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방학동 은행나무

샌. 2006. 11. 20. 12:45




세상 사는 일이 허전하고 쓸쓸할 때면 큰 나무를 만나고 싶어진다. 어느 늦가을 날 지하철을 타고 창동역에서 내려 마을버스(1161번이던가?)로 갈아타고 방학동으로 은행나무를 찾아간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800여 년으로 서울시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라고 한다.

 

전날 비바람이 세차게 친 탓인지 은행잎은 거의 다 떨어지고 나무는 맨몸으로 차갑게 서 있다. 잎을 다 떨구고 드러난 거목의 나신이 왠지 마주보기가 부끄럽다. 잎을 달고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줄기와 가지에 드러나 있어 더욱 그렇다. 마치 주름지고 탄력 잃은 할머니의 속살을 보는 것처럼 안타깝기도 하다.

 

예전에는 산 속에 있었겠지만 지금은 도시가 팽창하여 인간의 집들이 이 나무를 포위해 버렸다. 오직 한 면만 산자락에 접하고 나머지 세 면은 아파트와 빌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고 보니 안타깝고 초라해 보이는 이유가 이 탓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나무를 밀어버리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나무 입장에서는 본인의 일생 중 지금이 가장 큰 시련의 계절이 아닐까 싶다. 시멘트로 포위한 인간의 기운이 나무에게는 독성이 될 게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나무가 고목의 위엄까지 잃은 것은 아니다. 특히 둘레가 10m에 달한다는 가슴을 보면 그 크기와 당당함에 압도를 당한다. 저 속에는 천년 가까이 되는 세월의 온갖 풍상이 다 녹아있을 것이다. 그 천 년의 기다림 앞에서 고작 한두 해 목전의 이해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이 부끄럽게 생각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무 옆에는 '원당샘'이라는 유서 깊은 우물이 있다. 이 샘은 600여 년 전 파평윤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식수로 이용한 마을의 우물이라고 한다. 풍부한 수량으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혹한에도 얼어붙는 일이 없는데 은행나무가 오래 장수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우물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새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 여기가 바로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라고 할 수 있다.

 



또 나무 바로 옆에는 연산군 묘가 있다. 조선조 10대 임금이었던 연산군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쫓겨갔다가 3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그의 시신은 사후 6년 뒤 이곳에 이장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도 능(陵)으로 불리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왕들에 비하면 그의 무덤은 너무나 초라하다. 두 번의 사화를 일으키고 못된 짓을 도맡아 한 것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연산군의 모습도 어쩌면 승자들의 기록에 의존해서 그렇게 왜곡되었는지도 모른다. 늦가을에 찾아본 그의 무덤이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연산군 묘가 만들어질 때 이 은행나무는 벌써 300여 년 된 거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폐위된 왕의 초라한 장례 행렬을 다 지켜보았으리라. 비록 귀로 들리는말은 하지 않지만 천년의 풍상을 겪으며 인간사의 무상함을 몸으로 지켜본 이 나무야말로 진정한 철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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