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욕망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이 인간의 욕망이란 게 뭔지 잘 모르게 된 것 같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가치관의 붕괴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더 이상 기름진 것을 즐기려 하지 않고, 집에 많은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사람들의 소비 관념이 달라지면서 이제껏 유행했던 많은 상품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게 되자 기업들이 망하는 사태가 속출했습니다. 상품시장 붕괴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으나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동안 인기를 누려왔던 소비를 부추기는 직업군들이 사라졌습니다. 소비시장 붕괴는 생산 패러다임이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인간 욕망의 변화는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효과를 발휘하여 소비와 생산에 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가져 온 것입니다.
동시에 미 제국은 붕괴되었고 전쟁은 사라졌습니다. 인종과 종교 간의 분쟁도 옛 시대의 유물로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그때를 야만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도 21세기 초의 10분의 1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젠 화석연료 대신 태양에너지를 비롯한 청정에너지가 주된 에너지원입니다. 폐기물이나 쓰레기도 더 이상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 용어들도 이미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기적처럼 급격히 찾아왔습니다. 마치 쓰나미가 덮치듯 인류를 변화시켰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2006년 봄, 개발과 생태계 파괴에 항의하는 한 스님의 단식 죽음에 이어 종교인과 예술가들의 생명평화순례가 한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도시를 찾아다니며 토론을 벌였고 성찰을 이끌어냈습니다. 이런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되어 각 나라 도시마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에 대한 전면적 반성과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이 주장되었습니다. 이 작은 토론들이 도화선이 되어 도시마다 뜨거운 반향이 일어났습니다. 무려 5년 동안 수만 번의 토론과 논쟁이 벌어졌고, 대토론의 결과로 ‘2011년 인류의 문화적 삶을 위한 대합의’가 200개국에서 동시에 채택되었습니다.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 혁명은 삶에 대한 근본적인 개념 변화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삶을 깨달으면서 인류문명에 관해 깊은 성찰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불화와 경쟁과 차별을 극복하고, 평화와 평등 그리고 생태적으로 사는 것이 가능한 문명화된 사회를 꿈꾸게 만들었습니다. 삶에서는 예술이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예술적이며 영적인 분위기가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관통했습니다. 마침내 인류 역사에 점철되어 온 삶의 불균형이 타파되었고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습니다.
달라진 삶의 태도는 기존의 많은 제도와 관습을 수정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었는데, 가장 놀라운 변화는 소유관념의 변화를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땅과 건물의 소유를 원치 않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공간을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공공관념도 변하여 국가는 있으되 조정과 중재 기능만 남았고, 개인의 국적은 사라져버린 상황이어서 영토와 부속도서, 영공 같은 문제는 문화적 지역적으로만 표현된 뿐입니다.
인간의 마을도 작은 지역 공동체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도시민의 상당수가 시골 공동체로 내려가서 산업사회 시대의 대도시는 이제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시 공동체와 시골 공동체가 균형적으로 공존하며 상호 의존적이면서도 독립적인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든 이제 돈이나 출세보다는 자기 계발과 내면적 행복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람들은 놀이나 축제, 문화 행사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물 가꾸기를 좋아합니다. 집마다 있는 뜰에는 각자 아름답게 화단을 꾸미고 야채를 재배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서로간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파트 도시라 할 수 있었던 서울의 스카이라인도 허물어졌습니다. 특히 한강변을 끼고 건설되었던 아파트 장벽은 철거되었고, 그곳에는 숲이 조성되었습니다. 한강 어디서나 서울을 둘러싼 산들이 눈에 들어오고, 한강은 이제 철새들의 낙원으로 변했습니다. 도시의 주된 교통수단은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입니다. 공공의 주거개념과 일의 축소로 사람들의 동선은 짧아졌고, 느린 속도의 삶이 주류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 요즘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적게 먹습니다. 대체로 아침은 우유나 차나 함께 죽이나 빵을 먹고, 점심은 차 한 잔과 유기농산물로 만든 간단한 간식거리, 저녁은 마을 곳곳에 마련된 공동 취사장에서 각자 준비한 재료를 들고 와서 함께 비교적 풍성한 식사를 합니다. 육식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래선지 성인병도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과거에 사회학자들은 새로운 유목민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지금 농경이 중심이 되는 정착문화로 변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전만큼 이동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도 일부 사람들은 한 자리에 머무는 것보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에는 언제든지 해당 지역 공동체에 신청해서 1-3년씩 머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일을 하기도 합니다.
불과 20여 년 사이에 세상에 이렇게 변했습니다. 긴 인류 역사로 볼 때 그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기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완전한 유토피아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는 많지만 그래도 인류는 완전한 복지사회, 파라다이스로 향하는 첫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 '미래에서 온 편지'를 읽은 뒤, 2030 년의 신세계를 꿈꿔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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