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우정의 편지(2)

샌. 2007. 2. 13. 14:24

2001년이네.

우리 적지 않은 나이지만,

금년부터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노력하면서 살아보세.

가정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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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신정을 전주서 보내고 올라왔네. 연하 카드는 잘 받았네. 작년의 호들갑스러움과는 달리 세기가 변하는 이번 연말은 의외로 조용히 지나간 것 같네. 지금 사회 분위기가 그만큼 가라앉아 있다는 얘기도 될 걸세.

자네가 서울에 온다니 무척 반갑네. 나는 내일 다시 고향에 내려가 한 열흘쯤 쉬다가 15일경 올라올 예정이네. 꼭 만나보도록 하세. 마침 독일팀 모임을 이달 중순경으로 예정해두고 있었네. 자네가 오면 같이 모임을 가지도록 하겠네. 서울에 와서 우리 집으로 연락하면 시골 전화번호를 알으켜 줄 걸세. 전화를 주면 자네 일정에 맞추어 올라오도록 하겠네.


교사들 신청은 많이 들어왔는가? 광고를 보고 연결이 제대로 못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걱정이었네. 그리고 어느 집단에나 꼭 말썽을 부리는 사람은 있지 않는가? 만약 한국에서 근무한다면 그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과 직면하는 경우도 많으리라 생각하고 위안을 삼게나. 옳다고 생각하는 소신만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에 힘들 것 같네. 더 옳은 소신에 더 똑똑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지 않은가?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이네.


<세상에 많은 도둑이 있지만 그중 제일 고약한 도둑이 있으니 바로 자기 몸 안에 있는 여섯 가지 도둑일세.

첫째는 눈 도둑. 집이나 재물, 보이는 족족 뭐든지 가지려 성화를 하지.

둘째는 귀 도둑.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한다네.

셋째는 콧구멍 도둑. 좋은 냄새는 자기가 맡고 나쁜 냄새는 남에게 맡게 한다네.

넷째는 혓바닥 도둑. 온갖 거짓말에다 맛난 것만 먹으려 한다네.

다섯째는 요놈의 몸뚱이 도둑. 훔치고 죽이고 응큼한 짓만 골라 하니 도둑 중에 제일 큰 도둑이구나.

마지막 도둑은 바로 생각 도둑. 제 마음대로 이 놈은 싫다, 저 놈은 없애야 한다, 저 혼자 화를 내고 이를 갈며 야단을 치지.

그대들 가운데 이 여섯 가지 도둑이 없는 사람이 있거든 어디 한번 나서 보시게. 복 받기 바라거든 우선 제 몸에 있는 여섯 도둑부터 잡으시게. >


내 속에 들어있는 여섯 도둑, 그 중에서도 생각도둑놈과 싸움하느라 허덕일 때가 부지기수네. 붙들고 씨름한다고 물러갈 놈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서울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네. 귀국하는 대로 연락 주게나.


2001. 1. 4. 09: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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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눈 소식이 반갑네. 폭설 때문에 고생하고 피해 입은 많은 분들이 있었겠지만...


교사초빙문제는 정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또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기도 하네. 방학 없이 계속 매달리고 있네. 국어과를 제외하고는 거의 마감이 되었고, 이달 18일 아침 김포에 도착할 것 같네. 면접은 20일 서울 과학고에서 예정하고 있네. 아마 하루 꼬박 걸릴 것 같네.구정 날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도록 예약했네. 비행기표 사정일세.


포근하고 풍성한 겨울이 되기를 기원하며...


2001.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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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짧은 기간의 고국출장 때 고마웠네. 지나놓고 보면 항상 나의 우정이 자네의 마음씀에 많이 모자라고 있음을 느끼게 되네. 교사초빙문제는 나와 우리 학교입장에서 매우 중요하고 큰 문제였네. 자네의 도움으로 좋은 분들을 초빙하게 되어 만족하네. 탈락되신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일세.


1년만에 보는 한국이 전과 달라지지야 않았겠지만, 나에게 보이는 느낌은 전과 많이 달랐었네. 이곳이 낙후되어서 그런지, 우리 한국이 굉장한 선진국이고, 넓고 큰 도로, 고층 빌딩들,

깨끗한 거리, 겨울이 되어 나뭇잎을 모두 떨군 나목들, 눈 쌓인 산야, 모두가 이제 생각하니 아름다운 풍경이었네. 그 당시는 일 때문에 신경쓰느라 깊이 느낄 겨를이 없었지만...


우리나라가 아름다운 나라이고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도 나의 베트남 생활에서 얻은 소득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싶네. 자네의 1년 교환교사 생활도 생활변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겠지만(상당히 크겠지만), 자네의 인생에 크고 중요하고 유익한 많은 경험을 제공해 주리라 확신하네. 어떻게 전개될지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계실 것이며, 잘 전개되기를 기도하겠네.


학교내의 교사 재임용문제에서 혼란이 예상이상으로 확대되었네. 신경 쓰느라 자네의 소식이 상당기간 끊어진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네. 지난번 부탁했던 국어교사 초빙문제도 자네에게 부탁만 해놓고 상황이 복잡해져서 계속 연결하지 못했네. 교내 문제로 신경쓰다보니 시기적으로 초빙할 타이밍을 놓친 것 같네.


자네의 근황은 어떤가. 교환교사의 결과는 확정되었는가. 모든것이 궁금하네.


2001.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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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교사 재임용 과정에서 생긴 문제는 잘 해결이 되었는가? 한겨레신문에 보도가 났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들으면서 많이 걱정을 했네. 그래서 일부러 메일도 보내지 않았고.... 순리대로 잘 풀려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네.

여기는 개학이 되어서 많이 바쁘네. 시간적으로 바쁘기보다 정신적인 쫓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네. 한 해 농사의 결실에 뿌듯하기보다는 왠지 허전한 감을 더 자주 느끼게 되는 때이기도 하다네.

전출 여부는 아직 연락을 받지 못했네.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짓거리 같아 그냥 기다리고 있는 중이네. 며칠 뒤인 17일경쯤 발표가 난다고 하는군. 莊子 어디에선가 본 ‘窮亦樂 通亦樂’을 생각하면서 애써 느긋해 보려 하네. 사실 세상사에 窮과 通의 구별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마음이 그렇게 분별해서 살필 따름인 것을.

걱정해 주고 격려해 주어서 참말로 고맙네. 새 학년도 계획을 잘 세우고 보람 있는 생활이 되길 비네.

지난번 서울에서 1년만의 만남이 너무 엉성했지만 그래도 우리 사이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 있었네.

건강하게나.


2001. 2. 13. 20:3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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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歸本 - 6개월 뒤로 연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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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뒤로 연기되었는가? 이 세상 모든 일에는 모두 합당한 이유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누군가 한 이야기가 생각나네. 6개월의 연기와 1년간의 교환근무가 모두 이유와 가치가 있을 것으로 믿네.


어제 우리학교의 졸업식, 종업식, 일부 교사의 이임식 등이 있었네. 학사보고와 상장수여와 회고사와 축사와 졸업가 등... 다행히 모든 절차가 처음인데도 불구하고 잘 마무리 되었네. 오늘부터 새학기까지 봄방학이지만 내년 학교운영을 위한 교육과정, 조직, 신임교사 부임 준비 등으로 원하는 여행의 틈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생각해보니 베트남에 온지 꼭 1년이 되었네. 내가 2월 17일, 가족이 2월 25일, 이곳 베트남 생활이 지금 당장 보다는 나중에 한국에 돌아갔을 때 좀더 풍성한 시간들이 되도록 해주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본다네.

한국의 기습 폭설 뉴스를 어제 타이틀만 보았네. 폭설이 그립네. 내가 서울에 있다면 아마 폭설을 찾아서 스키장이나 시골에 갔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생각 뿐일지도...


대학 신입생으로 마음이 하늘같을 수진이에게도 축하를 보내며..


200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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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봄방학이지만 새 학기 준비로 바쁘겠지?

이곳은 지난주에 30여년 만이라는 기록적인 눈이 내린 후 이번 주는 날씨도 따스하고 어느덧 봄기운이 가까이 와 있음을 느끼게 되네. 그저께는 바람도 쐴 겸 안면도에 내려가서 석양을 보았네. 그리고 꽃지 해수욕장의 넓은 백사장에 긴 발자국을 남기고 왔네. 몇 시간 뒤의 밀물에 곧 사라져 버렸겠지만....

27일에 업무 배정 회의를 하고나면 또 다시 한 해가 시작되겠지. 경기도 내신 좌절 후 상심되었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있네. 이해되기 힘든 건 전국에서 교환교사 발령은 한 사람밖에 나지 않았다는 것이네. 그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만들어진 좋은 제도가 담당하는 실무선에서는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네. 앞으로도 이렇다면 경기도행은 정식 전출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을 것 같네. 요 며칠 사이에 여러 가지 대안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네. 이젠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잡고 본래의 생활로 돌아와야겠지.

좋은 생활이 되길 빌면서.....


2001. 2. 22. 17: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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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종업식 후에도 매일 출근하고 있네. 새 학년도 교육과정 편성 및 새 학년도 준비로 어느 때보다 더 피로를 느끼고 있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주시고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보람도 약간은 느끼고 있지만 교만한 마음일지...


우리 학교에도 조선일보가 약 2일씩 늦게 들어오는데 타이틀만 건성으로 보고 있네. 늦은 폭설 기사도 보았네.

자네의 귀본이 늦어지게 되어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을 줄 아네. 전국에서 한명만 이루어졌다면 그 제도가 유명무실해진게 아닌가 추측도 되고, 앞으로도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 아마 각 시도마다의 근무 조건이 너무 차이가 나고, 그 차이가 알려지면서 문제점들이 생겨나기 때문이 아닌가 짐작하지만...

새 학기 전의 잠깐의 휴가지만 유익하게 보내도록 하게


2001.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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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소주를 몇 잔 마시고 좀 얼근한 가운데 메일을 보내네. 봄방학은 잘 보냈는가? 학교 일에서 떠나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왔는지?

이제 내일부터는 새 학년이 시작되네. 새 아이들, 새로운 업무와 만나건만 이상하게도 설레임이나 기대감 같은 게 전혀 없네. 타성에 젖어 그저 관성에 의해 굴러가는 수레바퀴처럼. 의미로서의 일에서 생업으로서의 일로 점점 변해가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실감하게 되네. 특히 이번 전출 과정을 통해서 마음은 교직에서 멀리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네. 금년에는 담임을 면하게 되었네. 좀더 여유를 가지고 싶고, 그리고 수업에도 충실하자고 다짐을 해보네.

어제는 여주에 다녀왔네. 거기가 궁벽한 곳이라고 얘기한 것 같은데 그래선지 여러 혐오시설들이 들어오려고 한다네. 몇 년 전에는 스키장이 들어올려고 하다가 주민 반대로 제지되었고 다음에는 쓰레기장이 이번에는 화장장이 들어설려고 계획 중인 모양이네. 그 반대 운동으로 주변이 어수선하더군. 나로서는 성사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네. 생각대로라면 봄쯤에 작은 집을 지을려고 하네. 방 한 칸짜리 정도의 주로 주말에 이용할 수 있는.... 그래서 시골살이 연습도 하면서 채소나 화초를 기를 수 있으면 하네. 요사이는 그런 생각과 계획들로 머리가 꽉 차 있다네. 또 그런 상상을 하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에게 항상 좋은 교장선생님이 되길 빌겠네. 그러나 참 어려운 일이지. 좋은 아빠, 좋은 남편 되는 것이 힘들 듯이 말일세.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성실히 걸어가도록 하세.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2001. 3. 1. 22:3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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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 반가웠네.

여주를 오가면서 자네가 언젠가 얘기한 고상한 자작나무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네의 모습을 그리네. 우리도 내일 개학일세. 새로운 학기에 대한 기대가 크다네. 한국학교가 그간의 어려움을 딛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네.

모처럼 담임을 면했다니, 자네가 추진하려는 일들에 좀더 시간과 정열을 할애할 수 있겠군.

다음에 서울에 가게 되면 자네 터에 꼭 들러보겠네. 그건 그렇고 자네의 새 이메일 주소가 재미있네. 어째 빈 깡통인가. 그 안에 무얼 담고 싶은가. 그것이 궁금하네.

건강하게.

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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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학교에 출근하여 아침 한가한 시간에 이 메일을 보내네. 동료들은 1교시 수업에 들어가고 혼자 사무실에 남아있는 조용하고 행복한 시간이네. 커피포트에서는 따뜻한 물이 끓고 있고, 차 한 잔의 향기가 감미롭네. 특히 금년에는 담임까지 맡지 않아 생활의 여유를 한껏 만끽하고 있네.

출근하다가 보니 아파트의 산수유나무에 노란 꽃망울이 맺혀 있더군. 지난 겨울의 대설의 잔해가 아직도 응달에는 남아 있는데 소리 없이 찾아온 봄의 색깔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네. 이제 조금 후면 온 산하가 연초록 물결로 덮이겠지.

학기 초라 무척 바쁘겠지? 아무래도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많으리라 생각되네. 우리 학교도 교장선생님이 정년퇴임하시고 교육부에서 새 교장님이 오셨네. 분주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피는 모습에서 자네를 연상했네.

이제 곧 수업 끝 종이 울릴 것 같네.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이 되길 빌겠네.


2001. 3. 15. 09:3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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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따뜻한 봄볕에 끌려 오전 비는 시간에 밖에 나갔네. 학교 바로 뒤쪽에 좋은 둑방길이 있네. 조깅을 하거나 사이클을 즐기는 사람들이 가끔씩 지나가는 아주 한적한 길이네. 하늘은 맑고 햇볕은 따사했네. 참새들도 신이 나는지 마른 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며 신나게 노래를 하고 있네. 남쪽 양지바른 경사면에는 벌써 여린 잿빛의 쑥이 돋아나 있었네. 마음 급한 아낙네의 쑥을 캐는 손길이 곱게 느껴졌네. 그리고 냉이 종류로 생각되는 녹색의 잎들도 돋아나기 시작했네. 마치 땅 속에는 거대한 녹색의 바다가 있기나 한 듯이, 틈을 뚫고 나온 생명의 분출이었네.

둑방길 끝 쪽에 배수장이 있는데 그 부근에서 올해의 첫 꽃을 만났네. 별꽃들이었네. 흰 색의 작은 꽃, 꽃 무리를 멀리서 보면 마치 밤하늘의 별들을 보는 것 같아서 그렇게 이름붙인 것이리라 상상이 되는 그런 꽃이네. 작은 꽃잎을 완전히 열지도 못하고 여리게 피어난 모습이 가련하고도 아름다왔네.

중앙병원 옆을 지나는 맞은 편 둑방길로 해서 한강에 나갔네. 거기에도 역시 봄기운은 가득했고 아직 우리나라를 떠나지 않은 쇠오리 한 가족이 유영을 즐기고 있었네. 기러기 몇 마리와 개똥쥐빠귀도 보였는데 모두들 겨울 철새들인데도 무슨 일로 늦었는지, 그래도 며칠 후면 자기들 고향으로 돌아가겠지.

한강가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네. 잠실 철교와 올림픽 대교 사이, 비록 물은 탁하고 자동차의 소음으로 가득하지만 오늘은 모든 걸 넉넉히 받아들일 것 같네. 어깨로 내리쬐는 햇살이 따스하네. 마치 겨울날 난로가에 앉아 있는 것처럼.

자네에게 한국의 봄을 전해주고 싶네. 어느 수필가가 그랬지. 이 세상에 나와서 쉰 번째나 봄을 맞을 기회가 주어졌으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가슴 설레며 이 봄을 맞고 있네.


이 메일도 오후 빈 시간을 이용해 보내네. 봄의 생기와 향기를 함께 실어 보내며....


2001. 3. 16. 14: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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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


연속 사흘째의 메일이네.

부담감을 느끼지는 말게. 자네의 답신을 재촉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무엇인가를 쓰고 싶기 때문이네.

오늘은 흐린 날씨, 남부 지방으로는 봄비가 내린다고 하네. 지금은 토요일 오후, 방금 테니스를 하고 돌아와 빈 사무실에 홀로 있네. 북적대던 낮의 소란스러움에서 고요함으로 변한 이 분위기가 좋네.


'The Tao of Learning'(배움의 道)라는 책이 있네. 도덕경을 교육적 관점으로 풀이한 책인데 이현주 목사님이 번역한 소책자가 손에 들어왔네. 자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네. 앞으로 틈틈이 적어보도록 하겠네.


1. 道의 뜻

사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것이 곧 道다. 배우는 과정에서 사물이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것이 배움의 道다. 사람 말로 표현되는 '가르침의 길'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그런 길이 아니다.

무슨 일이 배움의 장에서 일어나는지 그것은 설명될 수 없다. 설명될 수 있는 것은 배움의 장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의 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따로 알고자 하는 일없이, 그것을 알고 있어라.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판단하지 말고, 그것에 자신을 열어 놓아라.

사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것이 道다.


2. 말없이 가르침

세상에 있는 것들은 모두 반대편 짝이 있다. 그것들은 저마다 세상에 있기 위해서 짝이 있어야 한다. 善과 惡, 가득 참과 텅 빔, 富와 가난,黑과 白.

그러기에 슬기로운 교사는 말없이 가르치고, 하는 일 없이 한다.

모두 그가 이룬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기 것으로 삼지 않는다. 일이 다 끝나면 그는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3. 일삼아 하지 않음

슬기로운 교사는 누구를 내세우거나, 내세우려고 높은 점수를 주거나 그러지 않는다. 그러면 다툼과 시새움만 자란다.

슬기로운 교사는 일삼아 하지 않음으로, 잘못 배운 것을 치워버림으로 가르친다.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네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버리게끔 도와주고,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는 일삼아 하지 않음을 연습, 실천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기가 받은 선물을 발견하게 된다.


4. 바탕

道는 그대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道는 토대(foundation)와 같다.

토대는 건물이 서 있도록 받쳐주고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 道는 배움을 받쳐주는 토대들의 바탕이다. 道는 바탕을 받치는 바탕이다. 道는 끝없이 넓고 끝없이 깊어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끝없이 할 수 있게 하며, 결코 닳아 없어지지 않는다.


5. 中道

道는 치우치지 않는다. 道는 선과 악을 함께 한다. 슬기로운 교사는 치우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을, 선하면 선한대로 악하면 악한대로 품어 안는다.

道는 바탕과 같다. 그것은 텅 비어 있다. 그러면서 큰 힘을 부린다. 그대가 그것을 잡으려고 애를 쓰면 쓰는 그만큼 그대는 그것을 못 잡는다.

배울 때에는 그대 중심 가까이에 머물러 있어라.


2001. 3. 17. 15: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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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메일을 순서대로 한꺼번에 열었네. 한국의 봄 내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네. 바쁘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저녁에는 메일이 잘 되지 않아서(먹통?) 새벽에 잠이 깨면 며칠 만에 한꺼번에 보게 된다네.

벌써 새싹들이 돋고 꽃이 피기 시작한다니.. 여기서 생각하니 새삼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알게 되네. 겨울의 추위와 은둔, 봄의 생명, 여름의 정렬, 가을의 침잠등 얼마나 다양하고 다채로운가.

도덕경 강의는 프린트하여 옆에 두고 읽고 있네. 여주행의 상심을 덮고 한국의 봄을 잘 느끼고 벗하게나. 봄은 어디에서나 같을 테니까.

오늘은 이만 줄이네. 건강하게 보내게.


2001.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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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


요사이는 황사 때문에 하늘이 뿌옇게 되는 날이 잦네. 오늘도 그런 날이네. 낮이지만 가까운 교통회관 건물이 희부옇게 겨우 보이네. 눈, 코, 목이 뭔가 이상하다고 신호를 보내네. 봄의 불청객이지만 매년 찾아오는 손님이라선지 싫지만은 않네. 잊지 않고 찾아주니 기특하다고 할까.

'배움의 道'을 프린트해서 보아준다니 고맙네. 도덕경대로 81장까지 있으니 앞으로 느긋하게 보아 주게나. 교육의 본질적 측면에 대해서 생각게 하는 내용으로, 지금 교육현장에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그 기본 뜻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네.

두 해째의 베트남 생활이니 이젠 훨씬 수월한가? 그쪽 사회는 그래도 고전적인 분위기가 있을 것 같은데, 잘 산다는 이곳 한국은 매우 어수선하네. 경제적, 도덕적으로 중병에 걸린 상태라고나 할까? 세상은 자꾸 힘들어져 가는 듯 하네.

잘 지내도록 하세.


2001. 3. 22. 15:30 서울에서


6. 열려 있음.....

7. 놓아버림 / 여기 있음 .....

8. 물처럼 흐르기.....

9. 멈출 때......

10.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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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


오늘도 시간 여유가 있어 또 메일을 보내네. 금요일은 수업이 두 시간이거든. 황사도 가시고 바람도 잠자고 따스한 봄날이네. 화단가의 회양목 가지에도 녹색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했네.

학교 식당 테이블에도 한 아름다운 아줌마 덕분에 노란 후리지아가 환했네. 이 분은 시골 중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셨다는데 무슨 사연인지 지금은 우리 학교 교직원 식당에서 일하고 계시네. 그런데도 항상 밝고 친절하신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이네. 어떤 때는 스스로 지은 시를 프린트해서 걸어 놓으시기도 하고, 교회에 장식하다가 남는 꽃으로 한다지만 이렇게 학교 식당을 아름답게 꾸며 주시기도 하네. 그렇다고 요란하지 않고 말없고 얌전하시지. 대부분 사람들은 누가 그렇게 꽃을 준비하는지 모르고 있으니까.

그리고 또 한 분 배우는 분이 있네. 구내 이발사 아저씨인데 이발할 때만 잠시 대화를 나누지만 어려운 환경가운데도 느긋하고 여유 있는 마음씨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고 갸웃거리게 되네. 그 분에 비추면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또 다른 욕심을 부리는 것 같네. 마음의 행복을 가지신 분이네. 부자나 권력자가 가지지 못한 것을 이 분은 갖고 계신 것 같네. 노자 말씀대로 '知足者富'가 아니겠는가? 운동장에 휴지를 버리는 학생을 깨우쳐준 얘기를 오늘도 이발하면서 들었네. 참으로 배울게 많았네.

주변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네. 이런 분들을 통해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

잘 지내게.


2001. 3. 23. 13:00 서울에서


11. 비어 있음.....

12. 안에서 보기와 밖에서 보기.....

13.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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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春來不似春.

기온이 0도 가까이로 떨어지더니 어제는 하루 종일 눈이 오락가락했네. 한 때는 한겨울처럼 함박눈이 쏟아지기도 했네.3월의 끝에 만나는 겨울 풍경이 색다른 맛을 주었네. 그러나 오늘은 다시 봄날을 회복했네. '希言自然 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자연은 말을 드물게 한다. 회오리바람은 한나절 불지 않고, 소낙비는 온종일 내리지 않는다.)라는 노자의 말씀도 연상되었네.

白石의 시 한 편을 보내네.


2001. 3. 30. 12:00 서울에서


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木手네 집 헛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달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도 않구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매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가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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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어제는 하루 종일 봄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다시 화창한 봄 날씨를 회복했네. 비록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지금 이곳은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하고 있네. 마치 봄 폭탄이 폭발한 듯 온 천지가 봄의 화약 냄새로 가득하다네.

자네로부터 근간 소식을 접하지 못했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지금은 학교에 출근하여 막 1교시가 시작된 이른 시간이네. 수업 시작 종소리와 함께 복도의 소음도 사라지고 고요한 정적이 찾아왔네. 요사이는 白石의 詩에 흠뻑 빠져있네. 나이가 들어서인지 그런 조선의 향토적 정서에 감동하게 되네. 지금 방금 읽은 시 한 수를 같이 나누고 싶네.


球場路


三里 밖 江쟁변엔 자개들에서

비멀이한 옷을 부승부승 말려 입고 오는 길인데

山모퉁고지 하나 도는 동안에 옷은 또 함북 젖었다


한 二十里 가면 거리라던데

한겻 남아 걸어도 거리는 뵈이지 않는다

나는 어느 외진 山길에서 만난 새악시가 곱기도 하던 것과

어느메 江물 속에 들여다뵈이던 쏘가리가 한 자나 되게 크던 것을 생각하며

山비에 젖었다는 말렸다 하며 오는 길이다


이젠 배도 출출히 고팠는데

어서 그 옹기장사가 온다는 거리로 들어가면

무엇보다도 먼저 '酒類販賣業'이라고 써붙인 집으로 들어가자


그 뜨수한 구들에서

따끈한 이십오 도 소주나 한잔 마시고

그리고, 그 시래기국에 소피를 넣고 두부를 두고 끓인 구수한 술국을 뜨끈히

몇 사발이고 왕사발로 몇 사발이고 먹자


2001. 4. 12. 09: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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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늦었네.

이곳은 지금이 년 중 가장 무더운 때라는데..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네.

얼마 전 신문에서 윤중로의 벚꽃 사진을 보았네. 자네의 표현대로 봄 폭탄이 폭발하여 온 천지가 봄꽃으로 가득 차고 봄내음새로 넘치는 계절인 듯 싶네. 내가 귀국한 후에는 아마도 우리나라의 계절을 과거보다 훨씬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네.

오늘은 부활절이라서 특별행사로 저녁에 베트남교회에 가서 찬양을 하고 왔네(여기 사이공 한인교회에서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많은 은혜를 받고 있네). 베트남사람들과 함께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 무척 신기하네만 실내가 더워서 땀을 많이 흘렸네.

자네의 백석의 시를 보면서 또 느끼는 건데.. 옛날 사람들은 술을 참 많이 즐겼다는 생각이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낭만의 비용으로 건강을 지불하지는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일세.

만산의 봄, 그 봄을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나이가 어느덧 되었네


2001.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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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잘 지내고 있는가?

년 중 가장 더운 때라면서 지내기에는 어떤가?

얼마 전에 부활절이 지나갔지. 자네가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했듯이 나는 여주에 내려가서 수녀원에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부활을 축하했네. 神의 강생, 죽음, 부활이란 인지로는 이해하지 못할 신비인 것 같네.

작은 컨테이너 하우스를 주문했네. 5평가량 되는 원룸형태라네. 5월 초쯤 들여놓을 예정인데 부실하지만 임시 거처로 사용할 생각이네. 그 작은 일 하나에도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네.

아쉬운 건 조용한 곳을 찾아간 것이 거기도 개발 바람이 거세다는 것이네. 지난번에 얘기한 종합 장묘단지 문제로 아직 티격태격하고 있고, 또 양평 쪽으로 직통 도로를 건설한다고 하는군. 그러면 조용하던 마을 앞 도로가 차로 넘쳐나겠지. 다시 다른 곳으로 피난가야 될지도 모를 일이네.

지금은 황금의 일주일을 보내고 있네. 1학년들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거든.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는 산으로 쏘다니는 시간이 많네. 그저께는 축령산 꽃의 계곡에서 환상적인 얼레지의 대군락과 만났네. 행복한 시간이었네.

오늘도 수업은 없지만 학교에는 나와 있네. 조금 뒤에 한강변에나 나가볼까 하네. 지구라는 별에 소풍 나온 기분으로 그렇게 인생을 살 수 있다면....


2001. 4. 19. 09:30

서울에서


14. 몸 풀기.....

15. 교사의 교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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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절, 한국의 봄이라고 생각이 되네.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처럼 사철 무더운 나라에서 고향의 여러 꽃들이 눈앞에 삼삼하게 어른거리네. 노란 개나리도, 붉은 진달래 철쭉도, 산수유도, 목련도, 이름모를 온갖 봄꽃들이 만발해 있겠지. 어느새 초록 새싹들이 힘차게 새 생명을 터트리고 있겠지

이곳은 하늘의 구름이 참 아름다운 나라라는 생각이 드네. 사이공지역은 델타지역이라서 몇 시간을 가도 끝없는 평야라네. 밝은 태양빛에 증발된 수증기가 하얀 구름이 되어 뭉게구름이 되어 피어오르고, 눈부신 햇살을 밭아 먼 하늘가에서 하얗게 빛나는 풍경은 참 아름답다네. 우리나라의 봄꽃처럼 힘차고 싱싱하지는 않지만 이곳에는 사철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지고 피고 지고 한다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매일 스콜이 더위를 씻어주는 우기가 돌아오겠지.

요즈음 새 학교 건물 공사가 시작되었네. 가끔 시간 날 때마다 가보면 뭔가 보람과 뿌듯함 같은 마음이 든다네.

또 소식 전하세. 제수씨와 귀여운 수진 수연 두 따님의 건강과 행복을 그리고 자네의 건승을 위하여 기도하겠네.


200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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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베트남의 하늘을 상상해 보네. 드넓은 지평선 위로 펼쳐진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너무나 시원(?)하네. 우리나라의 여름 풍경을 확대한 것으로밖에 연상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거기는 야생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아 가 보고 싶어지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이야말로 나에게는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되네. 내 고향만 해도 마을 앞으로 새로운 국도가 생기고 고속도로가 공사중이고해서 수많은 산허리가 잘려 나가고 논밭은 아스팔트로 덮이고 소백산에는 터널이 뚫려 산 정상으로는 환기구 굴뚝이 세워지고.... 개발과 편리성이라는 명분아래 행해지는 자연에 대한 폭력이 안타깝네.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이 지경이라는 것이 문제일세.

'베트콩'이 뭔지 아는가? 며칠 전에 슈퍼에 갔더니 그런 상표의 과자가 있더군. 베트남 땅콩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서 사 가지고 와서 맛을 보았네. 속에 든 베트콩이 작으면서 고소하더군. 저렴한 가격 때문이겠지만 상점들에 베트남 상품들이 점점 눈에 자주 띄게 되네.

학교 건축 관계로 신경 쓸 일이 많겠군. 공사는 언제쯤 끝나게 되는가? 아마도 자네 임기 중에 완성될 테고, 그러면 베트남 생활의 추억에서 좋은 기념비가 되지 않겠는가? 멋진 작품이 되도록 땀을 많이 흘리게나.

컨테이너 하우스가 5월 3일에 들어올 예정이네. 인간이 살아가는데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것이 기본이니 부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이 많네. 전기도 끌어오고, 화장실도 설치하고, 샘도 파야 하고.... 하여튼 여주로 이제 한 발을 들여놓은 셈이네. 적당한 육체적 노동과 종교적 묵상과 그리고 단순한 생활, 이제 이런 것을 실천해 볼 생각이라네.

이곳은 지금 라일락이 한창이네. 시영 단지 안에 특히 라일락이 많아 오가는 길에 그 향기 때문에 황홀해지네. 뒷날 이 시절을 돌아본다면 이 향기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네.

퇴근을 앞둔 시간, 어제 테니스를 무리하게 쳤더니 어깨가 아파 오늘은 쉬고 있네. 운동장에서는 운동하는 동료들의 고함소리,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네.

자네와 가족, 그리고 모든 이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2001. 4. 27. 16:3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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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


16. 힘 나누기 - 30. 자족


길게 타이핑해 보았네.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이곳은 봄 가뭄이 오래 계속되고 있네. 주룩주룩 시원한 빗소리 한번 들어보고 싶네.


2001. 5. 18. 13: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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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


어느덧 5월의 끝날이 되었네.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한 달이 넘게 자네 메일을 받지 못하고 있네. 4/22 메일이 마지막이었는데 송수신 과정에서 어떤 이상이 생긴 건지 궁금하네. 내 메일은 잘 수신이 되는지?

이곳은 날씨가 너무 가물어서 큰일이네. 자네 메일 가뭄과 비슷하게 한 달이 넘게 비다운 비를 만나지 못하고 있네. 여주에 심어 놓은 밭작물(몇 포기 되지는 않지만)이 안타깝네. 거기는 지금 우기인가? 그 시원한 빗줄기가 그립네.

메일을 열어보는 대로 바로 연락주기 바라네. 여러 가지로 궁금한 것이 많네. 비록 기후는 다르지만 항상 건강에 조심하면서 보람 있게 지내길 비네.


2001. 5. 31. 14: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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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어느덧 5월의 끝날이네. 소식 늦어 미안하네. 나는 왜 자네가 이리 소식이 없나 생각하고 있었네. 요즈음은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이네. 베트남 환경에 적응이 되었는지, 혹은 벌써 매너리즘에 빠져가고 있는지... 게으르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채찍질해 보네

이곳은 약 3주전부터 우기가 시작되었네. 매일 한차례씩 스콜이 쏟아지고, 그 후에는 시원하기도 하고 후덥지근하기도 하고, 체력은 더위에 약간 진이 빠진 것 같기도 하고...

학교 건축은 예정대로 진행되어 지금 한창 공사중이네. 8월 중순이면 완공되어 이전할 수 있을 것 같네. 이사하고, 새살림을 구입하고 준비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 신설학교이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치 못하는 일들이 계속 생긴다네. 수업료를 장기 체납하는 학생들 처리 문제로 고민하기도 하네. 1년 이상 못내는(?) 아이가 상당수 있는데 제적할 수도 없고, 아이들에게 상처 주는 일도 할 수 없고... 어려운 문제로 학부모회와 이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숙의 중이네.

자네의 여주 생활은 어떤가? 지난번 컨테이너 한대를 활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 주말에 여주에 내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네. 자네가 여주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 나도 옆에 하나 장만할까 생각하고 있네.

이곳 생활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네. 다시 출발하는 기분으로, 운동화끈을 다시 매는 심정으로, 출발점에 다시 돌아온 심정으로 뭔가 열심히 해보고 싶은데 잘 안되네. 마음에 실천이 따라주지 못하는 것 같고...

이번 방학은 틈나는 대로 여행을 다닐까 하네. 지난 5월 초의 며칠간 휴가에 달랏이라는 곳을 아내와 함께 다녀왔네. 그곳은 해발고도가 높아서 선선한 곳이고 특히 잘 뻗은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공인데, 이번에 분위기 좋은 모텔을 개발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왔네. 작년 여름에 한번 갔던 곳인데 이번이 벌써 두 번째이네. 하노이 부근을 가려고 했는데, 그곳을 보려면 최소 8일이 필요한데 시간이 6일밖에 없어서 여름방학으로 미루기로 했다네.

베트남에 익숙해지면 질수록 베트남을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네. 항상 따뜻한 곳(더운 곳, 그러나 에어컨이 있으면 시원한 곳), 항상 푸르르고 항상 수영할 수 있는 곳, 뭔가 한국사람에 대하여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듯한 눈길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곳. 한국과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곳. 한국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면서 (시골 동네처럼) 아웅다웅 살고 있는 곳. 그런 곳이 사이공이네. 이쁘고 날씬하고 매력적인 사이공 처녀들이 남자가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서 남자를 꼭 끌어안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거리를 메우고 있는 곳. 사회주의 국가라는 의식이 잊혀지고 마음이 편해지는 곳일세.

내일부터는 6월이네. 더워지는 날씨에 건강 주의하고 참 수연이 대학입시때문에 신경쓰이겠군. 나도 큰아이 대학문제로 가끔 가족들과 대화를 갖고 있는데, 아마 미국 쪽으로 정한 것 같고, 캐나다나 호주도 고려하는 것 같네. 여기 외국인학교 1년 다닌 아이가 영어 회화를 잘하고, 외국 영화보면서 웃고 즐길 줄 알고, 몇 페이지나 되는 보고서를 영어로 작성하여 제출하고, 영어로 히스토리나 에세이시험을 보고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을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드네

어느 정도 이상 성장하면 부모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게 된다는 진리를 체험하고 깨닫는 시간들이 많아지네.

오늘은 그만 줄이네. 다시 건강 유의하기를 바라고, 가족의 풍성한 행복을 기원하네.


2001.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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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3


베트남 소식 잘 보았네. 무소식이 희소식이었군. 베트남 생활에 잘 적응하면서 지내고 있다니 반갑네. 학교 신축도 잘 되고 있고, 집의 아이들도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한다니 좋은 일이네. 아무쪼록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해외 생활이 유익한 경험으로 되길 빌겠네.

이곳은 비가 내리지 않아 참 걱정이 많네. 세상의 삭막함 탓인가, 날씨마저 메마르고 건조하네. 몇 십년만의 가뭄이라는데 요사이는 비정상적인 기상 상태가 워낙 흔해 이런 이상 기후에도 만성이 된 것 같네. 그런 적응력이 슬프네.

대학에 들어간 큰아이로 걱정이 많네. 기성세대의 노파심인지 모르지만 멋 내고 늦게 귀가하는 것 때문에 큰 소리를 낼 때가 많네. 어느 정도까지 자유를 허용하고 어느 정도까지 통제를 해야 할지. 아이의 마음을 믿기는 하지만 부모의 조바심도 벗기가 힘드네. 우리도 클 때 그랬을까? 쓸데없는 것 가지고 부모가 신경 쓰고 간섭한다고.

내 생활을 좀 얘기하겠네. 여주 생활을 시작한지 한 달 가량 되었네. 주말에만 내려가는 반쪽이 생활이네. 아직은 컨테이너만 들여놓은 상태이고 샘은 파질 못했네. 물은 이웃에서 연결해 쓰는데 여름이 되니 많이 불편하네. 집사람은 고3 아이 때문에 매인 몸이라 주로 혼자만 내려가는 편이네.

밭에는 조금씩 몇 종류의 채소를 재미삼아 심어 보았네. 고추, 옥수수, 토마토, 방울토마토, 상추, 쑥갓, 가지, 호박, 박.... 비실비실하기는 하지만 고추와 토마토에는 작은 열매가 맺혔네. 상추와 쑥갓은 뜯어 먹기도 하고, 그래서 내려가면 바쁘게 지내네. 물 주고, 풀 뽑고, 주변 정리하고, 쳐다보면 할 일이 항상 기다리고 있네. 바쁘게 쫓기는 것은 내가 원한 생활이 아닌데 괜히 여러 가지를 심었는가 후회하기도 하고, 되도록이면 쉬는 시간을 많이 가지려 하고 있네.

한 달을 지내면서 느낀 것은 이런 주말 생활로는 만족이 힘들다는 것이네. 완전한 귀본에 대한 소망이 더 커져가고 있네. 자네도 터를 장만하리라고 얘기했는데 내 생각으로는 서울 생활을 겸하며 지내기 위해서는 거리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 같네. 멀어야 양평(50km) 이내에서 정하도록 하게. 우리 집까지는 양평의 두 배이네. 정체에 시달리며 오가는 것도 피곤한 일이네.

다행히 좋은 이웃을 만나 감사하고 있네. 많은 사람들이 농촌 마을의 텃세를 걱정했는데, 그 반대로 격려와 도움을 많이 받고 있네. 그것은 아마도 대부분이 같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고, 컨테이너로 간촐하게 시작한 탓도 있으리라 생각하네. 처음부터 삐까번쩍 집을 짓고, 공사하느라 소란스럽게 한다면 서로 위화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네.

여러 가지 작은 소동들도 있었네. 밭에 컨테이너를 놓으니 바닥이 물렁해 자꾸 기울어져서 신경을 쓰게 하고, 세면장 바닥을 시멘트로 바르는데 배수구 쪽을 더 높게 해 버려 물이 거꾸로 흐르고, 밖에 벗어놓은 신발을 마을 개가 물고 가서는 다 찢어 놓고 등등... 그러나 여러 가지 좋은 경험들로 여기고 있네.

학교 선생님 한 분이 내려와 보고 왜 이런 궁벽한 곳에서 어렵게 살려고 하느냐고 묻더군. 또 전원생활이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나 직접 부딪쳐 보니 좋다 나쁘다의 차원은 아닌 것 같네.

머리에 떠오른 대로 몇 가지를 적어 보았네. 오늘은 현충일 휴일인데 오랜만에 서울 집에서 쉬고 있네. 건조한 햇빛이 사납게 아파트 베란다로 파고드는데, 이상과 현실의 조화, 믿음과 행동의 일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네.

잘 지내게.


2001. 6. 6. 아침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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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늦었네

자네의 귀본에 대한 희망이 한 발자욱씩 진행되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하고 축하도 하고 싶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나 새로은 느낌들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네. 어쩌든지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을 잃지 말고 우리 생활의 에너지원으로 간직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하기를 바라네.


우리 큰아이는 6월 10일 서울에 들어갔네. SAT등의 준비를 위한 학원에 다니기 위한 것인데 2개월간 있을 예정이네. 우리는 7월 14일 방학예정인데, 지금 생각은 잠깐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학교이사 등 바쁜 일들 때문에 희망대로 이루어 질수 있을지 알 수 없네.

이곳은 다시 우기가 시작되어 매일 한차례씩 스콜이 쏟아지고 있다네. 거리는 오토바이 행렬이 가득하고, 또 오토바이에서 내뿜는 매연과 소음이 상당하네. 이곳 베트남 호치민시의 변화하는 모습의 속도가 굉장하네.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숫자는 눈으로 느낄 정도로 증가하는 추세네.

우리나라와 정서적으로 비슷한 나라이면서, 그러나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나라보다 여건이 더 좋은 나라(자원, 노동력, 재주 등, 굶어죽거나 얼어 죽을 염려 없는 나라, 쌀의 제2 수출국) 이면서 의식이나 사회조직이 비능률적 요소가 많아서 걱정스러운 나라. 이제사 베트남에 조금씩 정이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여기서 신문 등을 통해 보는 한국의 모습은 정말 걱정스럽게 한다네. 전에도 마찬가지 였겠지만, 여기서 들리는 조국의 모습은 정말 걱정스럽네. 한마음으로 한 방향으로 일로 매진하고 노력하여 선진국으로 성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만 하네.

대학에 들어간 수진이와 고3인 수연이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은 생각이네만, 나도 마찬가지라,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마음대로 할 수 있겠나. 그냥 노력해 보는 것으로 도리를 삼는 수밖에...

나도 큰애를 서울에 보내면서 맘 편하게 보내지 못하여 내 맘도 편하지 못한다네. 좋은 부모 되기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내가 좋은 인간이 되기가 어려운 만큼이지 않은가 생각하네.

교회에서 찬양대원으로 연습하고 부르고 또 연습하는 시간들이 참 즐겁고 나에게 큰 은혜가 되고 있네. 무더운 여름에 건강관리 잘하기를 바라네. 우리 나이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니네

그럼 다음에...


2001.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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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


퇴근하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네. 테니스를 치던 선생님들이 쫓겨 들어오고, 요란한 천둥과 번개에 지금 발이 묶여 있네. 베트남의 스콜이란 게 이럴까 하고 밖을 바라보고 있네. 석 달 이상 끌던 가뭄이 다행히 그저께 하루 종일 비가 내려 전국이 대부분 해갈이 되었네.

오늘은 장학 지도가 있었고 젊은 선생님이 연구 수업을 했는데 그분의 열정과 교수 방법에 많이 부끄러웠네. 연륜이라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식어버린 열정과 사랑, 그리고 화석화된 지식으로 아이들 앞에 서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졌네. 도피적 생각인지 모르지만 이젠 그만 두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네.

자네가 종교적 활동을 통해 은혜를 받고 있다니 기쁘네. 주님은 각 개인에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위로와 힘을 주신다고 생각하고 있네. 나의 여주행 발걸음도 가장 큰 이유는 거기에 있네. 채소 가꾸고, 시골 생활 체험하는 것 만이라면 많이 힘들고 좌절되기도 했을 것이네.

학교 건축의 마무리가 바쁜 모양이군. 이번 방학에는 여기에 다녀갈 계획은 없는가?

우리는 방학이 7월 18일이네. 아마도 주로 고향이나 여주에 가서 생활할 것 같네. 여주는 철로 된 집이라 뜨거운 한낮에는 열기로 달아올라 안에 있지를 못 하네. 지붕이나 차양막을 해야 하는데 힘들지만 좀더 견뎌볼 예정이네. 대신 밤이 되면 덜덜 떨게 되지. 마치 작은 사막이라고 할까. 냉탕과 열탕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자연 상태와 가장 가까운 주거가 아닌가고 위로를 삼고 있네. 크기는 6m, 3.5m의 직사각형인데 소로우가 월든 호수 옆에 지었던 통나무집과 사이즈가 똑 같네.

이제 비가 그쳐가고 있네. 집으로 돌아가야지.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네.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길.....


2001. 6. 20. 저녁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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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내가 가위손 철학자라고 부르는 분이 우리 학교 이발사 아저씨네. 어제는 그분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었네. "음식물 찌꺼기를 문 앞에 내다 놓으니까 어디선가 똥파리들이 몰려들고, 뜰에 호박꽃이 피니까 벌과 나비가 찾아오는데 그걸 보니까 모든 일은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걸 알겠어요.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서 똥파리를 모으기도 하고, 벌과 나비가 춤추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개똥철학이라고 하는데도 스스로의 생활 체험에서 나온 것이라 어느 위인의 말보다 더 귀중하게 들렸네. 3천원을 주고 이발하면서 많은 것을 듣고 배우게 되네.


'배움의 道'를 다시 몇 장 보내네.


34. 위대함 ~ 41. 비웃음


2001. 6. 22. 12: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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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는 사이공한인 테니스회의 2/4분기 테니스대회가 투덕골프장안에 있는 코트에서 있었네.

8팀이 참가하여 2개조로 나뉘어 시합을 했는데 우리조가 준우승을 해서 트로피를 받았네.

6게임정도를 했는데 기진맥진했지만 최선을 다했네. 그리고 어제는 우리학교 교감이 한국에 부임하게 되어 환송골프를 투덕 골프장에서 갖고 저녁식사를 했었는데, 그분은 초등교사로 부산에서 근무하다가 파견교원시험을 치르고 나보다 1년 반 먼저 부임했던 분이네. 3년 임기 중에서 나도 벌써 절반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고, 차창밖에 보이는 베트남의 일상모습들이 정답게 느껴지기 시작한다네.

가난하지만 열심히 일하고 잘살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순박한 사람들, 외국의 침략을 항상 스스로의 힘으로 물리친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는 애국심 많은 사람들, 잘사는 한국을 부러워하며 한국 사람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하면 한국만큼 잘 살수 있다고 믿으며 한국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눈이 매섭고 좀 사나워보이는 모습의 작은 농라(베트남 삿갓모자)를 쓴 베트남 여인들, 맨발에 흙 위에서 축구에 열중하는 아이들, 갑자기 스콜이라도 쏟아지면 어느새 우의를 꺼내입고 유유히 오토바이를 타고 흘러가듯이 거리를 메우고 가는 사람들...

그러한 베트남인의 인상과 일상들이 가슴을 적시며 그립게 차창을 흘러 지나간다네. 그러한 배트남인들의 아름다운 전통과 정서가 조금이나마 느껴지면서 베트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씩 싹트는 것 같네

학교 이전 문제로 바쁘다보니 시간이 잘 흘러가 주어서 고맙기도 하네. 한 학기가 마무리지워지면서 마음은 방학을 기다리고, 여러 계획으로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네. 그러한 기다림이 행복하다네.

귀한 시간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네게나. 자네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자네의 잔잔한 행복이 나에게도 느껴져서 좋네.

또 소식 기다리네.


2001. 7.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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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베트남에 대한 자네의 애정이 담뿍 느껴진 메일을 잘 받았네. 세상을 바라보는 그런 따스한 시선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테니스 대회에서 준우승한 것을 축하하네. 테니스에 골프에 팔자가 아주 좋은 것 같네 그려. 솔직히 말하면 부럽기 때문일세.

오늘부터 기말고사가 시작되었네. 오전에는 한 바탕 장대비가 퍼붓더니 지금은 비는 그치고 서늘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네. 대부분 선생님들은 퇴근하고 사무실에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J선생님과 둘이 남아 있네. J는 영어 공부하느라 매일 저녁 건대 어학원으로 나가네. 지금은 자유롭게 회화가 가능하다고 하니까 쉼 없는 그 열정이 대단해 보이네.

서울에 와 있는 휘중이는 학원에 만족하면서 잘 다니고 있는가? 영어를 배우러 서울로 다시 유턴한다는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수진이는 처음에는 방학 때 영어, 컴퓨터를 배우겠다고 하더니 막상 닥치니 첫 방학이라면서 실컷 놀겠다는군. 그 심정 이해가 될 것 같네. 그놈의 끝없는 공부, 공부....

요사이는 몇 사람들(간디, 마더 데레사, 슈바이처)의 전기나 자서전을 읽고 있네. 그분들이 위대한 점은 자신들이 믿는 바를 행동으로 실천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하네. 그런 헌신의 바탕이 된 신앙과 용기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네. 슈바이처의 자서전에 나오는 한 구절이네.


'아무리 보잘것없는 개인적 활동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통하여 인간을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인간이 되어줄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고 할 때 비로소 직업 생활과 더불어 인간 생활이 구제된다.'


장마철이 된 후 여주는 작물이나 잡초가 너무 자라서 어디다 손을 대야할지 모를 지경이 되었네. 가뭄 때야 일주일에 한 번씩 풀 뽑아주고 하는 것으로 지탱이 되었는데 지금은 두 손 들어버렸네. 차지하고 있는 터가 100평가량인데 감당하기가 힘에 부치는 걸 절감하네. 그리고 또 스트레스 받는 것은 이웃집에서 사나운 똥개를 여덟 마리나 기르기 시작했는데 그 소음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네. 그중 한 마리는 줄을 끊고 나와 천방지축 돌아다니면서 말썽을 부리고.... 조용한 곳을 찾아간 것이 벽두부터 시련을 겪고 있네. 네 뜻대로 되는 것 하나도 없을 테니 두고 보라던 선험자의 말이 생각나는데,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그래도 개를 사랑할 수 있도록 애써봐야 되겠지.

그곳도 지금은 한창 더울 때겠군. 건강에 조심하면서 잘 지내게. 나는 테니스를 지나치게 심하게 해서 그런지 오른쪽 어깨가 아파 괴로움을 겪었네. 지금은 테니스를 쉬고 있네.


2001. 7. 5. 15: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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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기다리던 여름방학식을 하였네. 내일부터 약 일주일간 아내와 함께 이웃나라 여행을 하려고 하네.

심기일전하고 재충전해야 방학 중에 해야 할 많을 일들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만사 제쳐놓고 떠나기로 했네.

몇 주일 전에 손등에 피부가 가렵고 부어서 고생했네. 병원에 다니고 연고를 계속 발라서 이제는 거의 다 나은것 같은데, 원인은 업소에서 주는 물수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물수건을 크레졸 등 독한 소독액으로 소독한 것을 손을 닦아서 피부 알러지가 생겼다고 들었고 발생 정황이 그런 것 같네. 하여간 고생하였고, 이제는 물수건만 보면 외면할 정도네.


여행에 다녀오면 학교 이전준비로 신경을 많이 써야할 것 같네. 다녀온 후 여행기를 보내기로 하세.

가족의 건강과 여름의 좋은 시간들을 기원하며...


200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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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


여행은 잘 다녀왔는가? 좋은 얘깃거리가 있으면 전해주길 바라네.

이곳은 장마도 막바지고, 매미 소리가 한여름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네. 잠실의 요란한 매미 소리는 잊지 않고 있겠지?

오늘은 오전에 수서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아내와 우산을 쓰고 대모산 산길을 걸었네. 우중이라 사람도 드물고, 비에 잠긴 산에서는 또 다른 정취를 느꼈네. 산다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참 서글프기도 하네.

우리도 지난 목요일에 방학을 했네. 앞에 놓인 긴 휴가가 마치 풍성하게 차려진 식탁과 같이 군침을 돌게 하네. 주로 여주와 영주와 서울을 오가며 지낼 것 같네. 건축 학교에 들어가서 집 짓는 실습을 할 계획도 있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네. 동생이 지금 황토집 짓는 현장에 들어가서 배우고 있는데 나도 동참해 볼까하고 생각중이네.

얼마 전에 집이 팔렸네. 10년 이상을 산 집인데 약간은 아쉬운 감도 있지만 그러나 홀가분하네. 당분간은 전세살이를 해야 될 것 같네.

여주에도 영주에도 컴퓨터가 없기 때문에 서울에 들를 때면 메일을 열어보고 연락하겠네.

더운 날씨에 건강에 조심하고 보람 있는 방학이 되길 비네.


2001. 7. 22. 18: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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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여가를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하네. 방학은 우리 교사에게만 주어진 귀한 특권이 아닌가 하며 감사하네.

지난 14일 방학하고 16일(월요일)에 태국의 방콕으로 갔는데, 비행기로 1시간 거리였네. 시내 관광을 하고 그랜드패리스와 인근 유적지등을 패키지를 이용하여 여행하였는데, 흥미 있는 점이 많았네.

첫째는 중국과 한국 일본 베트남이 모두 중국문화권이라서 한자사용이라든지 여러 가지로 역사적으로 교류가 있었고 밀접한 관계였는데(일본은 간접) 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지역나라는 중국의 무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나라이고 문화적으로 인도와 불교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던 것 같네. 방콕의 사원이나 궁전 등을 보면 인도, 중국, 서양 등의 문화가 골고루 다 섭취되어있고 그러나 태국 고유의 문화는 유지하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 보였네.

사이공도 델타지역의 평야인데, 방콕도 마찬가지고 참 풍요로웠던 지역이었던 것 같고, 북쪽의 치안마이, 남쪽의 푸켓 지역은 비행기로 1시간쯤 가야하는 지역인데 나는 이번에 가보지 못하고 다음기회로 미루었네.

또 하나는 태국의 개방성이 우리나라의 폐쇄성과 비교되었는데, 서울보다는 조금 뒤졌으나 참 국제화 세계화된 도시라는 느낌이 들었네. 우선 거리에 각양 각생의 외국인 관광객이 넘쳐나고 태국의 관광정책이 참 세련되었다는 생각이네(우리나라보다). 또 마사지걸 등 성적 개방성과 허용성이 놀라운데 대부분의 아열대지역의 성적 개방성의 공통성에다 국가정책도 추가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네.

참고로 여기서 저 북쪽 끝에 치우쳐 붙어있는 한반도를 바라보노라면 참 안스러운 느낌이 드는데... 세계로부터 외진 곳에 떨어져있고(여기서는 동남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이 어울려 있어서 이곳이 중심처럼 보이고 한국은 굉장히 북쪽에 치우쳐 보임. 주위에 중국과 일본만이 있는데, 둘 다 남쪽까지 이어져 있어서 우리나라보다는 가까워 보인다) 세계 돌아가는 정세에 국가 국민들이 관심이 적은 것처럼 보이는데 정말 세계화되려면 신문이나 방송의 상당부분에 세계 여러나라의 돌아가는 정세가 채워져야 하고 또 국민들이 적극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되는데, 우리 국민들은 너무 국내문제만 가지고 몰두해 지내는 것이 아닌가 여겨지는데, 사실은 무슨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막연한 느낌이네.

하여튼 다음에 호주의 시드니로 갔는데, 시드니는 참 계획도시로 어느 곳 하나 전체와 밸런스를 이루면서 조성되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았네. 한겨울이라는데 약 10도정도 되지 않을까 약간 쌀쌀한 날씨였고(한국의 초겨울정도) 참 깨끗하고 살기는 좋으나 규모가 예상보다 작고(호주 인구가 1800만정도, 시드니 인구가 약 400만정도?) 몇 달 살면 좀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되었고 실제로 5일정도 있었는데 별 매력은 없었네.

사이공이나 방콕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부딪치면서 (우리 강북처럼) 사는 도시와 조용하고 공원처럼 깨끗하나 인적 드문 도시(일부 강남처럼)에서 사는 삶이 장단점이 있어서 여러가지로 비교가 되었네.

이번 여행은 우리학교에 영어강사로 있는 호주총각 빌 이라는 청년이 동행해 주어서 어학 연수겸 많은 도움이 되었고, 시드니에서는 일요일에 시드니 장로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시드니 교육원장으로 있는 선배도 만나보고 집에서 식사도 하고 참 뜻 깊은 여행이었네.

다시 방콕으로 돌아와서 시내관광을 하고 사이공으로 돌아왔는데, 월요일 출발하여 다음주 화요일 저녁에 돌아왔으니 8일간 돌아다닌 셈이네.

그 후로는 학교 신축 및 이전, 보충수업 등으로 매일 학교로 출근하고 있는 생활을 보내고 있네. 방학하자 마자 아내와 함께 훌쩍 떠난 것도 할일은 많지만 재충전을 하고 와야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아서였고, 기분전환과 많은 도움이 되었네. 우리나라 한국이 참 살기 좋은 나라고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도 새삼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또 여행을 다니려면 빨리 다녀야 되겠다는 생각(체력이 필요하고 피곤하면 여행이 즐거움이 아니라 고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네. 그만큼 나이가 많아졌다는 것인지, 그리고 새로움이 주는 감동에도 둔감해 지는 것 같고...

매일 학교에는 나가지만 별 부담 없이 출근하니까 역시 방학이 좋다는 생각이고 감사하게 여기고 있네. 모처럼 이야기거리가 있어서 장황하게 적었네. 자네도 가족과 함께 이 소중한 방학을 건강하게 휴식하면서 잘 보내리라고 생각하네.


술잔은 노래로 마주해야 하리

우리 살이 길어야 얼마나 되나

견주어 아침이슬에 다름 없건만

가버린 날들이 너무 많구나


하염없이 강개에 젖어 보지만

마음속의 걱정 잊을 길 없네

무엇으로 이 시름 떨쳐 버릴까

오직 술이 있을 뿐이로다


푸른 그대의 옷깃

아득히 그리는 이 마음

오직 그대로 하여

이리 생각에 잠겨 읊조리네


사슴의 무리 슬피 울며

들의 쑥을 뜯는구나

나에게 귀한 손님 오면

거문고와 피리로 반기리


이문열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지은 시인데, 그럴 듯 하여 한번 적어 보았네.

다음 소식 때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게.


2001.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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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


고향에 내려갔다가 오늘 오후에 돌아왔네.

이곳은 너무 너무 덥네. 움직이는 게 고역일 정도이네. 시골에서도 그저 낮에는 앞 개울에 나가 다리 밑에서 발 담그고 누웠다 앉았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왔네.

자네의 여행 이야기를 잘 보았네.

외국 생활이나 여행을 통하여 넓어진 식견을 볼 수 있었네. 그 중에서 도시들의 분위기를 강남과 강북으로 비교한 게 재미있었네. 마침 오늘 신문에도 강남과 강북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생활 패턴이 다르고 사고방식까지 다르다는 기사가 나왔네. 이런 사회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이야 문제될게 없지만 존재하는 방식에서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걱정되는 것은 그런 차별화가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이네. 자네가 출국할 때와도 분위기가 더 달라져 있네. 이즈음의 편가르기식(?) 정치 사회적 상황과도 관계가 있다고 해야 할는지, 생각이 다른 상대방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난리판이 되어 버린 것 같네.

그리고 일반적인 강남 선호 풍조란 것이 우리 사회의 물질과 안락함과 출세에 대한 추구의 드러남으로 나는 보는데 - 내 관찰에 따르면 그런 경향의 사람일수록 강북 기피증이 심했네 - 문제인 것은 그것에 뒷받침되는 정신적 도덕적 성숙의 결핍이 아닌가 하네. 세상은 많은 것을 얻고 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네.

여행 이야기를 읽다가 괜히 엉뚱한 곳으로 가 버렸네. 여행에 대한 흥미는 예전 같지 않지만 둘째 아이 대학이 결정되면 올 겨울쯤 호주 쪽으로 가족 여행을 생각하고 있네. 계획대로 될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내주에는 여주에 내려갈 예정이네. 샘을 파는 등 할 일들이 많네.

우리에게 주어진 자랑이랄까, 이 자유시간을 건강하고 유익하게 보내길 빌며....


2001. 8. 4. 21: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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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9


계절은 벌써 가을로 접어드는 듯 얼마 전에 입추를 지나더니 논의 벼들도 연노란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한낮의 햇볕은 뜨겁지만 공기는 서늘하네. 밤이면 두꺼운 이불을 덮고 난방까지 틀어야 할 정도로 여주의 기온은 떨어져 있네.

여주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어제 올라왔네. 이번에 내려갔을 때는 미루었던 샘을 팠네. 집 가까이에 있는 수맥에서는 120자를 파고 들어갔는데도 물의 양이 적어서 실패했고, 두 번째로 밭 가운데의 수맥에서 100자(30m)를 들어가 물을 얻었네. 이 작업만도 하루 종일이 걸리더군. 그동안 이웃의 물을 날라다 먹고 있었는데 힘차게 뿜어 나오는 물줄기에 마음이 시원했네.

여주 생활은 대체로 만족하고 있네. 다만 한 가지 개 짖는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며칠 전에는 무슨 이유인지 옆에서 쉼 없이 짖어대는 소리로 거의 밤을 새기도 했네. 다음 날 이웃 분에게 잠 잘 주무셨느냐고 물었더니 잘 잤다고, 개 소리에 잠깐 깨기는 했지만 이내 잠들었다고 하면서 전혀 개의치 않더군. 다른 한 분도 말하기를 낮에 열심히 일하면 밤에 푹 잘 수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어지더군. 마치 도시인들이 자동차 소음에 익숙하듯이 이 분들은 거기에 적응이 되어 있는 것 같네. 깊은 산 속으로 피난가지 못한다면 살 길은 하나밖에 없겠지. 내가 거기에 동화되는 것이네. 그러나 개 짖는 소리가 자장가 소리로 들릴 날은 언제가 될지 까마득한데, 내일이 말복인데 안 된 얘기지만 몇 마리만이라도 인간 보신에 적선 좀 해 줄 견공이 생겼으면 하고 기대해 보네.

이번에 수진이를 수녀원의 성소 피정(수녀가 되는 탐색)에 보내 봤네. 두 딸 중 하나 정도는 수녀가 되었으면 하는 게 우리 부부의 바람인데 아직은 아이들에게서 그런 재질이나 소망이 보여지지는 않네. 옛 일이 생각나더군. 대학 졸업하면서 신학을 공부한다고 연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일은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만약 그 당시에 가톨릭을 접했더라면 아마도 수사의 길로 나갔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생각도 드네.

휘중이는 서울서 공부를 잘 하고 돌아갔는가?

이제 개학도 얼마 남지 않고 다시 직업적 일상이 기다리고 있네. 중국의 조주 선사든가? 道를 묻는 사람들에게 늘 "茶나 마시고 가게" 하셨다지.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 보네.

형수님에게도 안부 전해주고, 가족의 행복을 기원하네.

건강하게 잘 지내길....


2001. 8. 14. 18: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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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호치민총영사관에서 8.15광복절 기념식을 가졌네. 매년 하는 행사인데, 대통령님의 기념사를 읽고 애국가와 광복절노래를 부르고 만세삼창을 하고 간단한 다과... 해외에서 원로회장의 선창을 따라서 만세삼창을 할 때 시공을 초월하여 일제시대 선열의 마음이 조금은 느껴지기도 하네.

끝나고 학교에 나갔는데... 어제부터 새 학교로 이사가 시작되었네. 아직 공정이 조금 남았는데 현 건물을 비워주어야 하므로 이사를 서두르고 있네. 어수선한 환경이 마음이 쓰이고 뭔가 시원하지가 않네.

요즈음 감기 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약해지는 것 같네. 할 일은 많고 또 사람들 사이의 사소한 신경쓰임들이 장마비처럼 내리는 날씨와 함께 조금 우울하게 하네. 요즈음 이곳의 날씨는 계속 이어지는 비 때문인지 새벽에는 서늘하여 이불생각이 날 정도라네

여주에서 우물 파는데 성공했다니 축하하네. 언젠가는 나도 그 우물에서 뿜어주는 시원한 물을 마실 때가 있지 않겠나. 기대가 되네.

자네가 개 짖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이야기를 보고 미소가 떠오르네. 참 세상에 좀 편하게 쉬도록 해주는 데가 없다는 생각 때문일세. 이곳에서도 여러가지 좋은 점도 있고 또 내가 원하여 여러 관문을 넘어 온 곳이기는 하지만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생겨서 편하게 쉬도록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느끼게 되네. 도를 묻는 부질없음을 조주선사가 차나 한잔 마시고 가라는 답으로 대신한 것으로 여겨지네.

자네의 다짐대로 나도 이 자리에서 일상을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네.

우리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힘이 있고 맑은 정신이 있고 신앙과 믿음이 있으니, 그리고 앞으로 시간도 많이 있으니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하루를 시작해 보도록 하세

가족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면서....


베트남에서 친구가...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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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


학교를 옮기느라 바쁘고 신경 쓸 일이 많겠네. 건강에 조심하면서 잘 마무리하길 바라겠네.

그곳은 비가 자주 오는가 본데, 여기는 연일 35도가 넘는 막바지 더위가 계속되고 있네. 오늘 서울의 날씨는 여러 때가 뒤섞인 것처럼 하늘은 새털구름과 뭉게구름이 어우러져 있는 전형적인 가을 하늘에 햇볕은 한여름처럼 따갑고, 그러나 공기는 초가을처럼 건조하고 서늘하네.

사람이 한 가지에 몰두하면 다른 쪽에는 소홀해지게 되는 것 같네. 금년 들어 여주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간 내 생활의 한 부분이 되었던 등산이나 여행, 꽃 사진, 그리고 양가의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등이 모두 뒤로 밀려나 버렸네. 오늘은 몇 달 만에 카메라를 가지고 남한산성을 찾아보았네. 그러나 너무 오랜만에 오르는 산이라 힘들고 지쳐서 또 왠 모기가 그리 많은지 팔과 다리에 여러 방 뜯기고는 일찍 돌아왔네. 카메라에는 4월 달에 넣은 필름이 아직 들어 있는데, 관심이나 취미가 이렇게 쉽게 식어 버리는지 좀 의아하기도 하네.

우리 주위에는 IMF를 겪으면서 상황이 어려워져서 아직 회복되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보게 되네. 지금은 중간층은 없어지고 여유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나누어진 것을 실감할 때가 자주 있네. 소수가 가진 자본은 넘쳐 나는데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꾸 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런 현상들은 내 주변에서도 자주 접하고 있네. 경제 정책의 실패 탓인지, 아니면 이미 어떤 한 국가의 경영 원리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인지, 요사이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전세계적으로 이런 빈익빈 부익부의 현상을 심화시키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되네.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 통제되지 않은 과학 기술이 인류를 어디로 이끌지 걱정될 때가 많네.

자네는 아무래도 해외에 나가 있으니까 더 넓은 시각으로 우리 사회나 세상을 볼 수 있겠지? 환경은 파괴되고, 풍요는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하고, 그래도 문명의 수레바퀴는 어디론가 쉼 없이 굴러 가는데.....

한가한 시간에 한가로운 생각을 해 봤네. 감기는 좀 나았는가? 우리는 개학이 좀 늦어 27일이네. 내주에는 다시 여주에 다녀오려고 하네.

잘 지내게.


2001. 8. 18. 18:00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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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


여주에서 이 메일을 쓰네. 긴 횡설수설이 될 것 같네. 방학 중 너댓번 여주를 왔다갔다하면서 근 20일 가까이 여주에서 생활했네. 이제 이곳 생활도 틀이 잡혀가는 때문인지 이제 조금은 얘기할 수가 있을 것 같네. 지리하더라도 보아 주게나. 내 여주 생활과 생각을 떠오르는대로 적어볼까 하네.

새벽 5:30에 일어나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네. 보통 저녁 9시면 잠자리에 들지만 잠이 많은 체질이라 자명종의 도움이 없으면 스스로는 일어나지 못하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전혀 그런 징조가 보이지 않으니 잠 복 하나는 타고난 것 같네. 그리고는 걸어서 약 10여분 거리에 있는 수녀원에 가서 매일 미사를 드리네.

새벽 매일 미사는 다닌지가 1년이 좀 넘었는데 빠질 때도 있지만 이젠 생활 습관이 되었네. 서울과 달리 이곳은 소규모이고 또 수도자가 많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아주 좋네. 종교적 분위기에 쉽게 젖어들 수 있지. 특이한 것은 주일 미사 때나 새벽 미사 때나 참여하는 인원수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네. 도시 교회에는 새벽 미사에 나오는 신자 수가 전체에 비하면 소수인 경우가 흔하지.

미사 후에는 뒷산에 올라가네. 400m 급의 산줄기가 마을 뒤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데 산길을 따라 십자가의 길(기도와 묵상을 하며 지나는 길)이 만들어져 있어 쉬엄쉬엄 천천히 걸어 올라가네. 기도나 묵상에 전념하는 것은 아니고 이른 아침의 산길을 산책하는 기분으로 올라가면 중턱쯤에 마을을 내려보고 계신 높이 10m 정도의 예수님 입상이 서 있네.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네. 어떨 때는 아침 안개가 자욱히 깔려 있기도 하고, 일 나가는 농부들의 모습도 가물히 보이네. 거기서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한참을 쉬다가 내려오네.

아침 식사는 쌀가루로 생식을 하고 있네. 생식 습관 역시 1년이 넘는데 원래는 아침과 저녁을 했었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아침만으로 줄였는데, 작년에 간디 자서전을 보다가 감명을 받아 실천해 보게 되었네.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라는 그분의 권고에 따른 것이지. 서양 속담에도 '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이 있듯이, 단순한 비교일지 모르지만 육식 동물과 초식 동물의 성질 차이 등이 다 일리가 있어 보였네. 고향 이웃 동네에 평생을 쌀가루와 솔잎가루 만으로 살아오신 한 할아버지가 계시네. 아픈 사람에게 침을 놓아주시는 일을 하시는데 그 정정한 기력과 건강이 불가사의라네. 그러나 나는 아직 완전한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네. 채식 생활은 나의 꿈이기도 하네.

그리고는 볕이 뜨거워지기 전에 밭일을 좀 하네. 밭일이래야 잡초 뽑기가 고작인데, 거름도 약도 주지 않고 돌보지도 않아서 작물들은 대개 이웃 밭보다 반밖에 성장하지 못했네. 고추는 탄저병에 걸려 거의 전멸 상태이고, 다른 것도 초보 운전의 미숙함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네. 그래도 우리 집에서 먹을 것은 충분히 마련되고 있고, 이웃집들과도 나누어 먹고 있네. 특히 옥수수가 가장 재미있었고 지금은 호박이나 깻잎, 가지, 열무 등을 잘 먹고 있네.

그러나 지내다 보니 작물 기르기나 집 가꾸기 같은 것에 나 자신 별 관심이 없는 것을 발견했네. 어떤 사람들은 주위에 화초도 기르고 이쁘게 꾸미라고 하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네. 손이 적게 갈 작은 공간에 이 한 몸 편히 쉴 수 있다면 족하다는 그런 생각이네.

그 뒤에는 책을 보며 빈둥거리는 한가한 시간이네. 아직 컨테이너가 뜨거워지기 전이라 안에서 지내기에도 쾌적하다네. 이번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요'와 '벼랑 위에서 걷다'라는 두 권의 산문집을 읽었네.

그리고 점심 식사를 하는데 밑반찬은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밥만 지으면 되네. 끓일 수 있는 것은 고작 김치국인데, 앞으로는 간단한 요리쯤은 배워야겠다는 필요를 느끼고 있네.

가끔씩은 수녀원이나 이웃집의 초대를 받아 얻어먹기도 하네. 이곳 주민들의 순박함과 친절은 예상 밖이네. 요사이 시골 사람들의 야박함과 영악스러움에 대하여 많은 경고를 들었는데 지금까지는 전부가 기우였네. 예전에는 여주에서 가장 가난한 오지였다고 하네. 여주장에 가자면 30여리 길을 걷고 남한강을 건너야 했다는데 그 촌스런 행색에 읍내 사람들이 저기 촌놈들이 왔다고 누구나 알아보았다는 얘기를 들었네. 지금은 교통편도 좋아지고 외지인들도 많이 들어와 살게 되어 그런 분위기는 아니지만 그들의 심성만은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네.

그러나 이곳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이유는 여러 번 얘기했던 대로 종교적 분위기 때문이네. 수녀님들과의 사귐(내적 수도생활을 하는 분들이라 자주 접촉할 수는 없지만)과 새벽 미사가 가능한 것이네. 수녀님들로부터 받는 종교적 영향은 지대하네. 그리고 이런 촌구석에서 매일 미사가 가능한 곳은 그리 흔치 않을 걸세. 이것이 회두(回頭)를 하고 나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이 지역을 선택한 이유이네. 교통이 편리하지도 않고, 경치가 뛰어나지도 않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장소라네.

오후에는 컨테이너 안에서 지내기가 힘들어 외부 볼 일을 보거나 주위를 산책하기도 하네. 때로는 이웃집에 들러보기도 하는데 노인분들이라 말동무가 되어 주면 매우 좋아하시네. 마을 얘기나 인생 얘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하네.

만약에 내년에 직장을 옮기게 된다면 집을 지을 계획을 갖고 있네. 머릿속으로는 온갖 종류의 집들이 온갖 크기로 세워졌다 허물어졌다 하고 있네. 누구의 말로는 그렇게 1년 이상 뜸이 들어야 집 한 채가 나온다는데 아직 확정된 것은 무엇 하나 없네. 다만 '작고 단순하게'로 원칙은 정했네.

이곳에 들어오면 세상과는 완전히 절연되어 버리네. TV도, 신문도, 컴퓨터도 없고 다만 아내의 휴대폰을 빌려 오는데 그러나 집 외에는 전화가 올 데도 전화를 걸 데도 없네. 이상한 것은 이곳에서는 그런 세상과의 매개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네. 심지어 하루 종일 지내면서도 가족조차 생각 한 번 나지 않을 때도 있네. 사람 사이에서 보다 혼자 있을 때, 대화보다는 침묵 속에서 더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느끼는 내 천성을 여기서 다시 확인하고 있네.

한가한 오후 시간이면 밭으로 날아오는 새들을 종종 보게 되네. 종류는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딱새와 멧비둘기가 가장 많이 눈에 띄네. 이상하게도 그 흔한 참새는 이때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네. 산 너머에 백로 서식지가 있어서인지 백로나 왜가리, 해오라기도 자주 볼 수 있네. 어느 때는 내 곁으로 후투티가 갑자기 날아와 놀란 적도 있네. 후투티가 그렇게 큰 새인 줄은 새롭게 알았네. 밤이면 먼 곳에서 소쩍새 우는 소리도 자주 들리네.

이곳은 식물 생태적으로도 무척 관심이 가는 지역이네. 마치 외부와 교류가 잘 안되는 섬 같은 인상을 여러 번 받았네. 민들레에 두 종류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가 보통 보는 민들레는 거개가 서양 민들레네. 번식력과 적응력이 강해 어디서고 잘 자라나지. 또 하나 우리 토종 민들레가 있는데 서양 민들레에 쫓겨 거의 사라지고 이젠 보기가 힘들어졌네. 서양 민들레보다 더 연한 노란색인데 직접 본다면 그 품위가 서양 민들레에 비할 바가 아니네. 그런데 그 반가운 우리 민들레가 이곳에서는 지천이네. 서양 민들레는 한 포기도 보지 못했네. 내 짧은 지식으로 이런 지역은 참으로 희귀한 곳이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계곡이 있네. 이웃 분들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 봤는데 구천동계곡이 연상되었네. 규모면에서야 그곳과 비할 수는 없지만 한여름 대낮인데도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네. 특히 사람의 발길이 아직은 드물어 다행이었네. 그래도 휴일이면 외지인들이 찾아와 놀다가 버린 쓰레기로, 봄이면 산나물이 많다고 소문나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물과 약초들이 뿌리째 뽑혀 버린다고 걱정을 하더군.

어느 환경 모임에선가 강사가 말하기를 지구의 환경 오염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간단하고 유일한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없어지는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네.

밖에서 이 마을로 들어오자면 작은 산을 하나 넘어야 되네. 겨우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꼬부랑 오솔길이어서 넘을 때마다 기분 좋은 길이었네. 그런데 올 초부터 중장비가 들어오더니 산을 박살내 버리는 게 아닌가. 길을 넓히고 곧게 만든다면서 산허리를 잘라내고 끊어버리는 것이 무자비한 폭력에 다름 아니었네. 고작 몇 분 더 빨리 편하게 다니자고.... 자연이 말이 없다고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왜 우리는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를 잃어버린 것일까?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우리 자신에 못질하는 것에 다름 아님을 왜 모르는 것일까?

너무 화나는 일이었네. 이런 폭력이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네. 우리 고향을 지나가는 중앙 고속도로가 곧 개통되는데 수년간 공사 현장 옆을 지나다니면서 소백산과 치악산의 신음 소리에 무척 괴로웠네. 가는데 몇 시간 더 걸리더라도 이런 수혜는 받고 싶지 않네.

가장 즐거운 때는 저녁 시간이네. 일찍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누우면 창문을 통해 잿빛으로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볼 수 있네. 재수가 좋으면 수채화 색깔의 노을을 한껏 감상할 때도 있지. 기온이 떨어지는 공기는 상쾌하고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네. 밤이 되면 창문으로 달과 별이 보이는 작은 방, 별을 보며 잠들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만 하네. 때로는 이 방이 작은 우주선으로 상상되기도 하네. 별들의 세계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우주선의 꿈!

또 컨테이너가 좋을 때는 비가 올 때이네. 볼 품 없는 컨테이너지만 이 때만은 다른 어느 집에도 부럽지가 않네. 지붕과 사방 벽이 악기로 변하고, 나는 악기 속에 들어있는 작은 아이가 된다네.

가끔씩 개 짖는 소리가 밤의 고요를 깨뜨리기도 하지만 이젠 개소리에도 많이 너그러워졌네. 어떤 날은 너무 조용해서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이놈들이 컹컹대며 나 여기 있소 하네. 이놈들이 외부 자극에 좀 둔감해 졌으면 좋으련만....

밤에는 될수록 촛불만으로 지내려고 하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념과 망상 사이에 가끔씩 무념의 순간을 찾아보지만....

땅을 500평이나 끼고 앉았으니 부자 중에 부자지만 생활 자체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게 많네. 이제 물이 들어 왔지만 호스를 이리저리 돌려야 되고, 똥은 참고 참다가 아껴서 이웃집 신세를 지고, 오줌은 요강을 쓰고 있으니 아마도 달동네 빈민들의 생활과 비슷할지 모르겠네. 그래도 가끔씩이니 재미가 있네. 마치 옛날의 꽁보리밥이 가끔씩 그리워지는 것처럼....

가만히 누워 있다가 보면 어떨 때는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이 때문에 섬뜻 놀랄 때가 있네. 젊은 시절에 상상하던 장년의 원숙함과 인생의 경륜은 어디에 있는가? 마치 손바닥으로 잡은 물이 솔솔 빠져 나가듯 육체적, 정신적인 생의 기운이 점점 쇠하여 가는 것을 지켜보네. 이러다가 얼마 후면 스스로의 머리 감는 일조차 힘들고 귀찮아질 날이 이내 올 것 같네.

아름다운 삶!

그것은 늘 무지개이고 파랑새일까? 저 너머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 가 보면 또 저만큼 달아나 있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울지도 모르네. 잡아버린 무지개나 파랑새는 더 이상 신비도 아름다움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네.

우리는 神의 정원에서 철모르고 뛰어노는 어린 아이일지도 모르네. 백화가 만발한 꽃밭에서 뛰놀고 있으면서도 투정과 트집으로 부모 속을 썩히고 있는 철모르는 아이.

너무 긴 넋두리를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이해해 주게나.

친구의 행복을 빌면서.....


2001.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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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이 늦었네.

9월 3일(월) 새 학교에서 개학식을 갖도록 예정되어 있었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축공사를 독려하면서, 또 세세한 부분 지적하고 수정해가면서 건물을 짓는 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었네

건축이 완공되지는 않았지만 일부 교실은 사용이 가능하여서 새 학교에서 개학하고 일부 공사는 진행하는 어수선하고 어려운 시간들이었네. 아직도 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일주일동안 많이 자리잡혀가고 있네.

바쁘고 피곤하기도 하였지만 자네의 긴 메일을 읽으면서 많은 감동도 있었고 느낌도 있었네. 답장을 좀더 감정을 세이브한 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네. 자네의 여주생활이 자네에게 많은 경험과 생각을 주고, 또 의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고 생각하네.

사람은 생각은 경험의 범위를 넘어서기 어렵지 않은가. 장년의 나이가 되어서 나는 해외에서 자네는 낮선 성소에서 나름대로 겪으며 부딪혀 나가는 일들이 주는 생각의 소산이 풍부하지 않겠는가.

남들이 뭐라고 하든지 새로운 인생의 길을 개척해가는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네의 자세를 격려하고 싶네. 매일 가는 흔한 길을 가다가 남이 가지 않는 샛길을 한번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은가. 그것을 어떤 잣대로 재어서 평가하고 비교할 수 있겠나.

다만 자네의 건강을 잘 보존하고 이제 가정의 중심이므로 그 책임의 짐도 함께 지면서 험하고 알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일세.

자네의 경건한 미사의 시간에서, 고요한 산길의 산책의 시간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다양성을 간직한 자연의 한가운데 머물러 있을 때 남은 알 수 없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감동과 느낌이 있으리라 짐작할 뿐이네

하여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가능한 많이 나누어 가지도록 하게. 이미 커버린 아이에게는 벌써 그만의 커다란 세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미 부모의 존재가 보호가 되고 방패가 되고 의지가 되기보다는 걸림돌이 되고 제약이 되고 번거로운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개학한지 한 주가 지났네.

무척 신경 많이 쓰이는 시간들이었네. 당분간은 계속되겠지만, 그러나 학교 건물은 웅장하고 세밀하고 아름다워서 모두들 좋아하고 있네. 육천평의 부지는 결코 작은 땅이 아니며, 베트남 특유의 건축양식에 의해 지어진 건물의 배치와 모양은 한국의 학교와는 조금 다르다네. 아무튼 아름답고 좀 복잡한 구조의 건물이네.

여기에 여러 가지 조경계획도 구상하고 있고, 유리창틀의 견고성을 제고하기 위하여 지적하기도 하고, 에어컨의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여러 가지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분배하기도 하고... 하여간 많은 일들을 하고 있네. 모두 내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의견을 거쳐가면서 또 나의 의견을 요구하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네.

당분간은 아마 이 학기는 그렇게 다 보내게 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네. 지나고 나면, 먼 훗날은 보람 있는 시간으로 기억되리라 생각하지만 지금은 피곤한 시간들이라네.

그러나 다음주가 겨울방학이었으면 하는 생각은 없네. 아무 일 하지 않고 다시 방학이 되어버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싫다네. 할일 많은 지금이 좋은 부분도 있는것 같아.

오늘은 9월 7일, 어느새 세월이 흘러 황무지였던 학교 부지에 웅장한 건물이 태극마크도 선명하게 들어서 있듯이, 또 어느새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고 흰 눈이 날리는 겨울이 되겠지. 아쉬운 세월. 그리운 기억들. 우리도 곧 미래의 일에 가슴 설레는 청년의 마음에서 지나간 과거의 일들을 추상하면서 그리워하면서 보내게 될 나이가 되지 않을까. 그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벌써 발밑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서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게.


사이공에서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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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학교 건축 일로 얼마나 수고가 많은가?

집 하나를 지으면 십년이 늙는다는데 큰 건물 공사에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 같네. 그래도 거의 마무리되어 간다니 축하하네.

미국에서는 영화에서나 일어날 법한 사건이 벌어지고 세상은 어수선하건만 그래도 가을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르네.

요사이 나는 아내와 갈등을 겪고 있네. 여주 생활을 하다가 보니까 여러 면에서 소홀해 진다고 지난번에도 쓴 적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복합되어 아내의 불만이 터져 나왔네. 말하기에는 복잡하지만 하여튼 지금 어려운 상황이네.

그러나 이런 고통 뒤에는 더 나은 내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네. 우리 부부를 위해서 기도해주게나.


방학이 되면서 중단했던 '배움의 道'를 보내네. 우리는 지구라는 인생 학교의 학생들이 아니겠는가?


42. 창조의 가능성 ~ 50


2001. 9. 13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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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


몇 가지 소식을 전하네.

9월 달에 동기들과 두 번 만날 기회가 있었네. 다들 잘 지내고 있네.

한번은 송교감 부임 기념으로 서울과학고에 찾아 갔었네. 주로 현직에 있는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학교 앞에서 소주를 했네. 주로 송교감의 얘기를 많이 들었지. 교감 되기 전의 노력과 지금 위치에서의 힘든 일들을 주로 얘기하더군. 2차는 한강변에 나가 생맥주를 하고 헤어졌네. 돌아오는 길이 같은 몇이서는 또 한 잔을 더 하고....


요사이 학교는 좀 어수선한 편이네.

학급당 인원수 감축을 위한 공사가 모든 학교에서 시작되고 있네. 우리 학교도 내년부터 18학급이 증설된다는데 뒷 쪽 공터에 곧 5층 건물의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네. 그러면 한 학년당 20학급이 되는데, 글쎄 꼭 이런 식으로 강행이 되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

그리고 교원 성과급이 지급되었는데 이것도 현장과의 마찰로 조용하지 못하네. 전교조에서 하는 반납 운동에 나도 동참을 했네.


추석은 어떻게 지냈는가?

거기서도 떠오를 보름달을 보면 고향 생각이 간절할 것 같은데....

나도 오늘 고향에서 올라온 길이네.


가을이 익어가고 있네.

하늘과 땅이 온통 가을의 빛깔로 가득하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기에는 너무 쓸쓸하고 막막하고 힘드네.


좋은 나날이 되길 빌며...


서울에서

(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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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무에 그리 바쁜지, 메일 열어본지도 열흘이 넘는 것 같네.

새 학교로의 이전은 완전히 준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강행하였고, 어찌어찌하면서 갖춰나가고 있다네. 그러다 보니 무슨 무슨 자잘한 일들이 계속 신경을 쓰도록 하고, 또 주변에서 느껴지는 부담들이 역시 마음을 편치 못하게 하네.

간혹 신문에서 보는 한국의 단풍들도 실감이 나지 않고, 무슨 부정사건에 관한 큰 기사들에게도 거의 관심이 가질 않고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지네.

나의 마음을 추스려 더욱 겸손하게, 더욱 조용하게, 더욱 신중하게, 더욱 관대하게, 그러나 더욱 강인하게, 조심스럽게 하루하루를 만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 생각 뿐이지만...

여러 사람으로부터 시선과 주목과 평가와 비판을 받는 관리자라는 자리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네. 자기의 맡은 일만 묵묵히 하면 그만이었던 것 같은데(지금 생각에) 모든 것을 다 신경 쓰고 생각하려고 하다보니, 잠 못 이루는 밤도 적지 않다네. (감히)이순신장군의 시조[한산섬 달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않아 깊은 시름하는차에 어디선가 일성호가는 남의애를 끊나니]라는 시귀도 생각나고...

학급당 학생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하여 모든 학교에서 건물공사바람이 일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를 몇번 읽은적이 있네.

테니스코트가 사라지고, 운동장이 좁아지고 공사소음에 수업은 지장이 심하고...

현장 감각이 없으므로 말하기가 쉽지 않으나, 나는 생각이 좀 다른데.. 정말 대통령이 직접 진두지휘하여 강력하게 밀어부치지 않으면 학급당 인원수 감축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말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지며, 한학기정도 정말 힘들고 공부 못해도 얼마든지 참을만한 일이 아닌가 생각하네.

여러 부작용이나 반대의견이 있겠지만 우리 상황에서 이런 방식이 아니면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네....

추석은 잘 지냈겠지

여기도 추석은 있는데, 공휴일도 아니고 한국과는 분위기가 다르네. 한국의 가을처럼 일년 농사를 추수하는 기후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네. 우리 학교는 3일정도 공휴일로 하여 가족과 함께 푸콕이라는 섬에 다녀왔네. 비행기로 한 오십분 걸리는 곳인데 섬의 풍경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비행기에서 보는 메콩델타의 풍경이 매우 인상적이었네.

50여분을 가는데도 아래 보이는 평야는 마치 광대한 바다처럼 무한히 펼쳐져 있었고 어디를 보아도 산하나 보이지 않는데, 델타를 거미줄처럼 가로지르는 황토색갈의 메콩강만이 긴 용처럼 꿈틀거리는데, 참 대단한 크기이고 베트남이 참 대단한 나라라는 생각을 잠깐 하였었네

나도 어느덧 이곳 기후에 적응이 되었는지, 한국의 맑고 아름다운 가을이 그립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추워지는 날씨가 떠올라 몸이 움추려들기도 하네.

나이도 적지 않고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건강도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다, 이제는 세상사의 여러 일들이 더욱 신경을 쓰게 하고 피곤하게 하는 연배가 되어 참 지내기 쉽지 않은 시절이라고 생각 되네.

그러나 어쩌겠나. 더욱 조심하고 염려하면서 세파에 전복되지 않도록 작은 조각배를 잘 저으면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항해해 나가야 하지 않겠나.

한번밖에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가을을 놓치지 말고 잘 간직하는 금년 가을이 되기를 비네.


호치민에서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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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


가을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네.

저무는 것들이 보여주는 색깔과 향기가 온 누리에 가득하네.

세상은 분주하고 어지러운데....


요사이는 중간고사 기간이라 여유 시간을 즐기고 있네.

어제는 아내와 여주로 하루 나들이를 다녀왔네. 가을 풍광도 그러했지만 그 마을의 좋은 이웃들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이 될 수확물도 거두고....

고추, 호박, 파, 박, 밤, 대추, 가지 등 비록 정성들여 키우지 못하고 결실도 시원찮지만 내가 뿌린 씨와 흙의 산물들을 거둔다는 보람은 컸네. 특히 오랜만에 찾아간 아내가 무척 좋아했다네.


학교 증축 공사가 드디어 시작됐네.

사실 학급당 인원수 축소는 가장 희망하던 것인데, 막상 일이 터지니 대부분 교사들 반응은 시큰둥하네. 무엇 때문일까?


자네도 이젠 반 베트남 사람이 된 것 같군. 겨울이 두려운걸 보니. 지난번에 동기들이 모였을 때 연말 모임을 자네가 올 때쯤으로 하자고 얘기가 있었네. 자네가 좋아하는 스키장에서 같이 만나는 게 좋겠다는 얘기였네.


오늘 오후에는 테니스 대회가 있네.

테니스를 몇 게임하면 팔이 아파서 고생하는데 오늘은 어쩔 수 없이 나가야 될 것 같네. 조심스럽게 즐길 생각이네.


건강하고.... 좋은 나날들이 되길 비네.


서울에서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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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보는 조선일보에서 한국의 단풍이 새삼 아름답다는 감탄을 하네.

그리고 며칠 남지 않은 수연이 수능시험준비에 온 가족이 노심초사하고 있겠다는 생각도 하였네.

모쪼록 그동안 노력한 시간들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하겠네.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마음씀이나 사랑도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네. 어떻게 이와 같이 가족 사이에는 본능적인 감정의 끈으로 엮어져 있는가.

우리 휘중이도 지원할 대학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해서 10여 군데로 압축하고 있는 중이네. 캐나다, 미국, 호주등이네.

지금 아웅다웅하고 살지만 불과 몇 달 후 먼 외국으로 떨어져 살게 될 것으로 생각하니 아쉬운 시간들이기도 하네.

이곳은 여전히 여름이네. 그러나 1년 중 가장 지내기 좋다는 계절이기도 하다네. 11월부터 1월까지는 아무래도 덜 무덥게 느껴지는 기간이네. 3월부터 5월까지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의 더위가 심하고 5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 또 지낼 만 하네. 물론 우리야 어느 곳에서나 에어컨신세를 지니까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는 편이네. 현지인들이야 이미 적응이 되어있어서 어렵지는 않겠고, 인간의 적응능력도 새감 생각하게 되네.

한국학교는 9월부터 새 학교로 이전하여 순조롭게 새 환경에서 잘 지내고 있네. 환경을 하나하나 구비해 가느라고 신경을 쓰고 있고, 또 이달 21(수)일에 준공기념식이 예정되어있어서 준비하느라 마음쓰고 있네.

일이 많은 편인것 같기도 하고(모두 컴퓨터나 손으로 하는 일이 아니고 뭔가 파악하고 판단하고 조정하고 결정하고 하는 일들이라서 익숙하지가 않네) 정신적 에너지의 소모가 심한편이고, 그러다 보니 육체의 건강도 신경을 쓰면서 지내고 있네. 건강관리가 점점 중요해지는 나이가 되어가는 것 같네. 어느새 세월이 흘러서 두주불사하고 건강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서 마음대로 행동하던 시기가 어느새 지나버렸다는 생각이 드네.

이제 곧 영하로 내려가는 추위가 시작될 텐데 건강관리 잘하고 그리고 수연이의 수능을 전후하여 좋은 시간과 추억을 갖도록 하게.

참 지난 주일 예배에 성가대 찬양시 내가 처음으로 솔로 출연을 했다네. 아름다운 성 이라는 성가인데, 솔로부분이 좋았는데 틀리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무사히 감당했다네. 가사는 '아름다운 곳 주의 동산 화려한 그곳에 가보세. 천사의 노래 아름답게 들린다 아름답게 들린다. 되돌이 반복'


2001. 11. 7 사이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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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5


오랜만에 멜을 보내네.

이곳은 겨울 잠바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져 있네.

산간지방에는 진작 첫 눈이 내렸고...

누워있는 낙엽들을 보면서 자연의 대순환을 생각해 보네.

우리도 언젠가는 나온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겠지.

얼만큼 비우고 버렸는지, 그래서 참으로 가볍게 아듀하면서 이 세상과 인사를 나눌 수 있을지...

뒤돌아보면 아직까지도 모으고 움켜잡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 부끄러워지네.


바쁜 가운데서도 자네의 생활을 즐기고 있으리라 믿고 있네.

학교는 이제 준공식을 하게 되는가? 일이 잘 마무리되길 바라네.

우리 둘 다 자식들이 전환기에 있게 되어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다고 생각되네. 휘중이는 외국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겠구만. 아마 더 신경이 쓰이지 않나 싶네.

다행히도 나는 이번 둘째로 일이 끝나니 한결 마음의 여유가 있네. 아이가 시험은 못 봤지만 그러나 만족하네. 겨우 서울에 있는 대학에 턱걸이할 수준이네. 그래도 이 아이는 자기 하고 싶은 게 뚜렷하니까(중국어) 어느 대학에 진학하느냐는 상관하지 않네.


자네에 비해서 내 학교생활은 게으르다고 할 정도로 느긋하고 편안하네. 담임을 맡지 않은게 이렇게 달라지다니, 이런 호시절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요사이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난 참 행복한 놈이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

도시 불평할 거리라고는 없는...

여주 생활도 계속 진행되고 있고, 언젠가 때가 오면 더 잘 익어 가겠지.


요사이는 흘러 지나쳤던 성서의 두 구절에 대해 묵상을 하고 있네.

하나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인데 전에는 나무줄기와 가지 관계로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되면 영 의미가 다른 게 되어 버리지. 가지가 나무의 일부분이듯 나는 예수님의 부분이라는 것....

또 하나는 바리사이파의 질문에 대한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라는 말씀. 바리사이파를 향해서 한 대답인데, 그렇게 비난하시던 바리사이파 마음속에도 하느님 나라가 있다라는 의미에 대하여...


먼 이국 땅에서 드문 경험을 하고 있는 자네에게도 하늘의 평화가 함께 하기를...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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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메리 크리스마스 >


성탄을 축하하네.

세월은 어느덧 한 해의 막바지에 이르렀네.

그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장기간 서로 소식이 없었네.

남국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라 색다를 것 같은데....

아직 한 해가 더 남았는가?

삼년이라는 시간이 짧지만은 아니 것 같네.

지나고 보면 한 순간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고,

이 땅에 찾아오신 아기 예수님의 평화가 자네 가정에 늘 함께 하길 빌겠네.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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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하신년


잠시나마 자네의 건강한 모습을 보니 든든하고 반가웠네.

예정대로 북경과 홍콩의 한국학교를 보고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는 고사성어가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네.

어제 저녁 잘 도착하였네.

새해에도 가족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기원하며,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하네.


2002. 1월 1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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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며칠 전까지 약 보름동안 기침감기에 고생 좀 했다네.

요즈음에 감기환자들이 많은데, 한번 걸리면 오래 간다는 특징이 있네.

한 2년 지나면서 한국의 된장기운이 다 빠졌는지, 감기에 다 걸리고, 테니스도 부지런히 해서 건강관리를 잘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네.


개학 후에도 내년 학교운영방향등 여러가지를 조율하느라고 오히려 더 바쁘다네.

다행히 내가 구상하는 방향으로 정리가 되어가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만, 조직을 이끌어가기가 무척 힘이 드네.


한 가지 좋은 것은 이곳이 춥지 않고 항상 따뜻하다는 점이네. 지난주에는 앨범사진을 찍었고, 다음주는 전교생이 수학여행을 갈 예정이네. 학생수가 적기 때문에 2년에 한번씩 전교생이 움직이네. 1박, 혹은 2박 등으로. 약 2-3개 학년씩 묶어서 여러 곳으로 가는데, 바닷가인 판티엣으로 가는 학년, 고원지대인 달랏 지방으로 가는 학년, 나짱으로 가는 학년 등 제각각일세. 나는 다만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다녀오기만 기도하면서 학교를 지킬 예정이지.


그 다음 주는 구정 연후가 있고, 그 다음 주 2월 19일 종업식 및 졸업식이 예정되어있네.


수진이와 수연이는 대학생활을 잘 하고 잘 준비하고 있는가?

참 이번 방학동안 둘째 민중이는 3명의 친구들과 이웃나라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와 태국의 방콕 일원을 약 열흘정도 배낭여행을 하고 무사히 돌아왔네.

집에 들어왔을 때는 때국물이 흐르고 거지차림이었지만 얼마나 대견하고 안심이 되었는지...


여기서는 이웃나라가 가까우니까 한국에서처럼 외국나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네. 우리 학교의 학생들도 방학동안 여행을 많이 하라고 권장하고 있네.


어느덧 오십이 되어버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많다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요즈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네. 큰아이가 약 100일정도 지나면 졸업하고 어딘가로 떠나갈 것으로 이야기가 되니까 그런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네.


어제는 교회 다녀와서 아이들의 요청대로 시내에서 dvd를 한대 샀네. 소니 제품인데 265달러가 비용일세. 이곳이 싸다고 하는데, 정말 싼 가격인지... 그래서 오늘은 가족극장으로 저녁에 죤 트라불타 주연의 swordfish라는 영화를 보았네.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컴푸터 앞에서 메일을 쓰고 있다네.

학교 일이야 그렇고 그렇지만 느낌은 항상 새롭네.


2002. 1. 29

호치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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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7


메일 답신이 많이 늦었네.

그동안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겹치는 바람에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할까, 오늘 종업식을 하고 봄방학에 들어가면서 이제야 소식 전하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이지만 한 매듭이 넘어가는 이 때쯤이면 보람과 허전함이 복합된 감정을 느끼게 되지. 뭔가 쓸쓸함 같은 것....

나는 이번에도 여주행이 좌절....(지난달에 확인을 했었네)

앞으로도 힘들 것 같아서 무척 상심이 컸네.

너무 간단히 생각해 버린 내 불찰인지 작년에 서울 생활을 정리한다며 아파트까지 처분했는데 지금은 값이 다락같이 뛰어올라서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지.

경제적 손실이야 그렇다지만 꿈꾸던 생활이 벽에 부닥치니 많이 답답했다네. 그러면서 덕분에 마음 공부도 많이 했네. 아교풀처럼 내 마음에 붙어있는 집착 덩어리도 잘 보았고, 마음을 비운다면서 까불어 댔는데 그것이 한 줌 바람에도 허물어져 버리는 모래성임도 확인했네.

하여튼 요사이는 산다는 게 만만치 않음을 새삼 깨닫고 있네.

인생살이가 내 뜻대로 되기만을 바란다면 도둑놈이겠지만.....

약간은 침체된 가운데 하늘이 나에게 가리키는 길이 어떤 길인지 막막한 가운데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네.

자네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지난 메일에서 보았는데....

보람 있고 행복한 베트남 생활이 되길 비네.

둘째 아이는 서울여대에 등록했네. 아이들 둘을 모두 대학에 진학시키니 이제 인생의 한 고비가 넘어간 것 같네. 그런 면에서는 마음도 홀가분하고....

이번 휴가에는 동해 바다로 가서 바람 좀 쐬고 싶네.

좋은 시간되길 빌며....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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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8


옛날 앨범을 정리하다가 자네와 찍은 사진이 나와서 잠시 옛 생각에 젖었네.

25년쯤 전인가? 여기가 대천해수욕장 같은데....

군대 생활하던 자네를 찾아가서 같이 나와 찍은 것인데, 다른 기억은 하나도 나지 않고...

이곳은 봄기운이 벌써 완연하네.

아파트 화단의 산수유가 벌써 노란 꽃망울을 내밀었네.

좋은 날들 되기 빌며....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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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잘 보았네.

참 오래 살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느꼈네.

이제는 사진조차 없으면, 기억할 수도 없는 시절들. 그 때가 지금 되돌아볼 때 어떤 느낌인가. 그리움도 아니고 아쉬움도 아니고 후회도 아니고, 다만 그때 그랬었지....

그 한 장의 사진이 주는 느낌과 의미가 크네.


미래가 있었던 시절. 그때와 비교해보면 지금은 온통 현재 속에 파뭍혀서 씨름하는 것 같네.

그러나 지금도 미래를 가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현재와 미래를 잘 조화시켜가면서, 두 발은 현실에 머물고 있지만 두 눈과 가슴은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약간 힘이 들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

뭔가 일을 꾸미려면(미래를 개척해가려면) 의욕이라는 에너지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젊었을 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에너지가 지금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 세월과 나이를 느끼게 되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울림이 있네.

망각 속에 ane혀있던 시간을 한 조각 발굴하여, 깨끗이 씻은 다음 책상위에 올려놓고 응시하고 있는 기분.

어떤가. 자네는 그런 에너지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가. 그렇다면 아직도 청춘의 바운더리에 남아있는 것이고.

靑年(청년)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네. 푸르른 나이, 靑春(청춘). 푸르른 봄.

마냥, 저절로 커가기만 하던 시절. 참 좋은 시절. 靑春禮讚의 글을 이제야 이해하게 되네.(이해할 때는 이미 청춘이 아니라는 반증)

그러나 이제는 다 커버린 느낌.

벗이여. 그러나 우리 몸은 그렇지 못하지만, 마음도 피곤하고 약간은 지쳐있지만, 우리 사진속의 모습처럼 사는 게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 그렇게 살아보세. 사진속의 모습을 간직하며, 그러한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용기는 그때에 너무 흔해서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스러져서 찾기가 어렵네.

그러나 이제는 용기를 내어 살아보세. 용기도 에너지의 일종이라고 보면서, 일상에서 용기 있는 삶을 살아보세.

지난 자네의 메일을 보면서 계획대로 잘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네.


여주로 발령이 났더라면 자네의 스케쥴대로 전원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쉬웠을 것으로 여겨지네. 그러나, 삶의 길은 외길이 아니네.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길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서, 또는 외부의 여건에 의해서 선택하고 선택되어지는가.

삶이 외길이고 백 프로 예측가능하고, 완벽하게 포장된 크린한 페이브먼트라면, 좋을까?

행복할까. 또는 만족스러울까. 그렇지 않을 걸세. 그러한 삶은 정말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 것 같네.

너무나 다양한 길과 다양한 가능성. 어떤 외적 환경에서도 새로움을 발견하고 느끼고 또 외부와 교감하고 자기의 의지를 반영하여 약간은 손질하고 다듬어가고,

그것이 우리가 공유하던 의식의 일부가 아니었나.


가끔 남지나해 바닷가에 나가서 바닷물에 몸을 담글 때가 있네. 수영장물처럼 잔잔할 때는 전혀 없네.

항상 바람에 어느 정도 출렁이고, 먼 바다에서 시작된 파도가 작게 또는 크게 밀려오지. 어떨 때는 센 바람과 높은 파도가 거칠게 몰려와서 물보라를 뿌리기도 하지. 그럴 때는 피하고 바라보기만 하지만, 적당한 파도가 주기적으로 몰려오는 바다를 아내와 나는 좋아하였네.

우린 파도타기라고 이름하였는데 그냥 얕은 바닷가에서 파도가 밀려오면 기다리고 있다가 몸으로 부딪치는 놀이라네. 준비하고 있다가 파도가 밀려오면 몸으로 뛰면서 부딪치고 하는

것인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지낼 때가 있네. 어린아이처럼..

이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서 적당한 도전과 변화가 오히려 필요하고 좋다는 생각을 말하기 위한 것일세.


무료할 때는 열두 시간 잠만 잘 때도 있네. 어떨 때는 화원에 가서 조그만 화분을 하나 사오기도 하네. 그냥 외출할 때도 있고. 디브이디로 영화 한편을 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학교일에 내 뜻을 관철하기 위하여 힘들여 밀어부치기도 하지.

그러나 아무려면 어떤가. 바닷가에 서 있는 사람에게는 엄밀하게는 단 두개도 같은 것이 없는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지 않겠는가.

항상 잔잔하기만 하기를 바라겠는가. 또 그게 가능한가.

어차피 우리가 삶을 가지고 숨쉬고 있는 동안에는 이러한 파도들과 조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파도를 우리의 삶의 증거로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하지 않을까.

즐겨야 하지 않을까.

이양하의 수필 나무를 아직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安分知足'의 德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한해 한학기가 끝나고 내일 모래부터는 새학년을 새로 시작하게 되겠지.

우리에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얼마다 행복한 일인가.

교실붕괴, 학교붕괴 현상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그러나 학교는 우리가 머무르고있는 바닷가 아닌가. 바닷가에서 놀이를 찾아보세. 물놀이든 파도타기든 모래성 쌓기든지..

우리가 靑年이었을 때의 사진을 보노라니. 다 사라졌던 청년의 에너지가 어디선가 조금, 아주 조금 생겨나서 다시 가슴을 설레게 하네.

설레임이 많았던 나이. 그 나이의 사진을 보내주어서 고맙네.


2002. 3. 1

베트남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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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 < 봄이 오는데.... >


메일 잘 읽었네.

10대 후반에 우리가 만나서 30년 이상을 가까이서 살아 왔으니 공감하는 부분이 매우 많다는 걸 새삼 느꼈네.

새 학기가 시작된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 가네. 팡팡 놀다가 수업을 하게 되니 목도 아프고 집에 가면 녹초가 되어 버리네. 그런데 작년과 달라진 점은 학급당 학생수가 35명 이하로 줄어든 것이네. 내가 들어가는 2학년 이과반은 30명씩이네. 돌연한 변화가 어색하기도 하지만 모두들 환영하는 분위기네. 작년에는 획일적 정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수혜를 받고 있는 셈이지.

여기는 봄비가 내리고 예년보다 빨리 봄이 찾아오고 있네. 이 지구별에 와서 50번째 맞는 봄이 되겠지. 자연은 쉼없이 움직이며 새 생명들을 준비하고 있네. 반복되지만 늘 새로운 모습, 저 자연을 닮고 하나 되고 싶은 마음으로 이 봄을 기다리고 있네.

어두운 터널을 이제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네.

올 봄에는 여주 터에 나무도 좀 심고, 여름에는 작은 흙집이라도 하나 지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네. 내 동생이 지난달에 강원도 산골로 이주를 하여 곧 흙집을 직접 지을려고 하네. 거기 들락날락하며 좀 배워야겠네.

이국에서 보람찬 생활이 되길 빌며....


서울에서 친구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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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 < 문의 >


중국에 있는 한인학교에 대해 알고 싶네.

내가 거기에 근무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아는 대로 답해 주게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있는지 알고 싶어서이네.

중국에는 어디에 있는지?

선발 방법은?

내년에 과학과 모집 계획은 있는지?

혹시 베트남이라도 아이들이 중국어를 배우는데 유리한 환경이 될 점이 있는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학기 초라 많이 바쁘겠군.

나도 연이어 찾아오는 폭풍 때문에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 정도이네. 작년부터 시작된 이런 변화가 언제 되어야 끝이 날른지.....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것이네.

건강에 조심하고 좋은 생활되게나...


서울에서 일요일 아침에....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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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야 메일을 열었네. 뭔지도 모르지만 여유가 없었던것 같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왜 이렇게 생각할게 많은지....


중국에 한국학교가 몇군데 있네. 북경, 홍콩, 상해 한국학교인데, 상해는 초등과정만 있는 것 같고, 북경과 홍콩은 과학과 교사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학교에서 해당 과목을 뽑을지는 미리 알기 어렵네.

홍콩의 경우는 현지 교민 중에서 근무자가 있어서 그만 두지 않으므로 채용 하지 않을 것 같고, 북경의 경우는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네. 내가 다음 메일에 북경한국학교 전화번호나 이메일번호를 알아보겠네.


중국어를 배우려면 중국에 가는 것이 가장 지름길이네. 이곳에서도 배울 수 있으나(중국인들이 많이 있으므로) 한국에서 배우는 것이나 별 다름없이 이득이 별로 없을 것 같네.


중국은 물가가 싸니까 1년 정도 어학연수를 간다면 중국어를 상당히 마스터할 수 있는 것으로 들은 것 같네(올 초 북경에 잠깐 갔을 때)

북경 한국학교의 교사들을 보니까 모두가 20대 후반이거나 30대 초반으로 보였네. 그곳의 급료가 월1000불 정도로 메우 작아서 그런 것 같았네.


이곳은 이제 건기의 막바지라서 매우 더운 느낌이네.

곧 스콜이 매일 한번씩 쏟아지는 우기가 시작될 것 같고, 이곳에서 조선일보를 가끔 보는데, 황사현상이 심하고 국민경선과정이 뜨겁다는 정도 듣고 있네.

그러나 여기서 한국의 봄이 그립네. 얼었던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새싹의 향연. 새 생명의 잔치가 그립네. 대지의 아지랑이도 그립네. 벚꽃 만발한 길도, 노오란 개나리의 만개된 풍경도, 지천으로 핀 철쭉과 다소곳한 진달래도 그립네. 메마른 나무가지에 송곳끝처럼 솟아나는 새잎의 색깔도 무척 그립네.

여기서 느끼기에 우리 한국의 봄처럼 생명과 환희가 넘치는 풍경이 있을까. 1년 내내 변함없는 푸르름이 오히려 나무가 안스러울 때가 있다네.

몇 달간의 건기동안 비한방울 오지 않는데, 메말라가며 버티는 나무들에서 이곳 사람들의 강인한 인내심의 뿌리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릴때 동요에 '고향의 봄'이 있지 않은가.

이곳 교민 중 몇은 매년 이맘때 한국에 들어가 한두 달씩 지내고 오는 분도 있는 것 같은데 부러운 모습이네.


건강하게 잘 지내게.

2002. 4. 14. 주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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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 < 봄날은 간다 >


중국 생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구만....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휘중이는 어떻게 되었는가? 대학이 결정되었는지 궁금하네.

그리고 이 곳 소식은 별 다른 것은 없고, G 선생님이 우리 학교로 오셨네. 자네를 잘 안다고 하더군. 가끔 테니스장에서 만나고 있네.

그리고 5월 초쯤 독일팀 만나려고 지금 날자 정하려 연락하고 있네.

한국은 지금 봄이 한창이지.

신록에 들기 전이라고 할까, 연초록 잎들의 향연이 온 누리에 펼쳐지고 있네.

가장 아름다운 철이지. 그런데 유난히 올 들어 더 심한 바람과 황사가 심술을 부려서 재미를 더해주고 있네.

나는 여주 터에 집 지을 구상을 하느라 머리를 많이 굴리고 있네. 그러나 그 한계를 알고 있기에 크게 신경 쓰지는 않네.

자네도 맡은 일 너무 열심히 몰두하지 말게나. 어차피 일은 굴러가게 되어 있으니....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이 삶의 지혜가 아닌가 하네.

건강 조심하고 잘 지내게.


서울에서 친구가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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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의 봄이 어느새 무더운 여름으로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겠지?

가족도 모두 화평 가운데 건강하게 지내리라 믿고 있네.

이제 중간고사도 지나고, 1학기도 쏜살같이 지나는 때가 아닌가 싶네.

테니스는 어떤가?

공립학교는 돌고 돌아 다 만나게 되어 있기는 하지만... G 선생님과는 초임 천호중학교시절 함께 보내고, 계속해서 가끔 안부를 전해 듣는 처지인데, 총명하고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고 생각하네.


지금쯤은 개나리조차 다 지지 않았나 싶네. 덥지는 않은가?

아마 한국은 월드컵열기가 한참이리라 예상되는데, 이곳은 좀 잠잠하네. 나도 축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인지 덤덤하네.


이곳은 이제 건기가 끝나가고 우기가 시작되는 듯 하네. 어제와 오늘도 오후에 한차례 스콜이 쏟아졌네.

반년동안 비 한 방울 없이 가물어 목말라하던 식물들이 갑자기 생기를 되찾는 듯 하네. 얼마나 반가운 빈지 모르겠네. 더위는 여전하네.


큰아이 휘중이는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 입학이 확정되었네. 전공은 컴퓨터 관련 학과일세.

그동안 병역연기처리와 학생비자 발급 등을 처리하였고, 어제까지 졸업고사가 끝나서 다음주 월요일 졸업식이 예정되어있네.

입학에 대한 불안으로 원서는 캐나다와 호주 미국의 대학에 10여 군데 넣었는데, 다행이 대부분의 대학에서 입학허가서가 왔었네.

큰아이가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어 해서 다음주 일요일 저녁에 아이만 귀국할 예정이네. 한국에서 두 달 정도 지내고 8월에 미국으로 가게 될 것 같네.

지금까지 한 가족으로 함께 지내던 아이를 부모 곁에서 떠나보내려니 여러 가지로 생각되는 점이 많다네. 앞으로 언제 지금까지와 같이 한 지붕 밑에서 지내게 될지,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생길지 모든 걸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뿐일세.

부모의 둥지를 떠나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어린아이의 앞길을 우리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자네의 여주 집에 대해서는 나도 가끔 상상의 나래를 펴고 생각하는 시간이 있다네. 어떤 집일까. 어떤 모양의 집을 지을까. 생각하며 그려보며 준비하는 자네는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한다네.

인생에서 꿈의 덧칠함이 없다면 얼마나 건조하고 삭막할까를 생각하면, 항상 꿈 꿀수 있는 자네의 자리가 참 좋다고 생각하네. 자연아로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이 주는 큰 혜택을 감사하며 누리면서 살수 있는 마음밭을 애써 가꾸는 자네가 아닌가.


>자네도 맡은 일 너무 열심히 몰두하지 말게나. 어차피 일은 굴러가게 되어 있으니....

>결과에 집착하지 않음이 삶의 지혜가 아닌가 하네.


자네의 권유가 고맙네.

아닌게 아니라 이곳 생활에 조금씩 지쳐가지 않나 생각할 때도 있네. 게을러지려는 마음을 추스리고 있네.

건강하게 잘 지내고 좋은 소식 기다리겠네.


멀리 남쪽에서 벗으로부터

200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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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 < 오랜만이네 >


그동안 뜸했었네.

잘 지내고 있는가? 큰 아이는 서울에 나와 있는지?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일상들이 오고가고 있네. 계절은 벌써 여름으로 접어들고 요사이는 가을이 나타났는지 바람도 서늘하고 하늘도 무척 아름답네. 그래서 자주 한강변에 나가볼 기회가 잦다네. 날에 따라 시간에 따라 갖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한강이 옆에 있어 참 행복하네.

이번 달은 온 나라가 월드컵 열기로 들끓었지. 나는 그 광란(?)의 분위기가 싫어서 한국 게임이 있는 날이면 자리를 피했네. 오직 승리와 대~한민국을 외쳐대는 그 고함소리가 끔찍했네. 여기서는 이방인 취급을 받았지만 그래도 동감하는 한 친구가 있었네. 그 친구도 미친 6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얘기해 주었네.

이제 여름 휴가도 한 달이 안 남았군.

동기들이 여름에 베트남에 가기로 했는가?

독일팀도 모이기로 했는데 잘 안되었네. 몇 명 안되는데도 다 모이기가 쉽지 않네 그려. 방학 전에 다시 한 번 시도해 봐야겠네.

자네의 베트남 생활은 계속 여부가 결정되었는가? 지금쯤이면 결정되었으리라 생각하네만.....

호치민에서건 서울에서건 인간의 삶이란 다 비슷하겠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한 우리 삶의 공통분모,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 삶의 여정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질 때가 있네. 생활에서 만나는 사건들, 마음속에서 명멸하는 사념의 무늬들이 전 우주와 교류하고 조화를 이루며 한 세계를 이루어 나가고 있겠지.

시공간상에서 찰나요 한 점에 불과할지라도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귀하고 신비하다는 생각에 잠기네.

좋은 날들 되길 빌며.....


서울에서 친구가

(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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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소식 >


이곳에 우기가 시작되어 하루 한차례씩 시원한 스콜이 쏟아지네.

금방 더워지고 말지만..

큰아이 휘중이는 이달 초 한국에 귀국했네.

약 두 달 지내다 8월 중순 미국으로 들어갈 예정이네

박교수님 정년퇴임소식 때문에 천옥이와 연락이 닿아 방학 중 이곳 방문 이야기가 있었네. 내가 있는 동안에 올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네

이곳 근무는 3년 임기가 금년 마지막해이고, 내년 2월 귀국하기로 결정했네. (좀 지친것 같기도 해)

벗들이 온다면 이번 여름이 좋지 않을까 해서 이야기 했는데 천옥이가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네. 자네도 꼭 한번 오게나.

월드컵 열기는 이곳도 비슷하지만 국내만큼은 아닌 것 같아. 언론에서 보이는 본국의 열기가 내심 걱정이 될 정도인데, 다행히(?) 4강에서 멈추고 또 열기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기사도 읽으니까 이번 기회가 국민의식 향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기도 하고 있네. 그러나 오늘 저녁의 3,4위전과 내일의 결승은 놓치고 싶지 않네.

요즈음은 몸도 의식도 좀 둔해진 것 같고, 매너리즘에 조금 젖어들지 않았나 반성이 되네. 의욕도 처음과 같지 않고..

그러나 잘 추스려서 마지막까지 마무리 잘 하고 돌아가는 것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주고 큰 사명을 맡긴 국가에 대한 의무가 아닌가 생각하며 노력 중이네.

이번 여름방학에는 베트남의 중부 고원지방을 좀 여행해볼까 희망하고 있네

벗들이 오면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내년 봄을 고국에서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네. M이 벌써 딸을 출가시킨다는 소식이 왔는데, 두 딸의 아빠인 자네에게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을 것 같네.

두 따님은 대학생활 잘 하고 있겠지?

변산의 상록해수욕장에 두 가족이 함께 가서 즐겁게 보냈던 시간이 떠오르는군. 그때 모두 초등학생이었는데..

가족의 건강과 평화를 기원하며...


베트남에서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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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3 < 서울 소식 >


태풍이 서울로는 얌전하게 지나갔네.

어제, 오늘 계속 비가 내렸지만 바람은 약했고 지금은 서서히 비도 그치고 구름도 흩어지고 있네. 얼마의 피해도 있었겠지만 가문 땅에 단비 역할도 해 준 태풍인 것 같네.

오후에는 M 여식의 결혼식이 있어서 동문들 몇이 모였네. 볼 때마다 오랜만이 되는 관계지만 이젠 머리가 다들 희어지고 벌써 자식 출가시킬 나이가 되었네. 이런 때가 되어야 세월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지.

베트남 가는 얘기가 나왔는데 올 여름에는 어렵고 겨울로 추진하는 것 같네. 아마 천옥이 한테서 연락이 가겠지.

우리는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이고 방학은 25일이네.

자네도 곧 방학이 되겠지.

아마도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여름이 될 텐데 좋은 경험 많이 하고 잘 마무리하길 빌겠네.

건강에도 조심하고.....


서울에서 친구가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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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


와이티엔 연합뉴스를 보니 한국에 장마가 한참인 것 같네.

사정이 생겨서 초빙교사 면접이 약간 연기되었네.

내 일정은

7. 24(수) 아침 인천공항 도착

7. 27(토) 오후 인천공학 출발

일세.

면접일은 7. 26(금) 오전 중으로 할 예정이네

메일에 보니 G가 교환교수로 8월 중순경 출국한다고 하니 가기 전에 한번 모임이 있었으면 하는 것 같네.

이곳이야 항상 여름이니까 더위도 그저 그런가 보다 하는 느낌이고, 가끔 스콜이 수목과 대지를 적셔서 조금 시원한 풍경을 만들기도 한다네.

우리는 8월 30일 방학예정이네. 학기 마무리를 하고 있는 중인데 방학을 기다리고 있네.

건강하고 평강 누리는 삶이 되기를 기원하네.


7. 21(주일)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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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 < 잘 돌아갔는지 >


일은 잘 마치고 돌아갔는가?

친구들도 많이 만났는지?

어쩌다 보니 잠깐 얼굴만 보고 헤어진 셈이 되었네.

자네가 떠나간 이후로 이곳에는 무더위가 찾아와서 나도 여주에 내려갔다가 쫓기듯 올라 왔네.

같이 베트남 여행을 권해 주어서 고마왔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자네 얘기를 들으니 솔깃해 졌으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번 방학은 무리라고 여겨지네.

중순에는 암사동으로 이사를 가야하고, 또 여주 쪽에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좋은 계획 세우고 멋진 여행이 되길 빌겠네.

파크텔에서 자네 아들의 큰 모습을 보니 유수 같은 세월을 다시 한 번 느꼈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아마 저 나이였을 텐데 어느새 그만한 자녀를 바라보는 아버지들이 되어 있다니....

오늘 밖은 잔뜩 흐려있네.

흐린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서울에서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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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여름 >


짧은 방한기간에 자네를 볼 수 있어서 반가웠네.

우리 바운더리라 할 수 있는 파크텔 커피숍에서 좋은 시간이었네

멀리 떨어져 생활해 보니까 한국, 특히 우리가 사는 곳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끼게 되네.

해외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이 아닌가 하네.

과학고에서 면접을 마치고 점심시간에 뒤 식당에서 동기 8명이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였네.

변한 것 같지 않은 모습들 속에서 세월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것은 정말 우리가 많이 변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이 오십을 훌쩍 넘긴 얼굴들 속에서 우리의 연륜을 발견하고 미소하게 되네.


암사동으로 이사와 여주 건축아 잘 진행되기를 기도하겠네.

세월의 무게를 어깨에 느끼면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반추하면서,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고, 때로는 허전하기도 하네. 오래 쓴 타올처럼 윤기를 잃어가는 건강을 생각하면서, 좀더 땀 흘리고 부지런하게 움직이면서 건강관리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


이곳도 방학에 들어가서 시간적으로는 여유가 있네.

집사람이 12일쯤 서울에 들어가고, 15일쯤 큰애와 함께 미국에 동행할 예정이라서 지금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네.

작은애는 13일까지 학교에서 보충수업에 참가하고 있고..

8월 중순 이후에 여행을 생각해보고 있네.

올 여름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것 같고, 겨울방학에는 동기들이 몇 명 베트남 여행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함께 와도 좋을 것 같아..

건강하게 잘 지내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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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 서울 소식 >


이곳은 연 사흘째 많은 비가 내리고 있네.

7월 장마 기간에는 비가 적었는데 아껴둔 것을 이제야 써먹으려는 건지.... 같이 점심을 하며 미국 나가기 전에 얼굴을 본 셈이지.

1년간의 안식년 비슷한데 부담 없이 전 가족과 같이 미국생활을 계획하고 있더군. 아이들 둘은 겸해서 어학연수를 하고....

부러웠네. 그간 열심히 노력했던 대가이겠지.

오늘은 이사 갈 준비하느라 책장에 쌓여있던 책을 정리했네. 300여권 정도를 빼냈는데 일부는 풀무학교에 보내고 나머지는 버릴 생각이네.

책을 무척 아끼는 편인데 빼내놓은 책을 보니 아쉽기도 하고 또 각 권마다 그 책을 살 때의 기억이 떠올라 지금 멍하니 바라보고 있네.

이제는 버리고 떠나보내는 그런 나이가 된 것 같애.

자네도 첫째를 미국에 곧 보내게 되겠지. 대견하기도 하고 착잡할 것도 같네.

우리도 그렇게 부모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왔을 거야. 정도의 차이만 약간 있지 모든 사람들이 겪는 과정을 우리도 지금 지나가고 있는 거겠지.

마음 편히 건강하게 잘 지내게.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되는가?

밖에 쉼 없이 내리는 빗줄기를 보며....


서울에서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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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오래간만에 소식 전하네.

이제 개학하여 바쁘게 지내고 있겠지.

우리 학교도 어제 개학식하고 오늘 수업을 시작하였네.

어쩐지 점점 게을러져가는 자신을 보면서 큰일 났다는 생각이네

이리 게을러져서 어쩌나 하고...

마냥 아무 일도 하기 싫으니...

무기력증 같기도 하고,


방학동안에 약 일주일간 베트남 여행을 다녀온 내용은 화일로 첨부하였네.

다녀온 후 기억 삼아서 써본 것이네.

다닐 때에는 좋았지만 좀 힘이 들었고, 돌아오니 편하기는 한데 곧 지루해지고 아무래도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도래하지 않았나 한데, 아직도 여섯 달이 남지 않았나.


방학 중에 암사동 이사는 잘 하였는가?

아무래도 쉽지 않았겠지. 새로 이사한 집은 맘에 드는지, 그리고 여주의 새집 건축은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참 큰애 휘중이는 버지니아 공대에서 지난주 월요일부터 수업이 시작된 듯 싶네. 처음 몇 달은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많을 텐데 걱정이네. 작은아이 민중이는 고1생활을 그럭저럭 하는 것 같고...


TV를 보니까 태풍 때문에 남쪽과 동해안이 피해가 많던데, 참 우울한 부분이네. 얼마나 고생이 심할까 마음도 아프고..

이곳에서 남의 일처럼 멀리 느껴지는 자신이 좀 이방인 같아 보이기도 하고..

하여튼 정부에서 빨리 도와서 복구하도록 하여야 할 텐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보내고 있네.


친구가.

(9/5)


※ 첨부; 베트남 여행기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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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6 < 가을 풍경 >


이번 주말에는 선운사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네.

이상하게도 고창 지역을 지나갈 때면 안온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갖게 되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계절.....

곰소항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했네.

아름다운 한국의 가을을 자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서....

실경과는 천양지차가 있지만

그래도 사진 석 장을 보내네.

앞의 두 장은 선운사 앞에서 찍은 건데

두 번 째 빨간 꽃은 보통 상사화라고 부르는 꽃무릇이네.

들판에서는 보기 힘든데 이상하게도 선운사 부근에는 지천으로 피어있더군.

마지막 사진은 우리 집 앞 한강의 갈대라네.

..........

잘 지내고 있겠지?

건강하길....


서울에서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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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준 사진 잘 보았네.

새삼 느끼지만 한국의 사계절은 참으로 신의 축복이 아닌가 하네.

아지랭이 피어나고 새싹 움트는 봄날은 또 얼마나 좋은가?

가을의 풍요와 아름다움과 쓸쓸함은 또 어디에 비교할까

여름의 후끈한 생명력은 이곳에서 일년 내내 느끼는 것이고

겨울의 하얀 세상과 낭만은 또 어떤가.

이곳 베트남생활의 소득중 하나는 바로 한국의 재발견이 아닌가 하네.


내 고향 고창지역은 완만한 구릉에 소나무 숲들이 이어져 있어서 좀 여성적인 것 같아.

좀 험한 산들도 가끔은 있지만, 험한 정도가 강원도의 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지.

이제 몇 개월 후면 다시금 한국의 자연의 잔치에 참예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네.

지난주 목금토 3일 연휴(개교기념일 포함)에 아내와 함께 이웃 캄보디아의 앙코르왓트에 다녀왔네.

이곳에서 비행기로 약 한 시간 거리였네.

이곳 베트남도 경제적으로 어렵고 후진적인 지역이지만 캄보디아는 정말 어려운 여건인 것 같았네.

그러나 앙코르와트의 유적은 상당한 충격이었네. 그 규모의 크기와 섬세한 조각들이 참 신비로웠네. 비행기 삮이 왕복 208불정도, 비자피, 입장료, 숙식비등으로 일인당 약 400불정도 들었는데, 비용을 떠나 가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네.


암사동 둔치 쪽의 갈대숲의 아름다움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네.

아들 민중이와 함께, 혹은 혼자 가끔 한강변 북쪽의 끝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풍경을 자주 즐기곤 했었네.

이제 자네가 아침저녁으로 그 길을 자전거로 통근할 것을 생각하니 건강에도 좋고 경치도 좋고 참 좋은 것 같네.


보내준 사진에는 없지만 선운사의 풍천장어와 복분자 향기도 참 좋았으리라 생각하네.

자네와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며...


베트남에서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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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 < 잘 지내는지 >


오랜만에 연락하게 되는군.

그동안 잘 지내고 있는지.....

여기는 때 아닌 겨울 비슷한 추위가 닥쳐와 며칠간 달달 떨며 지냈다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 것도 아닌데 많이 춥게 느껴졌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지. 가을의 우울증 비슷하게 정신적으로 침체된 상태에 있었거든.

늘상 가을만 되면 이렇게 지내기가 힘들었네. 나이가 들수록 날씨와 계절 변화에 민감해지는 것 같아 주책 같기도 하고 의아하다네.

베트남의 마지막 생활은 어떠한가?

미국에 있는 큰 아이도 잘 적응하고 있겠지.

한 해의 막바지에 서서 산다는 것의 본질과 두려운 대면을 자꾸 하게 되네.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는 것들이 다만 하찮은 만용이었을 뿐....

삶이란 어지러운 먼지의 군무 속에서 한 순간 햇빛에 반짝하고 빛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영상일지도......

헛소리 더 할 필요가 없겠지, ᄒᄒᄒ...

그곳은 변함없는 여름이라서 조락의 계절을 실감하지는 못할 걸세.

한 해의 막바지에서 잘 지내고....

안녕히....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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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조선일보를 보는데) 한국의 단풍소식을 볼 때 먼 나라의 이야기 같은 느낌이네.

상하의 나라 일년 내내 여름인 나라에 살다보니 더위에도 무디어져버리고 그저 당연히 더우려니 하는 듯 하며 지내고 있네. 그러나 이제는 마무리를 잘 하여야 하는데, 전에 우리 군대갔을 때의 제대말년과 조금은 비슷한 기분인 것 같기도 해.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즐거움도 하나가 있네.

11월중에 신규초빙교사 면접관계로 잠깐 들어갈지도 모르겠네만, 학기 중이어서 매우 짧은 기간일 것 같네. 혹시 연락 못 할 수도...

금년 겨울을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또 하나의 즐거움이네.

겨울산도 좋겠고, 흰 눈 쌓인 스키장도 좋겠고, 물 뜨거운 향군회관 사우나도 좋겠지.

상당히 긴 여행이었네.

많은 새로운 경험을 했었네.

자네에게 항상 감사하네.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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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8 < 잘 돌아갔는지.... >


자네가 돌아가고난 어제는 봄날처럼 따뜻했네.

12월 기온으로는 3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는데, 얼마 전에는 11월 추위가 몇 십년만이라고 하더니, 인간의 호들갑이 늘어난 건지, 아니면 세상의 끝이 가까워진 건지, 원 조금만 춥거나 덥기만 하면 무조건 몇십 년만의 기록이 되니.....

일은 잘 마치고 돌아갔는지?

천옥이도 만나 보았는지 궁금하군.

그리고 호텔에서 자네가 두고간 선물도 잘 받았네. 고맙네....

서울에서 보여준 자네의 말이나 행동이 베트남 홍보 대사의 역을 맡아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았네. ᄒᄒᄒᄒᄒ....

긴 시간 같이 있지는 못했지만 자네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네.

비록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간에 차이가 나는 면도 있지만 우리 우정의 바탕은 오랜 시간만큼이나 깊은 정이 배어 있음을 느꼈네. 오래 숙성한 된장같은 것....

이제 완전히 돌아올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

제대 말년이라는 표현을 썼듯이 남은 기간 건강하고 의미 있게 보내길 빌겠네.

다음에 또 소식 전하세.


서울에서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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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사이의 한국 출장이었지만, 짧은 시간에 중요한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까

돌아온 다음에 한동안 몸살 비슷한 상태였었네.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다는 것이 잘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 서서히

짐 꾸릴 준비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곧 다시 시작할 서울생활이 실감나고 느껴지는 것 같네.

지금 창밖의 수영장 가에서 베트남 현지인 근로자들의 송년 파티가 한창인지 베트남어가 떠들석하고 있네

참.. 베트남이라는 나라와 내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될 줄이야.

해외에 나오면 국민들은 자국의 국력 덕택을 많이 느끼는데, 마치 자신이 자국의 국력만큼 크고 강하고 뭔가 많이 가진 것처럼...

그러나 혼란스럽게 비춰지는 국내의 모습이 세계에서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러나 해외 여러 나라에 당당하고, 여유 있게 생활하는 교민들이 많다는 것을 보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면서, 교육의 성 안에서 안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때가 많다네.

주5일제 수업을 하다보니 겨울방학이 늦어져서 앞으로도 한달 더 수업이 계속된 후에 방학에 들어가네.

올해 처음으로 졸업하는 고3학생들이 다행이 특례로 본국의 대학에 전원 합격할 것 같아서 감사하고 있네.

학교를 위해서 애쓴(약간이나마) 노력이 좋은 열매로 맺은 것 같아서...

무덥고 지치기 쉬운 열대지역이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운 맘이 많이 있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일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이러한 종류의 아쉬움이 있지 않을지, 아마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천상병 시인의 시처럼 '이세상 소풍와서 놀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면서, 이세상 참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는 시 내용처럼...

그러나 금수강산 우리나라처럼 아름다운 산하가 또 있을까. 더구나 그곳에서 나고 자라서 이미 그곳의 일부분인 우리에게..

아쉬움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와, 보람과 반성과, 추억과 기대와, 이러한 복합적인 감상을 남기면서 이곳 생활이 저물어 가고 있다네.


사이공에서 친구가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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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9


멜 잘 받았네.

세밑이 되니까 마음이 어딘지 들뜬 듯하고 또 약간은 쓸쓸한 느낌도 드네.

어느새 열 한 매듭을 다 보내고 마지막 남은 한 매듭이 왠지 외로워 보이는 때이네.

자네는 특히나 그쪽 생활의 마지막과도 겹쳐서 감회가 더 남다르리라 여겨지네.

이곳은 대통령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그 열기가 높아 가는데, 그러나 예전의 두 김씨 대결 때에 비하면 많이 차분하다고 할 수 있네. 그런 가운데서 양자 대결 게임이 무척 흥미진진하네.

우리는 19일이 방학이네. 주 5일제 근무가 좋긴 하지만 방학이 줄어드는 단점도 있군 그래.

지난 번 만났을 때 베트남 여행을 권했었는데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러나 실행가기는 어려울 것 같네.

하나는 장인이 지금 암 투병중이신데 고통 가운데 지내시고 계시네.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무척 아프네. 아내도 성당팀과 성지 순례 여행 계획을 잡았다가 취소한 상태이기에 혼자 즐기기에는 좀 무리가 따를 것 같네.

그러나 실상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생각이겠지. 이 몇 년간 국내든지 국외든지 밖으로 나가는 여행에는 왠지 흥미를 잃었네. 대신 내 자신 안으로의 여행에 자꾸 끌린다네. 폐쇄적이 되는 것에 대해 자네가 걱정할지 모르지만 안에서 솟아나는 그런 욕구는 어쩔 수가 없네.

그래서 이번 방학에도 혼자 숨어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보고 있네. 아마도 일주간 간의 단식 영성 체험에도 참가할 것 같고....

자네의 권유를 들어주지 못해 미안하네.

대신 자네가 계획을 잘 세워 남은 베트남 생활 멋지게 보내길 당부하네.

다음에 소식 전하지.

건강하게 지내길 빌며.....


서울에서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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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


행복한 성탄 되길.....


상하의 나라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성탄절이 더욱 의미 있고 행복하길.....


곧 큰 아들도 돌아올 거고

가정에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가득하길.....

200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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