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삶 11

다르게 살아보기

"감옥살이하느라 죽을 지경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집 안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친구가 한 말이다. 워낙 바쁘게 돌아다닌 친구니 그럴 만도 하다. "야, 이럴 때 좀 다르게 사는 방법을 배워 봐." 나는 친구와 달리 평소에도 방콕 형이다. 코로나19라 해도 별로 다른 게 없다. 오랜만에 큰소리칠 기회가 찾아왔다. 잠잠하던 우리 동네에도 확진자가 생겼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40대 남자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하루가 지나니 동선이 공개되었다. 확진 판정받기 전 며칠간 그가 들린 장소가 시간대별로 상세히 드러났다. "뭘 이렇게 싸돌아다녔지?"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인데 분주하게 산 게 한눈에 보였다. 점심 00음식점, 저녁 00음식점, 00당구장, 00치킨집 등 상호명만 바뀔 뿐 ..

참살이의꿈 2020.03.15

맑고 향기롭게

전에 살던 집 거실 벽에는 '맑고 향기롭게'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신영복 선생이 쓴 붓글씨 복사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 '맑고 향기롭게'는 법정 스님의 정신을 기리는 불교 운동으로 알고 있다. 종교를 떠나서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이 무척 아름다웠고, 그 말이 주는 의미를 내 삶의 지표로 삼고 싶었다. 가당찮은 바람인 걸 알지만, 그때는 피안을 향한 무한 갈망의 시기였다. 며칠 전에 을 읽다가 '맑은 믿음'이라는 구절을 접하고 문득 '맑고 향기롭게'가 떠올랐다. 불교가 구현하려는 경지는 결국 '맑음'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맑은 믿음'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믿음이 무엇인지, 이 시대에 어떤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맑은'이 주는 무게감이 만만찮다. 하물며 맑은 생각,..

참살이의꿈 2020.01.07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지난 추석 연휴 중 SBS TV에서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요한과 씨돌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김용현 선생의 삶을 소개하는 감동적인 내용이었다. 젊은 시절의 요한은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김승훈 신부와의 만남을 계기로 요한은 독재 타도의 시위 현장에서 앞장을 섰다. 그의 활동 중 하나가 1987년에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사병의 억울한 죽음을 고발한 일이다. 군에서는 훈련을 받다가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은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 후보에게 표를 행사했다고 구타를 당해 숨진 것이다. 요한은 사병의 가족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후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요한이 주장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요한은 사라졌..

참살이의꿈 2019.09.21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 후쿠다 미노루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즐겁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유쾌하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자신의 시간을 재는 일.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행복하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몸에 좋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마음에도 좋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건강하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다투지 않는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자연에게 다정해진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남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진정한 평화.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지구를 계속 사랑하는 일.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우주.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나다. - 분발하지 않는다는 건 / 후쿠다 미노루 2001년에 일본에서 '분발하지 않기 운동'이 일어났었다. 이와테 현의 지사를 지낸 마스다 히로야 씨가 이끈 운동으로, 다른 지역..

시읽는기쁨 2013.08.23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얼마 전에 어느 인기 강사가 구설수에 휘말린 일이 있었다. 자기계발서 같은 거 안 보고 인문학 서적을 본다는 젊은이에게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어디 갖다 쓸려고? 인문학 서적을 보고 느낀 정수를 자기계발서로 쓴 거야. 건방 떨지 말고 자기계발서도 봐." 결국 그는 논문 표절까지 논란이 되더니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다. 잘 나가다가 한순간에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그에게 동정이 되는 바도 있지만, 인문학 서적의 정수를 모은 게 자기계발서라는 그의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인문학 서적과 자기계발서는 애초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는 사람들에게 이 책 를 권하고 싶다. 세상과 나를 지금과는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책 제목 그대로 노력과 열정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

읽고본느낌 2013.04.24

무엇이 소중합니까?

"의사가 소중합니까, 농부가 소중합니까? 교회나 절이 소중합니까, 논밭이 소중합니까? 도시가 소중합니까, 농촌이 소중합니까? 황금이 소중합니까, 똥오줌이 소중합니까? 권력이 소중합니까, 풀 한 포기가 소중합니까? 명예가 소중합니까, 나무 한 그루가 소중합니까? 돈이 소중합니까, 흙이 소중합니까? 컴퓨터가 소중합니까, 물이 소중합니까? 고급 승용차가 소중합니까, 맑은 공기가 소중합니까? 입시교육이 소중합니까, 음식교육이 소중합니까? 값비싼 승용차가 소중합니까, 건강이 소중합니까? 옷이 소중합니까, 먹는 음식이 소중합니까? 영어 공부가 소중합니까, 땀이 소중합니까? 총칼이 소중합니까, 괭이가 소중합니까? 재산이 소중합니까, 행복이 소중합니까? 돈이 소중합니까, 자녀가 소중합니까? 부모 재산이 소중합니까, 부..

참살이의꿈 2012.05.03

Live Light, Eat Right

"Live Light, Eat Right." 어느 분이 소개해 준 이 말을 올 한 해 나의 화두로 삼기로 한다. "가볍게 살고, 바르게 먹자." 둘 중에서 '바르게 먹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최근에 현대식 양계 공장에서 닭을 키우는 얘기를 들었다. '대형 양계 공장에서는 닭들이 좁은 곳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살기 위해 오로지 먹는 일만 되풀이한다. 모든 본능이 차단당하자 심한 스트레스로 닭들은 서로 부리로 쪼며 공격한다. 공장에서는 상품 가치 보호 차원에서 닭들의 부리를 미리 자른다. 그리고 닭들은 성장 속도를 높이기 위해 성장촉진제와 항생제가 다량 투여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 달 남짓이면 육계가 되어 고스란히 우리 식탁으로 올라와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 대형 농장에서 키워지는 닭의 운명은 태생부..

참살이의꿈 2012.01.17

학교도 병원도 없는 세상

이반 일리치는 50대 중반부터 뺨에 종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혹은 점점 커지고 고통도 심해져 아편을 먹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리치는 한 번도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다. 병원 없는 세상을 꿈꾼 그의 신념대로 자신도 철저히 병원 진료를 거부하며 살았다. 그는 종양 때문에 엄청난 괴로움을 겪으면서도 아무런 의학적인 처치를 하지 않았고, 특별히 민간요법이나 자연요법을 찾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그 종양 때문에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수술을 거부하고 고통을 감내하면서 20년을 산 것이다.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비판도 받지만 일리치의 사상은 문명과 인간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한다. 또한 일리치가 위대한 점은 자신의 말과 글에서 표명한 신념대로 일생을..

참살이의꿈 2010.04.19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삶을 좋고 나쁨의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 같다. 삶을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을 수 있고, 그중에서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는 절대적 기준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좋은 삶의 정의가 구체적이면서 보편적이기는 어렵다. 우리는 특정 시대의 가치관의 범주 안에서 좋은 삶과 나쁜 삶을 말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또한 삶은 특정의 가치관을 떠나서도 가볍게 언급하기 어려운 진지하고 엄숙한 측면이 있다. 이 세상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은 삶이 있으며, 그 하나하나는 범접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심지어 다수로부터 손가락질을 받는 삶 안에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타인의 삶에 대해 특정 가치관의 잣대를 가지고 손쉽게 평가할 수는 없는 ..

참살이의꿈 2009.09.25

우리 현실과 희망의 대안

교양강좌의 마지막 시간은 고려대 강수돌 선생님의 ‘우리 현실과 희망의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들었다. 강 선생님은 시골 마을에서 생태적 삶을 몸으로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돈의 학문 대신 삶의 학문을, 죽은 이론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실천을 추구하시는 분이다. 그래선지 강의 내용이 살아서 감명 깊게 전달되었다. 특히 그분의 온화한 말투, 평화스런 얼굴은 그분의 실제 삶이 어떠한지를 다른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강의 내용을정리해 보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란 어떤 것이며, 그 체제 하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가정과 학교, 직장으로 나누어서 진단해 본다. 자본주의란 쉽게 말해 돈 놓고 돈 따먹는 경쟁의 체제다. ..

참살이의꿈 2006.10.27

GRUMPS

다시 3월이 찾아왔습니다. 밤부터내리기 시작한 눈이 오전까지 계속되더니 지금은 햇볕이 납니다. 땅에 쌓인 눈은 햇볕을 받더니 벌써 다 녹아 버렸습니다. 봄이 이미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합니다. 저에게 3월은 마치 새해의 시작 같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오늘을 보냅니다. 곁들여 좀더 아름답고 멋있게 살자고 작은 다짐도 합니다. 이 지상에서 주어진 삶의 즐거움을 찾아내고 향유하지 못한다면 이곳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 조금은 억울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람살이의 제일은 역시 행복입니다. 이 별에 와서 그래도 즐겁고 행복했었다고 마지막 독백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GRUMPS라는 말이 있습니다. Green(녹색의), Responsible(책임감 있는), Unassuming(겸손하고 욕심이..

참살이의꿈 2005.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