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밤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

샌. 2006. 10. 10. 12:46

암 투병중인 친구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암 선고를 받고 지금은 직장도 그만 두고 통원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수술도 어렵다고 합니다. 그의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운 나는 전화 통화하기도 미안합니다. 그런데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가 예상외로 밝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명절 다음 날 친구들 몇이서 근교에 놀러갔다 왔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중병에 걸린 사람 같지가 않았습니다. 나 같으면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고 숨었을 것입니다. 평소에 낙관적이고 밝은 성격의 친구다워서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도리어 친구는 내 처지를 걱정해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해 보지 못한 경험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야.” 한계 상황에 처한 친구가 아무 것도 아닌 일의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내 어둠은 친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는 어둠을 비관하며 피하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질병이라는 밤을 통해 돋아나는 별을 보고 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가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내 인생의 밤이 있어야 내 마음 속에 별이 뜹니다. 밤이 깊고 어두울수록 별은 더욱 밝고 광채를 더합니다.



'열락(悅樂)이 사람의 마음을 살찌게 하되

그 뒤에다 ‘모름다움’을 타버린 재로 남김에 비하여

슬픔은 채식(菜食)처럼 사람의 생각을 맑게 함으로써

그 복판에 ‘아름다움’[知]을 일으켜 놓습니다.

야심성유휘(夜深星兪輝), 밤 깊을수록 광채를 더하는 별빛은 밤하늘의 ‘지성’이며

상국설매(霜菊雪梅), 된서리 속의 황국(黃菊)도 풍설 속의 한매(寒梅)도

그 아름다움은 비정한 깨달음에 있습니다.' - 신영복


'저는 이제야 밤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바로 별들이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는 이제야 내가 별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별이 나를 바라본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별들이 왜 어둠 속에서 빛나며 그걸 아는 데에 평생이 걸리는지, 왜 제 인생이 어둠이 깊어져야 별이 더 빛나는지 이제야 조금 깨닫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반드시 어두운 밤이 있습니다. 질병이라는 밤, 이별이라는 밤, 좌절이라는 밤, 가난이라는 밤 등등 인간의 수만큼이나 밤의 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을 애써 피해왔습니다. 가능한 한 인생에는 밤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밤이 오지 않으면 별이 뜨지 않습니다. 별이 뜨지 않는 인생이란 죽은 인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누구도 밤을 맞이하지 않고서는 별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밤을 지나지 않고서는 새벽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도 밤이 없으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없습니다. 이른 아침에 활짝 피어난 꽃은 어두운 밤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봄에 꽃을 피우는 꽃나무도 겨울이 있었기 때문에 꽃을 피웁니다.

신은 왜 인간으로 하여금 눈동자의 검은자위로만 세상을 보게 했을까요? 눈을 만들 때 흰자위와 검은자위를 동시에 만들어 놓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둠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라는 뜻이 아닐까요. 어둠을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을 밝음을 볼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요.

별은 밝은 대낮에도 하늘에 떠 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없기 때문에 그 별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어두운 밤에만 그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듯이, 밤하늘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별을 바라볼 수 있듯이, 고통과 시련이라는 어둠이 있어야만 내 삶의 별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의 캄캄한 밤, 그것이 비록 견딜 수 없는 고통의 밤일지라도 그 밤이 있어야 별이 뜹니다.' - 정호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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