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왜 / 야마오 산세이

샌. 2006. 9. 9. 10:08

왜 너는 도쿄 대학에 갈 생각을 않느냐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물었다

저는 와세다 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때 나는

키에르케고르 전집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미 시험 공부할 사이가 없었다

 

왜 너는 대학을 그만 두냐고

대학 3학년 때 아버지는 물었다

나는 방자하게도

입학할 때부터 졸업할 생각이 없었고

졸업장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고

중학교만 졸업한

아버지의 길에도 거스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왜 너는

아나키스트가 되었냐고

올 삼월에 암으로 죽은 친구가 물었다

그 친구는 깊은 연민과 힘을 가지고

평생을 사랑 하나로 일관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나는 그에게

어디나 다 중심이고

또 거기에는 그 나름의 질서가 있으니

정부 따위는 필요없는 게 아니냐고 대답하지 않고

너 또한 아나키스트일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다

 

왜 너는

도쿄를 버리고 이런 섬에 왔느냐고

섬 사람들이 수도 없이 물었다

여기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무엇보다도 수령이 7천 2백년이 된다는 죠몬 삼나무가

이 섬의 산 속에 절로 나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그것은 정말 그랬다

죠몬 삼나무의 영혼이

이 약하고 가난하고 자아와 욕망만이 비대해진 나를

이 섬에 와서 다시 시작해 보라고 불러 주었던 것이다

 

왜 그대는

지금도 외롭고 슬프냐고

산이 묻는다

그 까닭을 저는 모릅니다

당신이

저보다도 훨씬 외롭고 슬프고

훨씬 풍요롭게 거기에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그 까닭을 저는 모릅니다.

 

- 왜 / 야마오 산세이

 

세상이 '왜'냐고 물을 때 그저 눈을 멀리 돌리고 산을 바라본다. 나보다 훨씬 더 외롭고 슬프고 풍요로운 산이 말없이 거기에 있다.

 

나의 가보고 싶은 곳 목록에 야쿠 섬이 추가되었다. 거기는 수령이 7천 년이 넘는 삼나무가 있고, 또한 야마오 산세이가 살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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