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개종은 많이 소비하고 많이 즐기는 삶의 방식에서 자기 안을 들여다보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가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스스로 절제하는 생활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인간의 뿌리 깊은 욕망을 경계하는 삶이다.
돈의 가치가 삶의 가치 위에 군림하고 있다. 한 인간이 번 돈의 양이 그 사람의 삶의 성패를 결정하는 기준이 되어버렸다.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살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관이 되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그런 기준에서 벗어나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에게 직업생활은 다만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 생활을 유지하는 수단을 얻는 일이다. 그에게 진짜 의미 있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다. 책을 읽다가, 산책을 하다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떠오른 생각들을 머릿속에 넣고 갈고 다듬어 글로 풀어내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그래서 돈과 권력의 유혹을 하찮게 여길 수 있고 소비와 향락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구라도 생업에 종사하면서 글 쓰는 사람과 같은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사람들이 여가 시간에 술잔을 기울이거나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휘두르는 대신 책을 읽으며 인생과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온작 유혹과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삶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문화인의 삶이다.
생태적 개종을 하기 위해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뒤집어쓴 먼지를 털어내기 위해 때로는 세상과 시간을 정해놓고 단절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혼자 있기와 고요함을 낯설어하고 두려워한다. 휴대폰이나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친구나 애인과 함께 있지 않으면 쓸쓸해서 못 견딘다.
"최대의 소비, 최대의 쾌락, 그것이 행복입니다. 자신의 원초적 욕망에 충실하십시요. 그것이 자유고 해방입니다." 온갖 매체 광고와 길거리 광고판이 우리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우리 삶을 조롱한다. "세상에는 너무나 좋은 물건도 많고 너무나 멋진 사람도 많은데 너는 겨우 그렇게밖에 못 사냐?" 라는 소리가 귓등을 때리고 머릿속을 맴돈다. "돈이 너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어. 얼굴과 몸매가 너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어. 그 얼굴, 그 몸매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하니?" "혼자 다른 생각해봐야 소용없어. 어차피 세상의 대세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너 혼자 세상을 어떻게 대항해?" "덜 쓰고 더 행복한 방법이 있다고? 인간은 욕망 덩어리고 삶은 그 욕망을 충족하는 과정이야! 성공한 삶은 욕망을 최대한으로 충족시킨 삶이야!"
이런 소리들이 날마다 우리 귀를 통해 머릿속에 전달되고 그런 주문에 휘둘려 우리가 살려는 삶을 살지 못하고 그 소리에 끌려 다니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그저 이미 프로그램에 짜인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닐까? 세상은 우리에게 '즐거운 로봇'이 되라고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생태적 개종을 감행하여 대안의 삶을 살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그들은 소수다. 그러나 다수가 언제나 세상의 의견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새로운 생각을 가진 소수에 의해 변화한다. 다만 그 소수가 다수와 분명하게 구별되는 생각을 가지고 스스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와 계속 대화와 타협과 토론과 논쟁을 벌이면서 설득해야 한다. 그것은 깊은 내면의 수련을 통해 쌓은 이해심과 인내심을 통해 지속될 수 있다. 내면의 힘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소수는 다수에 포함되어 버리고 만다.
환경운동이란 "최대 소비가 최대 행복이다'라는 구호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경제성장제일주의에 대항하는 대안운동이다. 인간중심주의와 물질주의를 벗어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 비물질적 정신적 가치를 존중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먼저 바뀌는 운동이다. 그렇게 바뀐 사람들이 모여 서로 돕고 의지하며 내공을 쌓는 모임이다. 환경운동가는 때로 세상의 먼지와 소음으로부터 고립을 자초하지만 세상과 맞부딪쳐 긴장의 끈을 풀지 않고 세상을 지배하는 가치와 삶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대안의 삶을 몸과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머리와 배를 비우고 긴 호흡을 하며 '창조해 가는 소수'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함께 이 어려운 세상을 끝까지 용기 있고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 정수복 님의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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