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동심의 그늘

샌. 2006. 1. 21. 15:03

동심(童心)이라는 말만큼 향수를 자극하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동심은 모든 그리움의 원형이며, 그 속에는 인간 존재의순수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린 한 때 이 동심의 기간을 지나왔지만, 그러나 철이 들면서 동심은 이미 다다를 수 없는 세계로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더욱 신비한 동화의 세계로 남아있게 됩니다.

 

누구나 어린 시절은 아름답게 채색되어 나타납니다. 그것은 과거의 회상이 주는 필터링 효과인 경우가 많습니다. 남자들에게 있어 가혹했던 군대 시절마저 추억에서는 아름답고 멋진 기억으로 탈바꿈합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과거가 지나고 보면 아름답게 기억되기도 합니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의 내면 심리는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지워버리는 기법이 있는지 모릅니다. 아마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의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심의 시절이 아름답게 추억되는 것은 동심 자체의 속성 외에도 분명 이런 필터링 효과가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청개구리가 나무에 앉아서 운다

내가 큰 돌로 나무를 때리니

뒷다리 두개를 발발 떨었다

얼마나 아파서 저럴까?

나는 죄 될까봐 하늘 보고 절을 하였다'

 

60 년대에 어느 시골 초등학교 아이가 썼다는 동시입니다. 무심코 한 장난에 놀라는 청개구리가 불쌍해 하늘을 보고 잘못했다고 절을 하는 동심이 우리를 눈물겹게 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이런 생명 경외의 본능적인 마음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요즘 아이들은 생명을 대할 기회마저 차단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 동시는 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볼 때 왠지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시골에서 자란 우리 또래들은 생명들을 참 모질게도 대했다는 기억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산과 들이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거기서 살아가는 동물들, 특히 곤충들은 우리의 장난감이었습니다. 초가을이 되면 마당에는 잠자리들이 하늘 가득 모여 들었습니다. 빗자루를 가지고 그 잠자리들을 수도 없이 많이 잡았습니다.싫증이 날 때까지 잠자리 사냥을 하고 죽였습니다.어떨 때는 잠자리 꼬리를 잘라서 거기에 작은 나무 도막을 끼워서 날려 보내는 장난도 했습니다. 잠자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라는 의문은 이상하게도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위의 동시를 쓴 어린이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무지한 장난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자리 뿐만이 아니라 우리들 손에 희생된 미물들이 한두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생명들이 우리의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생명을 무척 잔인하게 대했구나 하는 후회가 이제야 듭니다. 그때의 동심에는 지독한 이기성도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인간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지금은 믿고 있습니다.

 

그때는 뱀도 많았습니다. 우리들 눈에 띄는 대로 그들은 공격 받았고, 돌덩이에 몸이 찢기며 무수히 죽어갔습니다. 한번은 뱀의 살점이 얼굴에 튀어와 붙었습니다. 살이 썩는다고친구들이 놀려서며칠간 잠을 설치기도 했습니다.

 

뒷산의 오래된 참나무에는 장수하늘소인지 사슴벌레인지 검은 색깔의 곤충이 살고 있었습니다. 심심하면 뒷산에 올라 나무에 구멍을 뚫고는 잡아서 저희들끼리 싸움을 시켰습니다. 그런 장난으로 나중에는 이 곤충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벌집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서든 처치하려고 했습니다. 개미집도 그냥 두지를 않았습니다. 심술 부리듯 발로 문지르며 훼방을 놓았습니다.

 

생명들 가운데 살았지만 그 고마움도 몰랐고, 그들과 공생하려는 의식도 전혀 없었던 제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데 대한 죄의식은 거의 들지 않았다고 기억이 됩니다. 그들은 오직 어린 우리들의 심심풀이 대상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에 대해서도 굉장히 적대적이고 배타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을 친구들끼리야 더도 없이 가까이 지냈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이유없이 미워했습니다.

 

마을 앞으로 중앙선 철로가 있었는데 가끔씩 열차가 지나가면 승객들을 향해 팔뚝질을 하며 욕을 습관적으로 했습니다. 그 사람들에게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물론 입으로도 쌍욕을 해댔습니다. 그런 좋지 못한 버릇은 우리들 뿐만이 아니고 당시의 대체적인 경향이었는데 다행히도 곧 고쳐졌습니다. 나중에는 손을 흔들어주게도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일부 힘 센 아이들은 마을 앞으로외지인 아이들이 지나가면 몰려 나가서 때리고 혼내 줘서 보냈습니다. 당연히 다른 마을을 지날 때는 그쪽 아이들로부터 얻어맞기도 했습니다. 그런 악순환이 계속되었습니다.

 

되돌아본 제 어린 시절은 다른 생명에 대해서는 지독히도 냉혹하고 이기적이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여과 없이 인간 본성의 어두운 그늘이 그대로 노출되었던 시절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마음의 심연 깊은 곳에서는 이런 어두운 충동들이 꿈틀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필수적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다른 완충작용 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입니다.

청개구리를 가여워하며 하늘을 보고 절을 하는 저 순수한 동심이 그립습니다.

 

그것이 제 과거에서는 뒤로 밀려나 작은 부분밖에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도리어 그래서 더 저 어린이의 마음씨가 고맙고 그립습니다. 그리고 상실된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길이 바로 그런 동심에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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