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사진 34

한 장의 사진(4)

35년 전인 1971년 설날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그 무렵에 아버님께서는 매년 설날이면 읍내에 있는 사진사를 불러서 이렇게 가족사진을 찍으셨다. 당시의 시골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마침 이때는 내가 대학시험에 합격하고 입학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지금도 고향집은 옛 모습 그대로지만 긴 세월만큼이나 사람들은 많이 변했다. 아버님은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대부분 초등학생이던 동생들은 벌써 4, 50대의 장년이 되었다. 내 나이도 이미 사진 속의 아버님 연배를 넘어섰다. 지금 돌아보니 생전의 아버님은 명절 때면 많이 쓸쓸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님 형제분은 2남3녀였는데 다른 집들과 달리 명절이어도 차례는 늘 아버님 혼자서 지내셨다. 외지에 나가 계시던 삼촌은 고향에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시집간 여동생들..

길위의단상 2006.01.30

한 장의 사진(3)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발령받은 학교가 K여중이었다. 당시에는 대학 4년 동안의 성적순으로 발령을 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정식교사로 발령을 받지 못하고 우선 임시교사로 이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기간제교사였던 셈이다. 그해 12월에 다른 학교로 정식 발령을 받았으니까 여기서는 약 6개월 정도 근무했었던 것 같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기억에 남는 학교이다. 부임하던 첫 날 교무회의 시간에 선생님들께 인사하던 내 모습이 선연히 떠오르는데 어느덧 벌써 30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그때와 지금과의 거리가 한 호흡 간격만큼이나 짧게 느껴진다. 그때 내 자리는 시청각실이었다. 선배 선생님 한 분과 같이 있었는데 시청각기자재를 선생님들께 빌려주고 관리하는 일..

길위의단상 2005.11.05

한 장의 사진(2)

이 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69년 가을, 학교 운동장에서 찍은 것이다. 당시 내가 다닌 학교는 인문계 고등학교였지만 가을 운동회는 거창하게 치렀다. 아마 그 때 포크댄스가 유행이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그 해 운동회 때는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포크댄스 경연을 했다. 뻣뻣한 남학생들이 포크댄스를 배우느라고 오후 수업을 빼먹으면서까지 연습에 몰두했다. 처음 접해보는 부드러운 리듬과 몸동작을 따라가지 못해 연신 웃음보를 터뜨리던 기억도 난다. 옆에 있는 여학교에서 파트너를 초대하자고 학교 측에 건의를 했지만 결국은 우리들 절반이 여장을 하고 대회를 열었다. 키 작고 곱상하게 생긴 아이들이 여자 파트너 역을 맡았다. 나는 친구의 누나 옷을 빌려서 입었는데 진짜 여자 같다고 놀림을 받기도 했다. 이 사..

길위의단상 2005.05.14

한 장의 사진(1)

앨범을 보는데 재미있는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바로 이 사진인데 40년 전에 찍은 우리 가족사진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막내의 돌 기념으로 사진관에 가서 찍은 것이다. 오른쪽에 잔뜩 심술궂은 얼굴로 내가 서 있고, 옆에 어머니가 막내를 안고 있다. 이때 어머니가 30대 중반쯤 되었으니 우리 어머니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가 싶게 젊은 모습이다. 그 옆에 계신 분은 외할머니이신데 이제 백수를 바라보시며 생존해 계신다. 앞에는 어린 동생들이 머리 모양으로 봐서는 잔뜩 멋을 내고 서 있다. 왼쪽의 까까머리는 둘째 동생이다. 이 사진이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사진에 찍힌 부끄러운 내 모습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다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만은 눈을 밑으로 내리깔고 뭔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

길위의단상 2004.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