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이니스프리 호수섬 / 예이츠

샌. 2008. 11. 26. 11:20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이니스프리로 가리라

거기 진흙과 욋가지로 작은 오두막을 짓고

아홉 고랑 콩밭 일구며 꿀벌통 하나 두고

벌들 잉잉대는 숲에서 홀로 살리라

거기서 천천히 내려오는 평화를 누리리라

안개 아련히 피어나는 아침부터 귀뚜라미 우는 저녁까지

한밤엔 온통 반짝이는 별빛, 한낮엔 보랏빛 꽃들의 향연

저녁엔 홍방울새 날개 소리 가득한 그곳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밤이나 낮이나 항상

호숫가에 철썩이는 물결의 낮은 소리 들리나니

한길 위에 서 있을 때나 회색 포도 위에 서 있을 때면

내 가슴 깊숙이 그 물결 소리 들리네

 

- 이니스프리 호수섬 / 예이츠

 

I will arise now and go to Innisfree,

And a small cabin build there, of clay and wattles made;

Nine bean rows will I have there, a hive for the honey bee,

and live alone in the bee-loud glade.

And I shall have some peace there, for peace comes dropping slow,

Dropping from the veils of the morning to where the cricket sings;

There midnight's all a glimmer, and noon a purple glow,

And evening full of the linnet's wings.

I will arise and go now, for always night and day,

I hear lake water lapping with low sounds by the shore;

While I stand by the roadway, or on the pavements gray,

I hear it in the deep heart's core.

 

- The Lake Isle of Innisfree / W. B. Yeats

 

처음에는 내 블로그의 제목이 '마가리의 꿈'이었다. 백석의 시 중에서도'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좋아했는데,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라는 구절에서 따온 '마가리'는 내 마음 속 이상향이 되었다. 마가리는 북쪽 방언으로 오막살이 집을 뜻한다.

 

동서양이나 고금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그곳은 아마 인류의 무의식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그리움인지도 모른다. '마가리'라 부르든 '이니스프리'라 부르든 현실이 고달플수록 그곳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 간다. 그리고 그 동경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과 위로가 되는 게 사실이다. 낙원이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은 단순한 도피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동경은 영혼에 닿아있는 갈망이다.

 

오랜만에 만난 이 시가잠복해 있던 내 은둔 욕구를자극한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라!' 지금 당장이라도 일상의 굴레 훌훌 벗어 던지고 그곳으로 가고 싶다. 내 가슴 깊숙이 물결 소리 들리는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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