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내 인생의 나이테

샌. 2008. 1. 27. 07:15

사람에게도 지나온 흔적이 눈으로 보이게 남는다면 나무와 같은 나이테가 있을 것 같다. 나무의 나이테는 기온에 따라 세포의 성장 속도가 다르므로 세포 크기에 차이가 생겨 생긴다는데, 사람에게도 분명 그런 변화가 있을 법하기 때문이다. 일생을 여일하게 평탄하게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짧은 한평생을 살면서 누구나 시련과 고통을 겪는다. 시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그런 인생의 매듭이 한 인간의 나이테로 나타날 것 같다.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은 굵고 두꺼운 검은 줄이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이테의 줄이 희미하게 나타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느끼는 인생 짐의 무게는 주관적인 것이어서 우리가 겉으로 보는 그 사람의 모습과 실제 나이테의 모양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다. 그런 사람의 나이테를 볼 수 있다면 무척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50여 년을 살아오면서 남겨진 나의 나이테는 어떤 모양일지 궁금해진다. 가만히 돌아보니 평범하고 순탄하게 인생을 살아왔던 나에게도 몇 번의 변화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미풍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래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변화였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그런 변화들은 대개 10년 주기로 찾아왔다. 그러고 보면 내 나이테는 다섯 개 정도의 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변화는 두렵고 고통스러운 측면이 있지만, 지나고 보니 변화야말로 인간적 성장에 대한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도리어 힘들고 어려웠을 때가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우리는 대개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를 꿈꾸는데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도 않지만 설사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별로 환영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은 끝없는 변화와 도전의 과정이고, 자신을 부정하는 고통을 통해서 성장해 나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첫 번째 나이테는 10대 중반에 만들어졌다. 그때에 시골의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도시 생활을 시작했다. 부모님의 품에서 독립하여 나만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홀로 떨어지기에는 어린 나이였고, 문화적 변화를 감당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모든 생활의 결정을 스스로 해야 했고, 그만큼 책임감도 무거웠다. 또한 그 시절은 공부에 대한 부담감, 무언가에 대한 동경, 그리고 콤플렉스가 뒤엉킨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그 뒤 대학 시절의 정신적 방황 또한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나를 만드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때는 정치적으로 민주화 요구가 거세었던 혼란기였으나 한편으로는 낭만의 시대였고, 그런 시대적 분위기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바깥 세계로 확장되지 못했고, 나는 고슴도치처럼 마냥 움츠러들었으며 내 젊음은 회색빛이었다. 아마 이때 만들어진 내 나이테를 본다면 진한 회색빛을 띠고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나이테는 20대 중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때는 군 생활을 하던 시기였는데 군인으로서의 3년간의 기간이 나를 많이 변화시켰다. 군대라는 전혀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 현실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영향은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겠지만 부정적인 부분도 많았다. 긍정적인 면은 나를 사람들 속으로, 세상으로 이끈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년기의 꿈과 이상은 자연스레 소멸되었고, 나는 세상이 요구하는 사회인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허물을 벗는 시기였으며, 변태(變態)의 때였다. 그것은 성장의 한 과정이었고, 인생의 한 매듭이었다. 그러나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 대신 먹고 살기 위한 하루하루의 소시민적 일상이 내 생활이 되었다. 그렇다고 사회에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주류에는 동참하지 못하면서 늘 나만의 길을 모색했다.

 

세 번째 나이테는 30대 중반에 생겼다. 디스크로 인한 고통과 수술이 내 생활을 변화시켰다. 무리하게 병을 키우다가 결국은 수술을 받았는데, 그 뒤로 무절제한 생활에 대한 반성과 전환이 일어났다. 술과 담배를 줄였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가정과 내 개인적 취미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건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부로 향하던 시선과 생활이 안으로 다시 회귀하기 시작했다. 동적인 생활에서 정적인 생활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해서 별로 의문을 품지 않았고, 가치관 역시 상식적인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성격상의 특이함만 빼고는 그래도 세상과 가장 잘 어울려 산 시기였다. 가정적으로도 가장 평온하고 안정적인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0대 중반이 되면서 네 번째 변화를 맞았다. 아마 이때가 내 인생에서 질적으로 가장 심각한 변화가 생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하느냐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어찌할 수 없는 내적 압력으로 가해져 왔기 때문이다. 내 삶의 문제가 직접적인 화두로 떠올랐다. 그렇게 된 데는 당시 근무하던 직장의 분위기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제 2의 사춘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끝 모를 정신적 방황에 시달렸다. 내 일생에서 가장 심각했던 모색과 번민의 시기였고, 그로 인해 가치관의 변화가 180도로 일어났다. 나는 이상주의자며 동시에 회의주의자가 되어 갔다. 기독교, 불교, 그리고 장자, 노자, 소로우, 간디 등에 몰입했고, 종교적으로는 가톨릭을 받아들였다. 무엇인가를 만나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때였다. 그때에 나는 자연히 내 개인적인 구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생명, 평화, 생태적인 데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별 관심이 없었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분야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며 어떻게 내가 일조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믿는 이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의 큰 결단을 내렸다. 세상의 변화는 나의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것은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도전이었고 동시에 나의 한계를 깨닫는 계기도 되었다. 내 길을 고집하면 할수록 세상과의 마찰도 커져 갔다. 겉으로는 실패하고 넘어졌지만, 그러나 가장 많은 인생 공부를 한 시기였다.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나는 분명 한 단계 성장했다고 믿는다. 인성적으로도 원만하고 너그러워졌으며 세상과도 화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특히 나 자신에 대해 약간은 초탈한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스스로 느끼는 바대로 50부터 내 인생은 새롭게 시작되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제 다시 다섯 번째 나이테가 만들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어떤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가오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지금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앞으로 좀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에게 찾아오고 있는 손님의 정체를, 그리고 나에게 갖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를 찾아오는 손님을 거절하지 않겠다는 것뿐이다. 나는 이것을 나의 성장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기회로 받아들인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어떤 변화라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맞이하겠다는 것이 지금의 내 솔직한 마음이다. 나는 변화와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알몸으로 사막에라도 나갈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길과는 다른 길을 나는 앞으로도 선택하고 지켜나갈 것이다.

 

내 인생은 다른 사람에 비하여 굴곡이 심하지 않았고 도리어 평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랑이 될 수는 없다. 내 작고 보드라운 손이 내가 살아온 인생길이 어떠했는지를 대변해주고 있다. 허약한 백면서생의 손 그대로이다. 그래서 앞으로 만들어질 내 인생의 나이테는 차라리 굵고 진하게 되길 바란다. 그래서 더욱 인간 성숙의 길로 나아가는 도전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맞이하려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나의 결정이 항상 가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살고 싶은 방향과 가족의 생각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었다. 내가 지향하는 가치 때문에 내 중심으로 살아가면 가족이 어쩔 수 없이 피해를 받는다. 그렇다고 가족 중심으로 판단하면 내가 설 자리는 없어진다. 그런 갈등은 앞으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가족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생각처럼 만만하지 않다. 둘 사이의 중용과 조화를 찾는 묘책이 아직은 안개 속에 가려 있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더 많은 번민과 회의 속에서 내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가 소명으로 생각하는 길을 회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희미하고 불분명한 불빛이지만 나는 그것을 따라 나아가고 싶다. 어디에 도착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나아갔다는 것에 나는 내 인생의 의미를 둔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경  (0) 2008.03.03
한 사람의 혁명  (0) 2008.02.12
조롱 속의 행복  (2) 2008.01.22
누가 밀었어  (0) 2008.01.02
觀海難水  (0) 2007.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