일인의 삶

이 책의 주인공은 브룬힐데 폼젤(Brunhilde Pomsel)은 나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비서로 일하다가 독일 제국의 멸망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책 표지에 실린 그녀의 프로필이다.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범죄자들 중 하나인 요제프 괴벨스를 위해 일했다. 나치 선전부의 속기사였던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폼젤은 자신이 나치 가담자였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은 철저히 비정치적이었고 그 당시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직장, 의무감, 소속감에 대한 욕구였다는 것이 그녀의 항변이다. 나치 만해의 규모와 잔학성은 종전 뒤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2017년 10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폼젤은 그저 평범한..

읽고본느낌 2023.01.02

더 홈즈맨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세 편을 보았다. 우연히 본 영화였는데 세 편 모두 인상 깊고 여운이 남았다. 이러기는 쉽지 않은데 횡재한 느낌이었다. 그중 한 편이 '더 홈즈맨(The Homesman)'이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가 배경인데 척박한 환경에 내동댕이쳐진 여성들을 다루고 있다. 서부영화 장르에 들어갈 테지만 아메리칸 원주민과의 싸움이 소재인 전통적인 서부영화와는 결을 달리 한다. 고통받는 약자를 향하는 감독의 시선이 따스하다. 무대는 서부 개척의 최전선인 네브라스카로 거친 환경과 힘든 노동,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여자의 삶은 피폐하다. 그중 세 여자는 정신 이상을 일으키고 미혼이었던 커디에 의해 그녀들의 고향인 아이오와로 옮겨지게 된다. 커디는 짐마차에 세 여자를 태우고 400마일의..

읽고본느낌 2022.03.13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9/11 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다. 며칠 전에 그라운드 제로에서 추도식이 열리는 뉴스를 봤다.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발생한 이 미증유의 테러로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여객기가 무역센터에 충돌하고 이어서 건물이 붕괴하는 장면은 지금 봐도 모골이 송연하다. 최근에 넷플릭스에 나온 다큐멘터리 드라마 '터닝 포인트: 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Turning Point: 9/11 and the War on Terror)'은 테러가 일어난 배경과 미국의 보복 과정을 복기하듯 보여준다. 사건에 관여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9/11과 이후 경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실성 높은 다큐멘터리다. 발단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다. 미국은 반..

읽고본느낌 2021.09.16

사마에게

시리아 내전의 중심지에서 전쟁의 참상과 복잡한 시리아 상황을 전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촉발된 시리아의 민주화 투쟁은 알아시드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내전으로 발전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민주화 운동으로 시작했으나 종파간 대립과 외세가 개입하면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국제적 분쟁 지역이 되어 버렸다. 러시아와 이란이 정부군을 지원하고, 미국과 사우디 등의 연합군은 반군을 지원한다. 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민간인과 어린아이 같은 약자들에게 돌아간다. 9년이 넘는 기간 동안 40만 명이 사망했고 천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했다. 21세기 문명 세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한반도 상황도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지 말라는 보장이 ..

읽고본느낌 2020.07.12

1917

전쟁은 일으킨 놈이 있고 치러야 하는 놈이 있다. 전자는 소수의 권력자이고, 후자는 다수의 민중이다. 특히 어린이와 여자 같은 약자와 젊은 청년이 고통을 겪는 직접적인 피해자다. 전쟁을 일으킨 놈은 이겼건 졌건 상관없이 전범으로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전쟁을 일으킬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영화 '1917'은 특별한 느낌의 전쟁 영화다.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연합군으로 참여한 영국군과 독일군이 서부전선에서 참호전을 벌이고 있다. 어느 날 독일군이 참호를 버리고 작전상 후퇴를 한다. 이때 영국군의 한 부대가 돌격 작전을 계획하는데 이는 독일군의 함정이었다. 이를 간파한 지휘소에서 작전 취소를 명령하려 하지만 연락이 안 된다. 독일군이 후퇴하면서 모든 시설과 영국군의 통신 설비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

읽고본느낌 2020.04.08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레마르크의 전쟁소설이다. 독일의 고등학생이었던 파울 보이머는 담임 선생의 권유로 반 친구들과 함께 자원입대한다. 10주 훈련을 마치고 곧바로 독일과 프랑스군이 참호전을 벌이고 있던 서부 전선에 배치된다. 애국심에 불타서 군인이 되었지만, 소년들이 감당하기에 전쟁터는 너무나 잔인하고 처절한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친구들이 하나하나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파울은 전쟁의 무의함과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자들의 기만과 허위의식을 알아가며 분노한다. 는 전쟁을 참혹함을 고발하는 소설이다. 극한 상황에 내몰린 병사들은 인간성이 파괴되고 싸우는 기계가 된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적을 죽여야 한다. 그런 지옥에서도 인간에 대한 연민이나 전우애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소설은 이념이나 이데..

읽고본느낌 2020.04.01

경안리에서 / 강민

"이 놈의 전쟁 언제나 끝나지. 빨리 끝나야 고향엘 갈 텐데." 때와 땀에 절어 새까만 감발을 풀며 그는 말했다. 부풀어 터진 그의 발바닥이 찢어진 이 강산의 슬픔을... 말해 주고 있었다 지치고 더럽게 얼룩진 그의 몸에선 어쩌면 그의 두고 온 고향 같은 냄새가 났다 1950년 8월의 경안리 주막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우리는 같은 또래끼리의 하염없는 얘기를 나누었다 적의(敵意)는 없었다 같은 말을 쓸 수 있다는 행복감마저 있었다 고급중학교에 다니다 강제로 끌려나와 여기까지 왔다는 그 그에게 나는 또 철없이 말했었다 "북이 쳐내려오니 남으로 달아나는 길"이라고 적의는 없었다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은 모두 잠이 들고, 우리만 하염없는 얘기로 밤을 밝혔다 그리고 새벽에 그는 떠..

시읽는기쁨 2019.09.24

손자병법

중국 사상은 크게 두 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손자와 법가로 대표되는 실리 중심의 사상과, 유가와 묵가로 대표되는 도덕과 윤리 우선의 사상이다. 우리가 명분과 이념을 중시하는 후자의 영향을 받고 있다면, 중국인의 의식과 사유는 전자가 지배하고 있다. 그 사상의 원류가 손자라 할 수 있다. 임건순 선생이 쓴 에서는 손자를 단순한 병법 연구가가 아니라 중국의 중요한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보고 있다. 손자를 모르고서는 중국인과 중국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손자는 근원적 원리에 대한 통찰과 함께 노자, 한비자, 상앙 등 다른 사상가에게 영향을 준 사상사의 거목이었다. 많은 해설서가 이 책을 실용서나 자기계발서로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손자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지성, 혜안을..

읽고본느낌 2018.01.26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1,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다. 대략 의미만 파악하기 위해 훑어보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다. 굳이 정독할 필요까지는 없다. 책의 많은 부분이 다양한 통계와 그래프로 되어 있다. 전체의 요지만 이해하면 족하다. 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인류와 역사에 대한 희망적인 보고서다. 암흑에서 광명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 내면에는 악마와 천사가 공존하고 있다. 초기의 야만과 폭력의 세계로부터 인류는 점차 개명되어 천사의 힘이 악마를 누르는 데까지 발전했다. 전 세계적인 폭력과 전쟁의 감소 현상을 통계로 보여주면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아름답게 보는 경향이 있다. 루소를 비롯한 자연주의자의 관점이 대표적이다. 문명이 등장하기 전의 인류는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상상한다. 그것..

읽고본느낌 2016.06.06

베트남전쟁

우리 세대는 베트남보다 월남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월남 전쟁이 한창일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극장에 가면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월남 소식이 꼭 나왔다. 한국군의 전투 장면과 베트콩 몇 명을 사살했다는 승전 소식, 그리고 대민 봉사활동이 주로 나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 면사무소에 근무하셨던 아버지가 가지고 오신 월남 화보집을 재미있게 보았다. 매끄러운 종이에 선명한 칼러 사진이 실린 책이 아주 고급스러웠다. 월남의 아름다운 풍광도 그때 접했다. 씩씩한 군가와 함께 가슴 두근거리게 하던 파월장병 환송식도 기억에 새겨 있다. 그러나 월남전의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가질 나이는 아니었다. 1975년에 베트남전쟁이 끝났으니 올해가 종전 40주년이 되는 해다. 우리나라는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남에 32만..

읽고본느낌 2015.11.22

전쟁광 보호구역 / 반칠환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전쟁놀음에 미쳐 진흙으로 대포를 만들고 도토리로 대포알을 만드는 전쟁광들이 사는 마을 줄줄이 새끼줄에 묶인 흙인형 포로들을 자동소총으로 쏘아 진흙 밭에 빠뜨리면 무참히 녹아 사라지고 다시 그 흙으로 빚은 전투기들이 우타타타 해바라기씨 폭탄을 투하하고 민들레, 박주가리 낙하산 부대를 침투시키면 온 마을이 어쩔 수 없이 노랗게 꽃 피는 전쟁터 논두렁 밭두렁마다 줄맞춰 매설한 콩깍지 지뢰들이 퍽퍽 터지고 철모르는 아이들이 콩알을 줍다가 미끄러지는 곳 아서라, 맨발로 달려간 할미꽃들이 백기들 들면 흐뭇한 얼굴로 흙전차 타고 시가행진을 하는 무서운 전쟁광들이 서너 네댓 명 사는 작은 전쟁광 보호구역이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 전쟁광 보호구역 / 반칠환 남북한이 ..

시읽는기쁨 2013.03.13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는 191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고, 1941년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유대계였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고, 제3수용소에서 노예보다 못한 나날을 보내다가 종전을 맞았다. 는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174517'로 지낸 10개월간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고발하는 작품을 여럿 읽었지만 는 그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이 책은 단순히 대학살의 현장을 증언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광기에 사로잡힐 수 있는지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 또한 강제수용소의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폭력으로 인간이 얼마나 타락하고 존엄성을 상실하는지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인간 존재의 ..

읽고본느낌 2012.02.16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다룬 작품은 수없이 나와 있다. 그동안 영화, 다큐멘터리, 소설, 자서전, 르포 등 다양한 장르로 소개되어 그 내용이 익숙하다. 그런데 는 특이하게 만화로 된 작품이다. 1992년도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유대인은 쥐로, 나치주의자는 고양이로 그려저 있는 것이 도리어 일상의 친숙함 마저 앗아가 버리는 충격과 감동을 준다. 저자인 아트 슈피겔만은 2차대전 후 태어났지만 그의 부모는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가서 모진 고초를 겪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가족과 친척, 이웃 대부분은 게토와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슈피겔만은 아버지로부터 구술 받은 고난의 여정을 만화로 표현했다. 다른 경험담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인간의 야만성에 대해 치를 떨게 되고, 인간이 견딜 수 있는 ..

읽고본느낌 2011.02.10

전쟁의 공포

새벽에 장모님에게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왔다. "야들아, 큰일 났다. 전쟁이 났다. 빨리 테레비 틀어봐라." 아니,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가슴이 방망이질 치면서 얼른 리모콘으로 손이 갔다. 그러나 TV는 조용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조금 뒤에 사정이 밝혀졌다. 새벽의 병원 구급차 소리를 듣고 전쟁 경보 사이렌으로 착각하신 것이다. 장모님은 전쟁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것 같다. 지난 연평도 사건 이후 전쟁이 일어날까 봐 밤잠을못 주무신다. 물론 자식들 걱정 때문이다. 전쟁 안 일어나니까 염려 마시라고 해도 너희들은 안 겪어봐서 모른다고 하신다. 6.25를 경험한 세대 중에 전쟁의 상처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망나니 북한의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전쟁 불사까지 외치는 사람들이 적지 ..

길위의단상 2010.12.26

작은 연못

‘작은 연못’은 1950년 7월의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재현한 가슴 아픈 영화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주민들은 미군의 소개령으로 피난길에 나서는데 민간인으로 위장한 적군이 침투해 있다는 잘못된 첩보로 폭격 명령이 내려진다. 살아남은 주민과 피난민들은 쌍굴로 피신하는데 다시 미군들로부터 집중사격을 받는다.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심지어는 아이 울음소리를 숨기기 위해 아이를 질식사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피신했던 300여 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25명뿐이었다. 이 사건은 1999년에 AP 통신 기자들에 의해 최초로 보도된 후 2005년에야 우리 정부도 그 실체를 인정했다. 영화는 크게 자극적인 장면이나 극적 요소 없이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히려 그..

읽고본느낌 2010.07.07

세계에서 가장 도덕적인 군대

오늘 아침 신문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충격적이다. 올초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침공했는데 그때 이스라엘 저격병들이 입은 티셔츠의 뒷면 모양이다. 임산부를 총구로 겨냥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위에는 히브리어로 '저격부대', 밑에는 영어로 '1 SHOT 2 KILLS'(1발에 2명 사살)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런 티셔츠를 부대 단위로 주문해서 단체로 입었다고 한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가자 침공에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함이 심각하다는 게 드러났다. 팔레스타인 11세의 어린 소년을 인간방패로 삼고,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하고, 사람이 들어있는 집을 통째로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등 수많은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22일 간의 침공 동안 숨진 희생자가 1,453 명인데 팔레스타인인이 ..

길위의단상 2009.03.25

주먹이 법

이복형제가 있었다. 힘 세고 사나운 형은집과 재산을 삣고는 동생을 쫓아냈다. 약하고 힘 없는 동생은 고작 하는 화풀이가 형 마당에 돌팔매를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형은 버릇을 고쳐준다며 동생을 찾아가 흠씬 두들겨 패 주었다. 형이 그렇게 무법자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은 동네 이장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 때문이다. 동네 이장 역시 주먹이 법이고 힘이 정의라는 논리를 가훈으로 떠받들고 있다. 이장의 마음에 드느냐 안 드느냐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된다. 여기는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마을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침공해서 며칠 째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실 이건 전쟁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두들겨패고 있기 때문이다. 한쪽은 비행기 한 대, 탱크 한 대도 없다. 지금까지..

길위의단상 2009.01.07

님은 먼 곳에

씨너스 이수에서 영화 '님은 먼 곳에'를 보았다. 경상도 종갓집 며느리인 순이(수애)는 손자를 바라는 시어머니 등살에 매달 군대 간 남편을 면회 간다. 그러나 애인이 따로 있는 남편은 순이를 무시하고 잠자리도 같이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남편은 연락도 없이 베트남으로 떠나고, 순이는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 대신 베트남으로 가야하는 처지가 된다. 나중에는 기필코 남편을 찾겠다는 오기가 생겨군 위문단의 일원이 되어 베트남에 상륙한다. '써니'라는 예명을 가진 가수가 되어우여곡절을 겪으며 결국 전쟁터 한가운데서 남편을 만나는데... 이 영화는 관객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영화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는 여성성(女性性)을 읽었다. 영화는 ..

읽고본느낌 2008.07.26

웰컴 투 동막골

며칠 전에 극장에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보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한국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것은 군대 있을 때 외출 나가 본 ‘겨울여자’ 이후 거의 30 년만입니다. 두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집중하며 볼 수 있었으니 한국영화도 이제 많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어색하고 어설픈 장면들도 있었지만 크게 트집 잡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이었느냐고 같이 영화를 보았던 아내에게 물었더니 ‘꽃을 꽂은 소녀’가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그 소녀를 안고 한 동막골 주민이 “이 아이를 어찌 할까요?”하는 말이 애절하고 감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그 장면에서 눈물이 어렸습니다. ‘꽃을 꽂은 소녀’는 “아파, 아파”라고 하면서 둘러싸고..

읽고본느낌 2005.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