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더니 절에 가도 부처님보다는 오래된 나무만 살피게 된다. 우리나라 절은 보통 고목 한두 그루쯤은 있는 법이니 그런 나무 구경하는 재미가 나에게는 가장 좋다. 처음 만나게 되는 나무라면 더욱 반갑겠지만 여러 번 보더라도 또 그대로 반갑기는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나무가 가장 은혜로운 설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앞뜰에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안내문이 없어 정확치는 않지만 내 눈에는 나이가 삼사백 살 쯤 되어 보이는 나무다.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인 나무다. 마치 절을 지키는 정갈한 수도승 같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절을 찾아오는 손님을 허리 굽혀 공손히 맞이하는 모습으로도 보인다. 만약 이 느티나무가 없다면 전등사의 분위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마치 화룡점정처럼 나무는 서 있다. 여름에 전등사를 찾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느티나무의 신세를 졌을 것이다. 오르막길을 올라오느라 흘린 땀을 나무 아래 그늘에 앉아 식히며 바라보는 전등사의 풍경은 시원하다.
전등사를 뒤로 돌아드니 수목장을 하는 숲이 나온다. 나무에는 망자를 나타내는 표시가 걸려 있고 화환이 놓여있는 나무도 있다. 또 어떤 곳에는 작은 향나무가 심어져 있기도 하다. 아마 유골을 묻은 위치를 나타내는 것 같다. 수목장이 바람직한 장례 형식이긴 하지만 숲이 이렇게 무덤화 되는 것도 별로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유족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 수목장이라면 인위적인 표시는 안 했으면 싶다.
문득 오규원 시인도 이곳에서 수목장으로 장례를 치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나는 한 女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女子’로 시작되는 ‘한 잎의 여자’의 시인 오규원, 그분이 묻힌 곳은 한 그루 물푸레나무 아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