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하며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죽음으로 그들을 위협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살맛나는 세상이야' 하며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면
사형 선고를 받아 마땅한 패륜아, 몇 명이나 나오겠습니까?
그리고
누가 감히 그들을 죽일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하늘을 대신해
누군가를 죽이는 일은
장인을 대신해
나무를 깎는 일과 같습니다.
장인을 대신해
나무를 깎는 사람 치고
손 상한 사람,
누가 있겠습니까?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若使民常畏死而爲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常有司殺者殺, 夫代司殺者殺, 是謂代大匠착, 夫代大匠착者, 希有不傷其手矣.
지금까지도 사형제도 폐지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지만, 노자는 2천여 년 전에 이미 사형제의 폐지를 주장했다. 그것은 노자가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무위(無爲)의 원리'의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노자 사상의 놀라운 점은 현대에 들어와서야 주목 받기 시작한 개념들의 싹을 도덕경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에서 보이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의 생명 존중 사상도 그 중의 하나다.
일부 사람들은 노자의 도덕경을 제왕학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그런 관점이라면 이 장의 얘기도 통치술의 하나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덕경을 임금을 위한 수신서나 국가 경영의 지침서로 한정시킬 수는 없다. 도덕경을 여러 번 읽어보면 볼 수록 그런 견해가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도덕경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깨달음과 각성의 책이다. 도덕경 속에는자연의 원리가 들어있고,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보석 같은 가르침이 들어있다. 그 가르침은 현대인들에게 더욱 유효하다. 우리가 물질과 기계에 빼앗긴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을 도덕경의 지혜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