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山居 / 徐敬德

샌. 2008. 12. 6. 11:01

花潭一草廬

瀟세類僊居

山簇開軒近

泉聲到枕虛

洞幽風淡蕩

境僻樹扶疎

中有逍遙子

淸朝好讀書

 

- 山居 / 徐敬德

 

화담의 한 칸 초가집은

신선이 사는 곳처럼 깨끗하네

창을 열면 늘어선 산들이 가깝고

베갯머리엔 시냇물 소리가 조용하네

골짜기 깊으니 바람이 시원하고

땅이 외지니 나무가 무성하네

그 속을 거니는 한 사람이 있어

맑은 아침 즐거이 독서를 하네

 

황진이(黃眞伊)가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을 유혹(?)하러 찾아간 곳이 이 시에 나오는 한 칸 초가집이었을지 모른다.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파계시키고 자신만만해진 황진이는 역시 명성높은 학자인 화담도 공략하려 한다. 요사이 말로 하면 황진이는 '펨므 파탈' 쯤 되는 여자인 것 같다. 그러나 화담을 유혹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도리어 그의 인품에 반해 버린다. 화담과 황진이가 절제된 연인 관계였는지 아니면 학문적 사제 관계로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아마 그 둘이 복합된 관계라고 하는 게 맞을지 모른다.

 

전해져 오는 얘기가 맞다면 명기 황진이의 유혹을 물리친 화담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지행일치를 실천한 높은 인격의 군자일까, 아니면 명망의 굴레에 매인 소인일까, 그도 아니면 여자에 대한 결벽증이라도 있는 사람일까? 뒤에 황진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남긴 걸 보면 화담 또한 황진이에 대한 연정이 없었다 할 수 없다. 조선 시대에는 당연한 관습이었지만 화담은 본부인 외에 첩을 두고 두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화담이 평생을 가난하고 고고하게 살다간 선비였음은 분명한 것 같다. 화담이 18 세에 이르러 대학을 읽다가 '格物致知'라는 구절을 보고는 천지만물의 이름을 벽에다 써 붙이고 날마다 그 이치를 궁구했다고 한다. 사색이 너무 지나쳐 병이 생기기도 했으나 그렇게 6 년을 궁리한 후 만물의 이치를 홀로 터득했다. 스승 없이 사색만으로 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 뒤 화담은 입신양명보다는 자연과 제자와 더불어 학문과 예술을 논하며 깨끗하게 살았다. 죽기 전에 화담은 하인에게 목욕을 시키도록 하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죽고 사는 이치를 안 지 이미 오래다. 생각이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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