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혁명’(One-Man Revolution)은 미국의 평화운동가이며 기독교 아나키스트인 애먼 헤나시(1893-1970)가 제창한 개념이다. 사람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대로 오늘 당장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고, 세상이나 다른 사람 핑계를 댈 필요도 없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우선 자기 자신이 변하는 것이고, 그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이것이 ‘한 사람의 혁명’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내용이다.
애먼 헤나시는 한 마디로 용기의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그대로 실천했다. 불의에는 온몸으로 저항하며, 그의 아나키스트 철학을 실천하며 살다 죽었다. 젊었을 때 그는 징병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동참을 권유하다가 교도소에 구금되었다. 1년 가까이 되는 독방에서의 고립 생활에서 그에게 허용된 것은 성경 한 권밖에 없었는데 이때 읽은 성경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 복음서를 꼼꼼히 읽는 것과 함께 이루어진 이때의 정화의 경험은 그의 감각과 감수성을 순화시키고, 정신을 예리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그가 이해한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했고, 엘리트의 교체가 아닌 진정한 인간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 사람의 혁명’이라는 개념이다.
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기도와 단식과 같은 자기 변화의 행동이었다. 그로 인해 생길 현실적 효과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쾌락과 노예 상태로 만드는 체제로부터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끊임없는 저항과 자기 규율을 강조했다. 그가 다다르고 싶었던 곳은 사랑의 마음으로 그가 같이 있고자 한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의 중심이었다. 이런 성취를 방해하는데 한 가지 제약요인은 용기의 결여라고 말했다. 그는 저항과 용기를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보았다.
헤나시가 위대했던 점은 그가 복음서를 통해 깨달은 바를 삶으로 직접 실천했다는데 있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지 않고도, 힘든 노동의 삶을 살지 않고도, 평화주의자가 되지 않고도, 몸소 집 없는 사람들과 거리의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지 않고도, 이론가나 믿음의 사람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헤나시는 복음서의 가르침에 토대를 둔 이 네 가지 덕행을 직접 실천하면서 살았다. 자아와 사회에 대하여 성찰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의 문제에 직면한다. 역사의 이 순간 이 장소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헤나시에 의하면 삶이란 그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하나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국가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고, 갈수록 사람을 삶을 통제하는 복잡한 시스템에 대해 직접적으로 맞설 수 있다. 내가 이들 무수한 시스템을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런 시스템이 제공하는 외관상의 안락과 안전과 특권과 명예를 지금 당장 포기할 수는 있다. 헤나시가 삶으로 모범을 보인 것이 바로 인간다운 삶의 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저항이었다고 할 수 있다.
헤나시 같은 영웅의 삶을 흉내 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단편적이지만 헤나시의 삶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진정으로 고민해 보게 된다. 이렇게 풍요를 누리며 사는 삶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런 안락과 사이비 행복에 몸을 맡기며 문명의 달콤함에 취해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바보라고 불러도 좋을 헤나시 같은 사람들이 아직 우리들 사이에 존재하고, 그들 때문에 우리가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고마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바보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이 정도라도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헤나시의 일화 하나! 헤나시가 피켓 시위를 할 때면 그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럴 때마다 헤나시의 대답은 이랬다. “아뇨, 하지만 세상이 나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나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