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의향기

아까시꽃

샌. 2007. 5. 29. 09:58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보며 쌩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 길'

 

이 노래에나오는 아카시아는 아까시가 바른 이름이다. 아카시아는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온실이 아니면 보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카시아라는 말이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사용해 온 언어가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 효과라 할 수 있다.

 

아까시꽃은 어린 시절의 향수에 젖게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고향 마을 뒤 산자락에는 아까시나무가 죽 둘러서 자라고 있었다. 그곳이 우리들의 놀이터 중의 하나였는데 봄이 되면 하얀 아까시꽃이 피어나고 그 향기에 취한 듯 우리들은 꽃을 따먹으며 놀았다. 아까시 잎 또한 어린 시절의 놀이감이었다. 가위바위보 하면서 잎을 하나씩 따내는 놀이도 자주 했고, 문장을 잎에 대입해서 잎수와 맞추는 놀이도 했다.

 

아까시 잎은 토끼가 제일 좋아한다. 어릴 때 집에서 토끼를 키웠는데 아까시 잎을 따다가 철망으로 들이밀면 오물오물받아먹는 모습이귀여워 토끼장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까시 잎에 대해서는 즐겁지 않은 기억도 있다. 군대 훈련병 시절에 더블백을 메고 아까시 잎을 따는 작업을 산으로 자주 나갔다. 정해진 시간 안에 목표량을 못 채우면 호된 기합이 기다리고 있어 한 눈 팔 새도 없이 아까시나무에 매달렸다. 그러나 동작이 굼뜬 나는 늘 저울 눈금이 모자랐고 작업 후에 쉬지도 못하고 기합을 받았다. 그때는 아까시나무는 다시 쳐다보기도 싫었다.

 

뭐니뭐니해도 아까시꽃은 그 향기로 잊혀지지 않는다. 향기로만 치면 아까시꽃을 당할 것이 없다. 인간에게 있어 어린 시절의 후각은 강렬하게 뇌에 각인된다고 한다. 그래선지 아까시꽃 향기를 맡으면 왠지 아득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에 젖게 된다.

 

아까시나무는 일제 시대에 심기 시작해 벌거숭이 민둥산을 녹화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생장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쓸모없는 나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모두 베어지는 수난을 당했다. 지금은 아까시나무 보기가 예전 같지 않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받아들였다 내치는 과정에서 아까시나무도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같은 나무지만 다른 것들에 비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아까시나무가 안스럽게 느껴진다.

 

지금 살고 있는 집 뒷산에는 큰 아까시나무들이 많이 있다. 꽃이 한창일 때는 마치 눈이 내린 듯 나무가 하얀색으로 변했다.그리고 아까시꽃 향기가 희미하게나마 열린 창으로 스며들어왔다. 저 나무 아래로 가서 아까시꽃 향기에 취해보리라 마음만 먹다가 벌써 꽃이 다 져 버렸다.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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