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원수보다 더 미워지는 날이 많다 티끌만한 잘못이 맷방석만하게 동산만하게 커 보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 보다 돌처럼 작아지고 굳어지나 보다 멀리 동해바다를 내려다보며 생각한다 널따란 바다처럼 너그러워질 수는 없을까 깊고 짙푸른 바다처럼 감싸고 끌어안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스스로는 억센 파도로 다스리면서 제 몸은 맵고 모진 매로 채찍질하면서 - 동해바다 / 신경림 타인에게는 엄격하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내 모습이 부끄럽다. 나이를 헛먹고 있다. 늙어가면서 제일 괴로운 게 옹졸해지는 나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를 만나니 안도현의 '바다가 푸른 이유'라는 글이 생각난다. 스스로 채찍을 들 줄 모른다면 하느님의 매라도 기다려야 마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